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피해자 앞에서 또 ‘남 탓’ [윤정부, 청년 동행 1년]

전세사기 피해자 앞에서 또 ‘남 탓’ [윤정부, 청년 동행 1년]

전세사기 피해 청년 3명 극단적 선택
대책 부랴부랴 내놨지만 실효성 부족
“2024년까지 이어질 것…정부, 해결 의지 있는지 회의적”

기사승인 2023-05-10 06:00:26
지난달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전세사기·깡통전세 특별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다음은 어디인가. 인천 미추홀구를 시작으로 경기도 화성 동탄, 구리, 부산, 서울 은평. 하루가 멀다하고 전국에서 전세사기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윤 대통령은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모두발언을 통해 “최근 전세 사기, 주식과 가상자산에 관한 각종 투자 사기가 집단적 피해를 야기하고 있다”며 “집값 급등과 시장 교란을 초래한 과거 정부의 반시장적, 비상식적 정책이 전세 사기 토양이 됐다”고 말했다.

전세사기 피해액 급증…“2021년 이후 계약 전세, 만기 다가온다”

전세사기 피해액은 해가 갈수록 늘고 있다. 전세사기 피해를 간접적으로 가늠할 수 있는 전세금 반환 보증 사고 피해액은 2018년 792억원에서 2019년 3442억원, 2020년 4682억원, 2021년 5790억원으로 가파르게 증가하더니 지난해에는 1조원을 넘어섰다. 역대 최고 수준이다.

지난 3월 한 달에만 전국에서 발생한 전세 보증 사고는 1385건이다. 임차인이 돌려받지 못한 전세 보증금은 3199억원으로 역대 최대를 경신했다.

올해 하반기에 전세사기가 정점을 찍을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온다. KB경영연구소는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전세 가격이 급등했던 2021년 이후 계약된 전세건의 만기가 도래하는 올해에는 전세계약 갱신 시 보증금 반환 이슈가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을 내놨다.

지난달 18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열린 전세 사기, 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 출범 기자회견.   사진=박효상 기자

속수무책으로 당한 사회초년생들…유서엔 “정부 대책 실망스럽다”

피해자는 주로 부동산 거래 경험이 적은 30대 이하가 대부분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양경숙 의원이 한국주택금융공사(HF)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2019년부터 올해 1분기까지 HF가 대신 갚아준 전세자금 보증액 세입자 중 30대는 전체 30.2%(7810건)에 달했다. 금액은 34.9%인 3561억원이다. 40대(7383건, 2925억원)와 20대(2797건, 1377억원)가 그 뒤를 이었다. 신용등급(고·중·저) 별로는 중·저등급의 비중이 90%에 육박했다.

작정하고 ‘짜고 치는’ 분양대행사, 건축업자, 공인중개사 앞에서 사회초년생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피해자들이 전세계약을 맺고 입주할 당시 주택에는 약 1억원 상당의 근저당권이 설정돼 있었다. 피해자들이 근저당권이 있어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 가입도 안 되는 주택 계약을 망설이면 공범인 공인중개사가 “집주인이 돈이 많다”, “경매에 넘어갈 경우 피해를 변제해주겠다”면서 이행보증서를 작성해 안심시키는 수법을 썼다.

미추홀구 일대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피해자 3명 모두 20, 30대 였다. 2월28일 30대 남성이, 3월14일 20대 남성이, 4월17일에는 30대 여성이 숨졌다. 한 피해자의 유서에는 “(전세 사기 관련) 정부 대책이 굉장히 실망스럽고, 더는 버티기 힘들다”고 적혔다.

인천전세피해지원센터.  사진=송금종 기자 

저리 대출 집행률 0.81%·긴급주거지원 입주율 7.98%…누굴 위한 대책인가

지난해 10월 이른바 ‘빌라왕’ 전세사기 사건이 발생한 이후 정부 대책이 나왔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발표한 전세사기 피해 지원안은 크게 △HUG 강제관리 주택 등을 임시 거처로 제공 △주택도시기금 연 1%대 초저리 자금대출 지원 △전세사기로 상환 지연 등 발생 시 연체정보 등록 유예 추진 △전세보증금반환보증 가입 지원 △잔여채무 발생시 전세대출 보증기관이 금융기관에 대위변제 후 분활상환으로 나뉜다.

이 중 주택도시기금 저리 대출 집행률은 1%대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HUG가 더불어민주당 맹성규 의원실에 지난 7일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정부가 전세사기 피해자를 위해 책정한 저금리 대출 자금 1670억 원 가운데 지난달 중순까지 집행된 금액은 13억6000만 원에 그쳤다. 집행률은 0.81%였다. 전세피해 주택 보증금이 3억원 이하여야 하고 부부 합산 연소득도 7000만원을 넘어서면 안되는 등 기준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긴급 주거 지원 입주율은 여전히 낮다. 인천시 관계자에 따르면 9일 기준, 확보된 긴급 주거 임대 주택 238가구 가운데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입주한 곳은 19가구(7.98%)에 불과하다. 37개 가구가 대기 중이다. 긴급주거지원 주택은 입주기간 6개월로 보증금이 없으며, 시세의 30% 수준의 임대료와 관리비를 부담하면 된다. 입주 연장을 원하면 연장 신청과 심사를 통해 최대 2년까지 연장 할 수 있다. 시가 집계한 전세사기 피해주택이 3000채에 달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피해자들도 외면하는 대책인 셈이다.

지난달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전세사기·깡통전세 특별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피해자 목소리 빠진 특별법…“전세사기는 정책 실패, 책임감 가져야”

지난달 27일 정부는 ‘전세사기 특별법’(특별법)을 발의했다. 전세사기 피해 세입자에게 해당 주택을 우선 매수할 권리를 주거나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해당 주택을 사들여 피해자에게 싼값에 임대해 이들의 주거권을 보장하는 내용이 골자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와 시민단체가 줄곧 요구해 온 ‘자산관리공사(캠코)를 통한 보증금채권 매입안’은 특별법에서 빠졌다. 부실채권을 매입해 시간이 지나면 이를 되팔아 수익을 챙기는 것은 캠코가 이미 해오고 있는 사업 모델이다. 

정부는 단호하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보증금을 국가가 돌려주라’고 하는 데 대해서는 어떤 정부(부처)도 그런 입법을 해선 안 된다는 것이 확고한 범정부적 합의”라며 “집단적으로 여론몰이를 한다고 해서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고 단언한 상태다.

이강훈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위원장은 전세사기 피해 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요건 4가지를 충족해야 한다는 점을 들어 “전세사기 개념이 지나치게 좁다”고 짚었다. 이어 “정부 기존 대책으로는 아무런 피해 구제가 되지 않거나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피해자들이 있다는 점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정부는 지금 작동되지 않을 대책만 계속 내놓고 있다. 피해자를 만나 목소리를 제대로 들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면서 “채권 매입이 안되면 다른 방안을 제시하던가, 이유는 설명하지 않고 무조건 ‘안된다’고만 한다. 문제를 정말 해결할 의지가 있는 건지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최 소장은 “전세사기는 결국 전세대출을 쉽게 내어주고, 등록임대사업자 제도를 제대로 운영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정책 실패”라면서 “올해 하반기가 아니라 2024년까지도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문제다. 정부는 전정부 탓, 임대차3법 탓은 그만하고 책임감을 가지고 임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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