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인 우리 반 학생이 두 살 많은 4학년 학생을 놀이터에서 폭행하는 일이 벌어졌어요. ‘형들이 모함했다’는 아이 말을 믿었어요. 피해 학생 부모가 재발 방지와 사과를 요청했지만, 우리 반 학생은 3일 동안 사과 편지를 쓰지 않았어요. 결국 교실 뒤로 나가서 편지를 쓰게 했고, ‘4학년 형이 놀려서 그랬다. 앞으로 놀리지 말라’는 내용이 담겼어요. 저도 피해 학부모에게 고개 숙여 사과했고요. 5개월 후 우리 반 학생이 제가 목을 졸랐다고 주장했어요. 학부모는 담임 교체를 요구했지만, 목을 조른 사실이 없어 교체되지 않았어요. 학부모는 사과 편지를 쓰게 한 것과 수업에서 배제했다는 이유로 절 아동학대로 신고했어요. 전 그렇게 아동학대 교사가 됐어요.” (경기 파주시 한 초등학교 교사 함모씨)
아동학대 교사가 되기까지 학생의 한마디면 충분했다. 함씨가 죄목은 정서학대 및 수업 배제. 함씨는 상담 기록과 녹음, 사진 등을 증거로 냈지만, 아동학대 교사를 향한 시선은 차가웠다. 학교 내부 징계를 받은 뒤 아동보호 재판을 기다리는 함씨는 억울한 마음에 극단적 선택까지 시도했다. 겨우 살아났지만, 여전히 깊게 잠들지 못한다.
많은 교사들이 지난 19일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에서 2년 차 새내기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을 자신의 일처럼 생각했다. 교사들은 누구라도 비슷한 일을 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동학대법을 악용하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교사들은 그저 ‘을’이었다고 주장했다.
아동학대 신고 과정에서 억울한 교사도 발생한다. 경기교사노조가 지난 3월 전국 시도교육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 최근 5년간 교사가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고발돼 수사받은 사례는 총 1252건으로, 연평균 250건이다. 이 중 경찰이 종결하거나 불기소 처분을 받은 사례는 676건(53.9%)으로 절반이 넘는다. 전체 아동학대 수사 사례 중 경찰 종결 및 불기소 처분된 사례가 14.9%인 것에 비하면, 교사들이 아동학대로 억울하게 고소당하는 비율이 매우 높은 편이다.
실체 없는 정서적 아동학대, 증명 어려워
“수업 중 한 학생이 화장실에 간다고 해서 보냈더니 화장실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갔습니다. 다른 학생들이 단체로 항의해서 돌아온 학생에게 어디에 갔는지 물어보자, 다른 반 친구에게 갔다고 했습니다. 이 얘길 들은 학부모는 제가 공개적인 장소에서 아이 잘못을 들춰 정서적 아동학대를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서울 한 초등학교 15년 차 교사 A씨)
아동학대 중에서도 정서적 아동학대는 신체적 학대와 달리, 의미와 판단 기준이 다소 모호하다. 결국 피해 아동의 증언이 우선시 되는 일이 많다. 서울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 김모씨는 “수업 중 돌아다니는 초등학교 1학년 아이를 제지했다가 학부모로부터 협박받았다”라며 “학부모는 해당 학생을 문제아로 낙인을 찍었다며 고소한다고 했다”고 털어놨다.
교사들은 학부모가 정서적 아동학대를 주장하면 반박하기 어렵다고 했다. 서울 한 초등학교에 근무 중인 15년 차 교사 A씨는 “정서적 아동학대는 실체가 없다”라며 “학생이 기분 나빠서 정서적 학대를 당했다고 하면, 아니라고 증명하기가 어렵다”라고 토로했다. A씨는 “하나를 해명하면 다른 문제로 민원이 반복된다”라며 “많은 교사들이 정서적 학대로 신고한다는 협박을 받고 있다”라고 말했다.
교사들 “악용되는 아동학대 관련법, 개정해야”
많은 교사들이 아동학대법 개정을 외치고 있다. 교사를 향한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로 아동학대법이 악용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14년차 교사 강모씨는 “아동학대 방지법은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어른들이 보호하는 법”이라며 “하지만 교육기관 종사자들의 훈육을 정서적 학대로 해석되고 있다”며 “해석이 애매한 교육 지도는 정서적 아동학대에서 제외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일부 교사들은 아동학대 면책권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24일 오후에 열린 서울시교육청과 교직 3단체의 기자회견에서도 아동학대 신고에 대한 교원의 면책권이 포함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통과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쿠키뉴스 취재에 응한 익명의 교사들 역시 “아동학대법으로 무차별 신고를 당하는 게 가장 힘든 일”, “아동학대 면책권이 제일 필요한 사안”, “교사의 정당한 교육권 행사를 방해하는 아동 학대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아동학대죄도 무고죄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A씨는 “아동학대죄로 고발해도 무고죄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악용되기도 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아동학대죄로 신고한 후 경찰조사를 받고 무혐의가 되더라도, 다른 사안으로 반복해서 신고 가능하다”라며 “악의적으로 근거 없이 신고하는 상황을 방어할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교사가 교육활동 중 아동학대 신고를 당해도 무조건 조사받지 않도록 보호하는 장치를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24일 기자회견에서 “(교사들이) 실제로 무분별하게 신고당하고 조사받는 일이 수치로도 나오고 있다”라며 “지금은 아동학대 신고되면 경찰이 당사자를 (무조건) 조사해야 하지만, 조사 시작 전에 교육청 의견을 듣는 절차를 하나 두는 국회 법안을 찬성 의견으로 적극 개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들을 생각해서 교실을 지킨 우리 교사들에게 돌아온 건 결국 한 교사의 죽음입니다. 정당한 교육활동을 보장하고 교사를 보호하는 장치가 필요합니다.” (서울 한 초등학교 9년차 교사 김모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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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정 기자 youjung@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