학교폭력(학폭)으로 숨진 피해 학생의 유족을 대리해 가해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하던 권경애 변호사가 항소심 재판에 3차례 불출석해 소가 취하되는 일이 벌어졌다. 소송대리인의 무책임한 업무 행태에 자녀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민사적 책임을 묻지 못하게 된 것이다.
5일 한겨레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민사8-2부는 고 박주원(사망 당시 16세)양 어머니 이기철 씨가 학교법인과 가해자 등 20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항소심에서 지난해 11월24일 원고패소를 결정했다.
유족 측은 8년을 이어온 학폭 사건의 항소심에서 제대로 목소리 낼 기회조차 없었다. 유족으로부터 수임료를 받고 소송을 대리한 권경애 변호사가 정작 재판에 3번 출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사소송법상 대리인 등 소송 당사자가 변론기일에 출석하지 않거나 변론을 하지 않을 경우 소를 취하한 것으로 간주한다.
이씨의 딸은 지난 2015년 학교폭력 피해를 받다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듬해 이씨는 서울시교육청과 학교법인, 가해자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지난해 2월 1심 재판부는 가해 학생 부모 1명의 손해배상 책임만을 인정하는 원고 일부 승소를 판결했다. 이에 불복한 유족은 항소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대리인의 불출석으로 항소심에서 결과가 뒤집혔고 패소가 확정됐다. 결국 이씨는 자녀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지 못하게 된 셈이다.
이씨의 소송대리인 권 변호사는 이른바 ‘조국 흑서’로 알려진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공동 저자 권 변호사였다.
특히 권 변호사가 자신이 재판에 출석하지 않아 소가 취하했다는 사실마저 유족에게 5개월간 밝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씨는 한겨레에 “답답한 마음에 재판 상황을 줄곧 물었는데도 대답하지 않다가 최근에 패소했다고 이야기했다”며 “직원이 그만둬서 챙기지 못했다고 하더라. 청소 노동자로 살면서 어렵게 소송을 8년간 해왔는데 너무 원통하다”고 했다.
이씨는 이날 오전 자신의 SNS에 “가슴은 바위로 내려친 것 같았고 등줄기는 찌릿한 통증이 거침없이 밀려왔다”며 “울부짖으며 (이유를) 물어도 꽉 닫은 입은 아무 말이 없었다”고 적었다.
이어 “가해자들이 재판에서 승소했다고 떠들고 다니겠구나 생각하니 미칠 것 같고 억장이 무너지다 못해 망연자실하다”며 “자식 잃은 어미의 가슴을 도끼로 찍고 벼랑으로 밀었다”고 말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