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포비아’…무한회귀의 공포 [임성은 원장의 혁신 이야기]

‘저출산 포비아’…무한회귀의 공포 [임성은 원장의 혁신 이야기]

글⋅임성은 서울기술연구원장

기사승인 2023-06-26 07:34:01

저출산 인구 감소의 우려가 고조되던 지난해 5월, 저출산을 “행운이자 기회”라고 말한 사람이 있다. 베스트셀러 <총, 균, 쇠>의 저자 제러드 다이아몬드다. 그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한국은 동일한 자원을 더 적은 사람들에게 분배할 수 있어 개개인은 더 부유해질 것이다. 한국의 미래는 한국인의 ‘수’가 아닌 ‘자질’에 달려 있다.” 저출산으로 지방의 소멸과 국가 경쟁력 저하를 걱정하는 이에게는 뚱딴지같은 얘기로 들릴 법하다. 
 
필자가 다이아몬드의 속내까지 일일이 헤아릴 순 없지만 저출산에 대한 통념을 뒤집는다는 점에서 대한민국의 현실을 돌이키게 한다. 저출산은 과연 무조건적 재앙인가? 저출산이 우리가 직면할 모순과 불안을 더 부추기기만 하는 걸까? 저출산 국면을 활용한 절묘한 되치기 한판은 정녕 불가능한가?
 
인구 감소는 대한민국이 ‘가보지 않은 길’이라 두려움을 자아낸다. 이런 외형이 주는 위압감에 굴하기보다, 주어진 조건을 끌어안고 돌파하는 창의적 자세로 현실을 대하면 어떨까?
 
생산 인구 하락, 세수 감소, 부양가족 증가, 대학의 소멸, 국민연금 수령액 삭감 등등. 모두 저출산의 동의어들이다. 관점을 달리 보자. 저출산 시대에 맞춰 산업구조와 국가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고칠 때 벌어질 일들이 뭔가를 말이다. 
 
필자는 고소득 인구의 증가, 수출 확대, 공교육의 정상화, 사교육비 감소, 저출산 기피 풍조의 해소로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선순환 구조를 상상해본다. 
 
먼저 노동 인구 불균형은 지금도 외국인 노동자들이 채워주고 있다. 다만 이민자가 아닌 경우 생산 인구에 포함하지 않을 뿐이다. 차라리 과학기술 고도화와 인공지능(AI) 시대 개막은 일자리 감소를 예고한다. 양질의 일자리 유지가 더 현실적인 과제로 다가선다.
 
인구절벽에 몰리는 국가는 세수 확보에 허덕인다. 세수는 단순히 많은 인구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부가가치가 높은 고소득자가 많아져야 국가 재정의 안정화도 가능하다. 결국 양질의 일자리를 확충하는 게 관건이다. 양질의 일자리는 고부가가치의 제품 생산을 뜻한다. 이는 대한민국의 수출 경쟁력 강화와도 직결된다. 인구 감소가 외화 가득의 압력 요인으로 작용하는 셈이다. 
 
인구 감소 국면에서 공교육의 재건 기회를 찾을 순 없을까? 수험생이 줄면 소위 명문대 진학의 문은 상대적으로 넓어진다. 수요가 준다고 공급이 그에 비례해 확 줄지는 않기 때문이다. 인구가 줄어든다고 초등학교 교사의 수를 줄이지 않는다. 심지어 담임교사를 2명을 두자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차라리 저출산 국면을 통해 지금과 같은 ‘고액 과외, 입시 지옥’ 현상을 제어하면서 전인교육, 인성교육에 기반한 공교육 회생의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
 
또 인구가 준다고 주택 가격이 무조건 내려가는 건 아니다. 고급 주택은 수요가 여전히 존재하고, 증가하는 1인 가구와 주거수준 상향 정책이 주택 가격 하락의 완충지대 역할을 할 수 있다. 산부인과, 소아과 등 저출산에 영향을 받는 병·의원도 수가 조정, 고품격 서비스를 통해 환경에 적응 하는 지혜를 발휘할 것이다.
 
이렇듯 양질의 일자리 확충, 서비스 품질 강화, 교육 정상화, 사교육비 경감 등의 프로세스로 대한민국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한다면 저출산 풍조는 알아서 해소될 수도 있다. 
 
대한민국은 OECD 38개 국가 중 합계출산율 꼴찌 국가다. 인구 감소의 가파름은 현기증을 느끼게 한다. 마땅히 경각심과 대응 체제 구축이 요구된다. 하지만 어떤 때는 우리 사회가 실효적인 대처 방안이나 마인드 셋팅도 없이 과도한 ‘저출산 포비아’에 압도되는 건 아닌지 의아할 때도 있다. 두려움은 인구 감소의 진짜 위기를 가리는 부작용을 증폭시킬 수도 있다는 점에서 역발상의 접근을 생각해본다. 
이영수 기자
juny@kukinews.com
이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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