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양평 고속도로 종점 변경’ 논란이 제기되자 사업 전면 백지화를 선언한 원희룡 국토부 장관에 대한 정치적 반감이 심상치 않다. 대통령실은 9일 해당 논란에 대해 “국토부가 알아서 할 일”이라면서 선을 그었고, 여당 내부에서도 반감이 감지된다.
여권 내 차기 대권 주자로 야망을 지닌 원 장관이 정치생명을 걸고 던진 ‘승부수’가 되려 제 이미지를 깎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해석까지 나온다.
10일 쿠키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주 본격적으로 불거진 서울-양평 고속도로 종점 변경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민주당은 연일 관련된 내용을 지적하면서 공세 중이고 국민의힘은 야당의 주장은 가짜뉴스라면서 방어 일색이다. 또 원 장관의 전면 백지화 발언에는 당 내부에서는 적지 않게 당황한 기색도 감지된다.
내년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정치권의 말 한마디가 큰 파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아무런 교감 없는 일방적인 원 장관의 태도가 부적절했다는 당내 분위기마저 있다.
익명의 국회 국토위 소속 국민의힘 A 의원은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내부적으로는 (원 장관의 ‘전면 백지화’ 발언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가 나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다만 아직 당의 입장이 정해진 게 없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해당 사안을 주민투표, 여론조사를 통해 지역민의 생각을 들어보자는 얘기가 나왔다”며 “조만간 당정이 긴밀히 협조해 어떤 게 옳은 길인지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번 주 당정이 모여 빠르게 협의에 나설지는 미지수다. 김기현 당대표를 비롯한 당 주요 지도부가 10일 방미를 위해 이날 출국했기 때문이다. 윤재옥 원내대표가 남아 있지만, 국민적 관심이 크고 민감한 이슈인 만큼 당대표가 없는 가운데 입장을 정리하기는 부담스럽다.
또 다른 국민의힘 B 의원은 원 장관 발언의 적절성 여부를 떠나 순서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B 의원은 쿠키뉴스에 “원 장관의 일방적인 주장에 이미 본질은 훼손된 지 오래다. 우선 당정에서 논의하고 결정한 다음에 나왔어야 한다”며 “지금의 상황은 마치 ‘부부가 이혼하자고 다 결정해놓고 자식들 때문에 생활 습관을 바꾸면 이혼 안 하는 걸로 다시 생각해보자고 말하는 꼴”이라고 비유했다.
여당과 국토부 입장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도 또 다른 문제다. 여당은 전면 백지화 말고 검토 후 재추진을 내심 기대하는 눈치지만, 원 장관은 재추진 의사가 없다.
신주호 국민의힘 상근부대변인은 10일 논평에서 민주당의 주장들이 가짜뉴스라고 지적하면서 “하루라도 빨리 (민주당이) 대국민 사과를 통해 사업 재추진에 협조하는 것만이 스스로 판 구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재추진의 필요성을 암시한 것이다.
반면 원 장관은 재추진은 없다는 강경 기조다. 그는 이날 세종 주상복합 건설현장에서 ‘타워크레인 안전점검 간담회’ 후 기자들과 만나 “거짓 선동에 의한 정치공세에 민주당이 혈안이 돼 있는 한 양평군민이 안타깝고 국토부도 추진하고 싶은 사업이지만 추진할 수 없다”고 재추진 가능성을 재차 일축했다.
이번 논란에 본인의 정치생명을 걸겠다는 원 장관의 강경한 모습이 ‘자충수’가 되지 않겠느냐는 의견에는 해석이 엇갈렸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10일 쿠키뉴스에 “원 장관의 사업 전면 백지화 주장으로 민주당의 잘못된 주장도 함께 부각이 됐다. 또 김건희 여사 일가의 특혜 의혹 이슈가 일부 분산됐다”며 “일종의 극약 처방이 효과를 보였다”고 원 장관의 결단이 효과를 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신 교수는 “결과적으로 사업의 전면 백지화보다는 주민 투표로 결과지어지지 않을까 생각된다”며 “원 장관의 행동이 자충수인지 승부수인지는 아직 판단하기는 이르다”고 강조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원 장관의 행보가 어떤 측면에서는 정치적 승부수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일반 국민의 시선에서는 좋게 보이지 않을 것”이라면서 사실상 자충수로 봤다.
장 소장은 “윤석열 대통령을 지지하는 강성 지지자들에게는 점수를 얻겠지만, 상식과 합리성을 잃어버린 모습에 일반 국민의 지지와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며 “노선이 변경된 지점 인근에 김건희 여사 일가의 땅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이를 아무런 소통 없이 전면 백지화하면서 김건희 여사를 보호하려는 듯한 이미지를 갖는 게 좋을지는 의문”이라고 평가했다.
황인성 기자 his11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