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쇄신을 위해 출범한 민주당 김은경 혁신위가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강력한 대국민 메시지를 통해 당 쇄신의 명분을 앞세워 당의 변화를 이끌어야 하지만, 되려 계파 갈등의 희생물로 전락할 위기다.
26일 쿠키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김은경 혁신위에 대한 당내 여론은 상당히 좋지 않다. 비명은 물론이고 친명도 혁신위의 역할에 상당한 의문을 제기하고 나섰다. 대외적으로 혁신위에 대한 비판을 내놓은 친명 인사는 없지만, 향후 혁신위의 공천 룰 개정 방향성에 주목하면서 일단 주시하고 있다.
우선, 비명계는 혁신위가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는 불가침 영역을 만들어 놓고 ‘가짜 혁신’을 하고 있다고 연일 비판 중이다. 혁신은 모든 것을 새롭게 바꾸겠다는 의미인데 여기에 당 대표를 제외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원욱 의원은 25일 페이스북을 통해 혁신위가 최근 내놓은 ‘체포동의안 기명투표’ 혁신안을 정면 비판했다. 이 의원은 “혁신위가 국민 신뢰 회복을 위하기보다는 이재명 대표 지키기에 더 몰두하고 있다”며 “기다렸다는 듯 이재명 대표 역시 ‘기명투표로 전환하는 게 필요하다. 책임정치라는 측면으로 바라본다’고 화답했다”고 지적했다.
윤영찬 의원도 앞서 지난 20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혁신이란 말은 모든 걸 바꾸고 새롭게 고친다는 의미인데 혁신위가 이재명 대표 체제에 대해서는 평가의 대상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며 “이재명 체제에 대한 평가 없이는 혁신도 없다”고 말했다.
비명계의 주장이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 대표에 대한 탄핵은 너무 나간 이야기지만, 당의 혁신을 위해서는 당 대표까지 포함한 혁신은 반드시 필요하다.
역대 혁신위 중 유일하게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김상곤 혁신위는 당 대표는 물론 전직 대표들의 기득권까지 포기하기를 촉구한 바 있다.
김상곤 혁신위는 지난 2015년 10차 혁신안을 통해 전직 당 대표들의 험지 총선 출마를 촉구했다. 당시 총선 불출마 입장이던 문재인 당 대표에게는 부산 출마할 것을 요구했다. 당내 반발이 엄청났지만, 연일 시끄러운 가운데에서도 내놓은 혁신안 일부를 당헌·당규에 반영토록 해 꽤 성과를 도출했다.
친명계도 눈치만 보고 있을 뿐 혁신위에게 결코 호의적이지는 않다. 혁신위가 사실상 공천룰 개정을 예고한 가운데 혹여 본인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을까 일단 지켜보자는 태도다.
대신 ‘친명’ 이재명 강성 지지자들은 당원이라는 이름으로 혁신위를 연일 압박하고 있다. 당원존 ‘블루웨이브’에는 매일 혁신위 무용론에 대한 글이 쏟아지고 있다. 혁신위가 오는 26일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 등이 속한 ‘넥스트민주당’이 만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혁신위를 “민주당을 망치러 온 프락치”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한 당원은 “가뜩이나 2030 남성들의 거부 정서가 심각한 상황에 박지현 같은 ‘페미’ 매몰 인사를 만나겠다는 것이냐”며 “왜 아무런 직책도 없는 박지현 부류들을 먼저 만나겠다는 거냐. 더민주전국혁신모임부터 만나라”고 말했다. 여기서 더민주전국혁신모임은 당원 모임을 자처하고 있지만 사실상 친명 인사들로 채워진 친명 원외 조직이다.
또 혁신위원 중 직설 화법으로 주목받은 서복경 혁신위원을 향한 비판 공세도 이어지고 있다. 서복경 혁신위원이 올해 초 윤석열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에서 활동한 이력을 문제 삼으면서 혁신위의 해체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거세다.
더욱 큰 문제는 혁신위의 존재감이다. 혁신위는 필연적으로 시끄럽고 껄끄러운 조직이 돼야 한다. 연일 정치권의 입방아에 오르내려야 하나 너무 조용하다. 23일 울산을 시작으로 전국을 순회하면서 당원과 국민의 목소리를 듣겠다고 한 상태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김상곤 혁신위에서 청년 혁신위원으로 활동한 이동학 전 최고위원은 25일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혁신위의 기획력과 전략이 부족한 게 문제라고 진단했다.
이 전 최고위원은 “개인적으로 불체포특권 포기에 대해 동의하지는 않지만, 혁신위가 불체포특권 포기를 혁신안으로 정했다면 시간을 끌 게 아니라 바로 동의를 받을 것까지를 명확히 주문했어야 했다”며 “혁신은 혁신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득점하는 포인트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당 지도부 차원의 당 혁신이 쉽지 않아 혁신위를 꾸린 것인데 혁신안을 만들어 지도부에게 그냥 던지는 식의 전개를 하니 당 지도부도 부담스러운 것”이라며 “혁신위를 지지하는 당내 그룹은 물론이고 국민들의 압도적 지지와 관심도 받지 못하니 외딴섬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반면 혁신위는 역할을 잘하고 있지만, 당이 이를 적절히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정치 9단’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25일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윤석열 정권에서 쏟아지는 이슈에 묻힌 까닭이지 혁신위가 당의 혁신에 상당히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본다”며 “국민과 당원이 바라는 민주당은 단합된 강한 민주당”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김은경 혁신위원장이 ‘명낙회동’을 하면 두 분이 어깨동무하고 나오라는 멋진 말을 하지 않았느냐”고 부연했다.
황인성 기자 his11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