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미국 반도체법 보조금 지원과 관련, 보조금을 받는 기업의 중국 내 반도체 생산능력을 2배 늘려달라고 요청했다.
23일(현지시간) 미국 정부 관보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미국 상무부가 지난 3월 21일 공개한 반도체법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 세부 규정안에 대해 공식 의견을 제출했다.
한국 정부는 전날 관보에 게시된 의견서 공개본에서 "한국은 미국에 투자하는 기업들에 대해 불합리한 부담을 주는 방식으로 '가드레일 조항'을 시행해선 안 된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 정부가 규정안에 있는 '실질적인 확장'(material expansion)과 '범용(legacy) 반도체' 등 핵심 용어의 현재 정의를 재검토할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또 중국의 우려 기업과 공동 연구나 기술 라이선싱(특허사용계약)을 하면 보조금을 반환해야 하는 '기술 환수(technology clawback)' 조항이 제한하는 활동의 범위를 더욱 명확히 해달라고 요청했다.
한국 정부는 "이같은 중요한 사항들이 어떻게 해결될 수 있는지에 대해 좀 더 상세한 의견을 미국 정부에 제출할 것"이라며 "한국은 미국 정부가 '가드레일 조항'에 대한 세부 규정을 확정할 때 한국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것을 요청한다"고 부연했다.
한국 정부는 공개본에서 실질적인 확장과 범용 반도체의 정의 재검토를 어떻게 해 달라고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중국에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고도 중국에서 더 많은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도록 허용해 달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미국 정부는 가드레일 규정안은 보조금을 받은 기업이 이후 10년간 중국 등 우려 국가에서 반도체 생산능력을 '실질적으로 확장'하는 중대한 거래를 할 경우 보조금 전액을 반환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또한 실질적인 확장을 첨단 반도체의 경우 5% 이상, 이전 세대의 범용 반도체는 10% 이상으로 규정했다. 이에 한국 정부는 첨단 반도체의 실질적인 확장의 기준을 기존 5%에서 10%로 늘려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정부는 또 미 상무부가 범용 반도체를 △로직 반도체는 28nm(나노미터·10억분의 1m) △D램은 18나노미터 △낸드플래시는 128단으로 정의한 것에 대해서도 기준 완화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의견서를 제출했지만 공개본에 구체적인 내용을 담지는 않았다. 삼성전자는 보조금 환수 조항과 관련해 상무부가 일부 용어를 명확히하거나 수정할 것을 제안했다.
한국 반도체산업협회(KSIA)도 상무부에 의견서를 제출하고 특허사용계약은 '기술 환수' 조항의 '공동 연구'에서 제외해달라고 했다. 협회는 우려국과 특허사용계약을 막으면 반도체 생태계에 필요한 일상적인 사업 거래에 지장을 주고 반도체법 보조금을 받는 기업을 전략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한다고 주장했다.
반도체법 보조금 지급 이전에 체결한 계약에 따라 우려국과 진행하는 공동 연구 등 활동은 허용해야 한다고도 했다.
'외국 우려 단체'(foreign entities of concern)의 정의가 너무 광범위하고 모호하기 때문에 수출통제명단에 포함된 기업 등으로 좁혀야 한다고도 밝혔다. 이와 함께 미국 정부가 보조금 지급 심사 과정에서 기업에 민감한 기술·기밀 정보 요청을 자제하고 기업과 기밀유지협약(NDA)을 체결할 것을 요청했다.
미 상무부는 전날 의견 접수를 마감했으며 향후 관련 내용을 검토해 연내에 확정된 규정을 발표할 계획이다.
안세진 기자 asj052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