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의료원은 정릉 메디사이언스 파크, 안암병원 첨단의학센터, 구로병원 미래관, 안산병원 미래의학관을 건립하며 빠르게 성장했다. 의료원의 눈부신 영광 뒤에 어두운 그림자로 남은 것은 직원들의 열악한 노동 현실과 처참한 근무 여건이다.”
보건의료노조 고려대의료원지부가 19일 고려대안암병원 로비에서 총파업대회를 열고 “건물 말고 사람에 투자하라”고 외쳤다. 고려대의료원 안암병원, 구로병원, 안산병원에서 파업 중인 조합원 1000여명이 집결했다.
지난 13일부터 보건의료노조 산별총파업과 함께 파업을 시작한 고려대의료원은 19일 기준 파업 7일째를 맞았다. 고려대의료원 노조는 “산별총파업 종료 이후 다른 병원에서 속속 산별현장교섭 타결 소식이 들려오고 있지만 노사가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한 채 서울지역에서 유일하게 총파업을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환자 안전을 위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각 부서 인력 기준 마련과 중증질환에 맞는 숙련도 확보를 위한 적정 인력 배치 △각 병원 증축, 리모델링, 코로나19 유행으로 고생한 조합원들에 대한 합당한 대우와 전년도 의료원 이익의 적정 소득 분배 등을 요구했다.
특히 병원 이익이 늘어났음에도 노동자에겐 합당한 임금이 지급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노조에 따르면 고려대의료원은 2022년 의료 수익 1조4200억원, 당기순이익 760억원, 경상이익 1590억원을 기록했다. 노조는 “의사만을 이야기할 뿐 병원 곳곳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일반직 노동자들은 뒷전”이라고 질타했다.
보건의료노조에 따르면 고려대의료원 노조는 교섭을 통해 근무환경 개선과 직원들의 고충을 전달했지만 의료원은 ‘인력 충원 없음’, ‘임금 2.5% 인상’을 제외한 어떤 안도 내지 않고 있다.
노조는 “고려대의료원의 미래만을 위해 내팽겨진 우리의 일터는 지옥”이라며 “이젠 의료원의 미래가 아닌 직원들과 환자, 보호자들의 미래를 위한 현장을 만들고 싶다. 환자, 보호자들에겐 더 나은 진료시스템과 더 좋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의료환경을 만들기 위해 파업에 나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최근 건물을 증축하며 몸집을 불렸음에도 인력 충원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고 일갈했다. 송은옥 보건의료노조 고려대의료원 지부장 직무대행은 “고려대안암병원 신관을 개관하면서 면적이 2배 늘었다. 그런데 시설팀의 인력 증원은 없다. 직원 1명당 살펴야 하는 면적이 크게 늘어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인력 부족은 환자의 안전 위협으로도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구로병원에서 근무하는 15년차 간호사라고 밝힌 한 조합원은 “간호사 한 명당 중증도가 높은 환자 7~8명을 보고 있다. 낙상사고가 날 때마다 죄책감에 시달리며 자신을 탓하게 되는 상황”이라며 “간호 인력이 부족하면 노티(상황보고)와 처치가 늦어질 수밖에 없다. 적정 인력을 배치해 환자를 안전하게 간호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달라”고 호소했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고려대의료원은 사립대병원 중 가장 공격적으로 병원을 확대해왔다. 병원은 커지고 엄청난 수익을 올렸는데, 여기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삶은 더욱 힘들어졌다”며 “병원이 커진 만큼 일하는 노동자들도 만족할 수 있어야 하고, 그래야 환자도 안전하고 의료의 질도 높아질 수 있다. 노조도 고려대의료원 투쟁이 승리할 수 있도록 함께 투쟁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려대의료원 외에도 현재 파업 투쟁을 지속하고 있는 곳은 부산대병원, 아주대의료원, 광주시립요양정신병원지부, 광주시립요양병원지부 조선대병원새봄분회, 광주기독병원새봄분회 등이다. 국립교통재활병원지부, 성가롤로병원지부는 전날 타결을 이뤘다.
특히 부산대병원은 13일 총파업이 시작되기 전부터 일부 병동을 폐쇄하고 입원 환자를 강제 전원시키는 등 노조 파업에 강경 대응하고 있다. 송금희 보건의료노조 사무처장은 19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부산대병원 파업은 무기한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사측에서 협상안을 전혀 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