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나이 시행에 빠른년생 “한국 서열문화, 바뀔까요”

만 나이 시행에 빠른년생 “한국 서열문화, 바뀔까요”

기사승인 2023-06-30 06:05:01
SBS 스페셜 ‘왜, 반말하세요?’ 방송 캡처.

#1998년 1월생인 한경진(여‧직장인)씨는 성인이 된 뒤 3개 나이를 썼다. 법적인 연나이는 26세, 이른 입학으로 사회적 나이는 27세, 만 나이는 25세다. 학생 때는 불편을 느끼지 못했으나, 성인이 되자 나이로 혼란을 겪었다. 한씨는 “성인이 되기 전엔 사회적 나이를 주로 썼고, 성인이 된 후 주민등록번호를 기준으로 법적인 나이를 써야 했다”라며 “사회적 나이로 말하면 나이 많은 대접 받고 싶냐, 법적 나이로 말하면 어려 보이려고 하냐는 지적을 늘 받았다”라고 말했다.

#2000년 2월생인 여모(여‧취업준비생)씨는 1999년생, 2000년생과 모두 친구로 지낸다. 고등학생 때는 같은 학년인 1999년생과 친구로 지냈고, 2000년생에겐 언니로 불렸다. 대학 졸업 이후엔 다시 2000년생과 친구로 지냈다. 여씨는 “대학 친구(1999년생)와 동갑친구(2000년생)과 셋이 만나면 서로 호칭 꼬여 ‘족보 브레이커’가 됐다”라며 “결국 1999년생과 2000년생 친구 둘도 서로 친구로 지내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1, 2월에 태어난 사람들은 동갑들보다 초등학교 입학을 1년 빨리해 나이가 다른 일명 ‘빠른년생’으로 불린다. 이들을 만들어낸 조기 입학제는 지난 2009년 초·중등교육법 개정으로 폐지됐다. 지난 28일 법적‧사회적 나이를 ‘만(滿) 나이’로 통일하는 내용의 개정 행정 기본법과 민법이 시행되며 다시 한 번 새로운 전 국민의 나이가 달라졌다. 나이에 민감한 한국 서열문화에서 살아온 빠른년생 사람들도 새로운 나이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빠른년생, 만 나이 도입 ‘긍정’ '부정’ 엇갈려

만 나이 시행 이틀째인 29일 빠른년생 시민들은 대부분 “크게 와 닿지 않는다”며 덤덤한 반응이었다. 나이가 어려진 것을 자랑하는 시민들과 받아들이는 입장이 조금 다른 분위기였다.

일부 청년들은 만 나이 도입으로 서열문화가 사라질 것을 기대했다. 이모(35‧여‧직장인)씨는 “나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기가 아니라, 변화를 크게 느끼지 못한다”라며 “과거 처음 만난 사람들과 위아래 나이를 정리할 때 빠른년생이라 애매했던 기억이 있다. 이제 나이순으로 서열을 구분 짓는 문화가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라고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어려져서 기분이 좋다”는 김태형(27‧남‧직장인)씨는 “빠른 1996년생이라 1995년생 친구들에게 형이라고 부른다”며 “주변 외국인 친구들과는 나이가 열 살 차이여도 편하게 지낸다”라고 한국의 서열문화를 짚었다. 이어 “만 나이 도입으로 한국도 서열을 따지는 문화가 사라지면 좋겠다”라고 토로했다.

만 나이 대신 계속 연 나이를 쓰는 게 더 낫다는 반응도 많다. 빠른 1996년생인 김채운(남‧직장인)씨는 “빠른 1997년 1월생인 친구가 있었지만, 만 나이 도입으로 나이 차이가 발생해 친구를 잃었다”라며 “태어난 연도로 나이 기준을 세우는 게 제일 깔끔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한경진씨는 “빠른년생 없이 같은 해에 태어난 사람들이 같은 나이로 친구가 되는 게 나은 것 같다”고 주장했다. 김모(28‧남‧직장인)씨도 “주변 지인들도 다 연 나이 기준으로 친구, 동생, 형으로 구분하기 때문에 연 나이가 좋다”라고 말했다.

SBS 스페셜 ‘왜, 반말하세요?’ 방송 캡처.

서열문화 타파? 빠른년생 “나이 서열 여전할 것”

법제처는 이번 만 나이 제도 시행으로 한국 서열문화가 사라질 것으로 기대한다. 법제처가 지난해 9월5~18일 국민신문고 국민생각함에서 ‘만 나이 통일’에 관한 국민의견조사를 실시한 결과, 총 6394명의 응답자 중 5216명(81.6%)이 만 나이 시행에 동의했다. 만 나이를 찬성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가 ‘법으로 인한 서열문화 타파 기대’였다.

그동안 서열문화로 체감한 일이 많았던 빠른년생 시민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전망했다. 정우진(27‧남‧직장인)씨는 “한국사회에서 서열문화는 나이보다 직책, 직무에 따라 결정된다”라며 “만 나이 도입만으로 서열 문화가 없어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라고 지적했다. 심모(24‧여‧직장인)씨도 “한국 서열문화는 국민 정서라고 할 정도”라며 “만 나이 도입으로 행정적인 면에서 일부 편리하겠지만, 서열문화가 옅어질 것 같진 않다”라고 답했다.

한경진씨 생각도 비슷했다. 빠른년생으로 인한 서열 문화는 사라질 수 있지만, 나이에 대한 서열문화는 사라질 거라 믿지 않았다. 한씨는 “일상에 장유유서에 대한 생각이 만연하다”라며 “형, 누나, 오빠, 동생 등 호칭이 존재하는 건 나이에 따른 서열문화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젠 태어난 연도가 아닌 생일까지 확인하는 문화가 나타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천상현(29‧남‧직장인)씨는 “만 나이 도입으로 1993년 8월생과 1994년생 2월생이 6개월간 같은 나이로 살게 됐다”라며 “싸울 때 몇 년생인지부터 물어보는 한국 사회에서 이제 몇 월생인지까지 밝혀야 하는 상황이 생길 것 같다”고 전망했다. 
 
만 나이 도입으로 오히려 서열문화가 더 복잡해질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여모(23‧여‧취업준비생)씨는 “오히려 서열문화가 더 복잡해질까 걱정”이라며 “생일에 따라 만 나이가 달라지는 걸 계산하기 어렵다. 같은 해에 태어나도 나이가 달라져 더 불편하다”라고 지적했다.

조유정 기자 youjung@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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