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5일 개봉한 영화 ‘샤잠! 신들의 분노’(감독 데이비드 F. 샌드버그)는 열흘 만에 박스오피스 10위권에서 자취를 감췄다. 개봉 9일 차 순위는 13위. 지금까지 ‘샤잠! 신들의 분노’가 국내서 모은 총 관객 수는 7만 8626명(6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이다. 현재 박스오피스 1위인 ‘스즈메의 문단속’(감독 신카이 마코토)의 지난 주말 관객 수(58만1380명)에도 한참 못 미친다. DC코믹스가 야심 차게 선뵌 새 히어로 영화지만 원작 후광을 전혀 입지 못하는 모양새다.
마블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다.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로 히어로 영화 전성기를 열었으나, 최근 선보인 작품은 아쉬운 성적을 거뒀다. 2년 전 개봉한 마블의 새 히어로 영화 ‘이터널스’(감독 클로이 자오)는 305만, 지난해 개봉한 ‘토르: 러브 앤 썬더’(감독 타이카 와이티티)와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감독 라이언 쿠글러)는 각각 271만, 210만 관객을 동원했다. 지난달 개봉한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감독 페이튼 리드)의 총 관객 수는 155만명이었다. 마블 대표 히어로 시리즈 ‘어벤져스’의 완결편인 ‘어벤져스: 엔드게임’(감독 안소니 루소·조 루소)이 총 관객 수 1397만명을 기록한 것과 대조적이다.
최근 슈퍼 히어로 영화는 대중보다 마니아층을 겨냥하는 경향을 보인다. 대표적인 예가 MCU의 다중우주(멀티버스) 세계관이다. 지난해 개봉한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감독 샘 레이미)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디즈니+ 오리지널 드라마 ‘완다 비전’과 ‘로키’, ‘왓 이프?’를 미리 봐야 했다. 극장을 찾는 관객 발길이 줄어든 현 상황에서 전보다 높아진 진입장벽은 분명한 악재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쿠키뉴스에 “슈퍼 히어로 영화가 점점 마니아 관객층을 겨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나, 대중성이 중요한 블록버스터 영화라는 점에서 괴리가 크다”면서 “요즘 극장 소비패턴과도 맞지 않는 변화”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슈퍼 히어로 영화가 너무 비대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캐릭터가 많아지고 세계관이 무한 확장하며 관객에게 확실한 인상을 남기지 못해서다. 앞서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는 지나치게 방대한 세계관으로 호불호가 갈렸다. 작품이 후속작을 위한 연결고리로만 보인다는 평도 있었다. ‘토르: 러브 앤 썬더’는 기존 팬덤에게도 아쉽다는 반응을 얻었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이전보다 관람료가 높아진 만큼 관객은 더욱 냉철하게 영화를 판단한다”면서 “이미 팬덤을 확보한 슈퍼 히어로물이어도 시리즈 사이 완성도가 낮다고 느끼면 마음을 쉽게 돌리는 시대”라고 짚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기존 히어로 캐릭터는 저마다 독특한 개성이 있었으나, 이제는 슈퍼 히어로가 너무 많아져 오히려 모두가 개성을 잃었다”고 평했다.
세대교체는 히어로 영화의 숙제다. 마블은 ‘어벤져스’ 후속으로 내세운 ‘이터널스’ 히어로들이 큰 반응을 얻지 못했다. ‘블랙팬서’ 시리즈는 고(故) 채드윅 보즈만의 빈자리를 채워야 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DC코믹스 슈퍼 히어로 영화 ‘샤잠! 신들의 분노’는 전편인 ‘샤잠!’의 부진으로 동력을 잃었다. 정 평론가는 “아직까지는 제2의 아이언맨이라 할 만한 캐릭터나 그를 연기한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같은 스타가 보이지 않는다”라면서 “히어로들의 홍수 속 새롭게 느낄 만한 캐릭터를 발굴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