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3년 치 수능과 올해 6월 모의평가(6모)에 출제된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항)’을 공개했다. 교육당국은 대표 예시를 제시하며 수능 변별력 논란 진화에 나섰지만, 정답률 및 오답률은 공개되지 않아 ‘반쪽짜리’ 발표라는 지적이 나온다. 수험생들이 모이는 온라인 커뮤니티나 입시현장에서도 여전히 불안감이 가득하다.
교육부는 26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사교육 경감 대책’을 발표하면서 최근 3년간(2021~2023학년도) 수능 및 2024학년도 수능 6월 모의평가(이하 6모)에 나온 킬러 문항 사례를 공개했다.
교육부가 꼽은 킬러 문항은 총 480문항 중 22개(국어 7, 수학 9, 영어 6) 문항이다. 2023학년도 수능 킬러 문항으로는 총 7개(국어 2, 수학 3, 영어 2), 2022학년도 수능에선 총 7개(국어 3, 수학 2, 영어 2)였다. 2021학년도 수능에선 수학에서만 1개 문항이 킬러 문항으로 지목됐다.
앞서 수험생들의 관심이 쏠린 6모에는 총 7개(국어 2, 수학 3, 영어 2)가 킬러 문항에 들어갔다. 교육부는 6모에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가 반영되지 않았다고 보고 지난 16일 대학입시 담당 국장을 경질한 바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EBSi가 집계한 6모 가채점 정답률 중 국어 영역에서 정답률이 36.4%로 가장 낮았던 14번 문제는 킬러 문항으로 지목됐다. 인지 과정이 몸 바깥으로 확장한다는 로렌즈의 확장 인지 이론을 다룬 지문으로, 주제·대상이 지각을 통해 확장된다는 내용의 지문을 읽고 선지 중에서 적절한 답을 선택하는 문제다. 해당 지문은 EBS 수능 특강 독서 교재에 나온 지문에서 연계된 것이다. 교육부는 킬러 문항으로 지목한 근거로 “낯선 현대 철학 분야의 전문 용어를 다수 사용해 지문 이해가 매우 어렵다”며 “문제의 선택지로 제시된 문장 역시 추상적이어서 지문과 답지의 개념 연결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14번 다음으로 정답률(36.8%)이 낮았던 33번도 킬러 문항으로 꼽혔다. 조지훈의 ‘맹세’ 지문도 EBS 수능 특강 문학 교재에 연계 출제된 문제다. 교육부는 “제한된 감상 정보에 의지해 각 선택지에서 제시하고 있는 내용을 작품 내에서 찾아 연결해 가며 해석해야 풀 수 있는 문항으로 문제 해결을 위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의미 해석을 위한 높은 수준의 추론이 필요하다”고 했다.
수학 영역에서는 공통 과목의 마지막 주관식 문제인 22번 등 3문제가 킬러 문항으로 지목됐다. 22번 정답률을 2.9%로 수학 영역에서 가장 낮았다. 교육부는 “다항함수의 도함수, 함수의 극대·극소, 함수의 그래프 등 3가지 이상의 수학적 개념이 결합해 문제해결 과정이 복잡하다”며 “상당히 고차원적인 접근방식을 요구하며, 일반적인 공교육 학습만으로 이러한 풀이 방법을 생각해내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공통 과목 중 다음으로 정답률(10%)이 낮았던 문항은 주관식 21번이다. 교육부는 “정답률을 낮추기 위해 일반적으로 ㄱ, ㄴ, ㄷ 중 옳은 것을 모두 찾는 객관식 유형의 문제를 단답형 주관식 문항으로 제시했다”며 “이 과정에서 불필요하게 명제의 개념을 도입해 수험생의 실수를 유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교육계 일각에선 6모 이후 정답률이 예년보다 낮거나 풀이가 복잡했던 문제는 없었다는 의견이 많아, 킬러 문항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을 피하긴 어려울 전망이다. 킬러 문항은 입시업계에서 통상 한 자릿수대 정답률을 보일 정도의 초고난도 문항 또는 해당 영역에서 가장 정답률이 낮은 문항으로 인식되고 있을 뿐, 명확한 정의는 없다. 지난 22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킬러 문항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에 “지난 3년간의 수능 문제들, 그리고 지난번 6월 모의고사 문항 중 어떤 것이 킬러 문항인가를 지금 가려내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문제가 된 일부 킬러 문항에는 어느 지점이 고교 교과과정 범위를 벗어났는지 등 설명이 담기지 않았다. 일부 문항은 킬러 문항으로 지목된 이유로 ‘문제해결 과정에서 경우를 나누는 상황이 과도해 풀이에 상당한 시간 요구’ ‘수험생의 실수를 유발할 수 있음’ ‘추론의 난도가 높음’ 등을 들었다.
입시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일부 킬러 문항에 대한 교육부 설명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한 수험생은 “6모에서 교과 과정을 벗어난 건 없었던 듯”이라며 “과학탐구가 진짜 문제”라고 적었다. 또 다른 수험생들도 “개념 결합한 걸 내지 말라고 하면 뭘 내라는 거임” “교과 외 얘기는 별로 없고 문제마다 어렵다, 복잡하다 핑계만” “실수를 유발할 수 있음은 뭐지” 등의 반응을 보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입시업체 대표 A씨는 “킬러 문항은 문제의 정답률이 몇 %인지, 1~2등급이 해당 문제를 몇 % 맞췄는지 명확해져야 특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윤 대통령이 콕 집어 언급한 국어 영역은 지난해 수능과 비교했을 때 고난도 문항의 정답률이 크게 올랐다는 분석도 나온다. A대표는 “6모 수학은 지난해 수능에 비해 킬러 문항이 줄었다고 볼 순 없을 것 같지만, 국어 영역은 확실히 줄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30%대 정답률을 보인 문제가 킬러 문항으로 지목된 데 대해 “(상위 누적 기준, 수능 등급별 비율은) 1등급 4%, 2등급 11%, 3등급 23%, 4등급 40% 등이라 가채점 36.4% 정답률을 보인 국어 14번 문제를 보면, 1~2등급은 저 문제를 다 맞힐 수 있다는 얘기”라며 “14번이 베스트 킬러 문제였다면 나머지 부분 정답률은 40%가 넘어갈 것이라는 추정이 나온다”고 말했다.
A씨는 “(정부가) 킬러 문항이 나오게 된 배경을 국민들에게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 상위권 학생들의 변별력을 확보하려 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킬러 문항은) ‘상위권 아이들도 못 푸는 문제였다’라고 배제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데. ‘해보니 어렵다’ ‘실수를 유발하려 했다’ 등 주관적인 요소가 너무 많다. 객관적인 표나 통계가 수반됐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