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유치원 선생님이 아이를 폭행했다며 학부모로부터 아동학대 신고를 당했어요. 알고 보니 아이가 꿈에서 겪은 일을 이야기한 거였어요. 영유아는 현실과 상상을 구분해 판단하는 게 어려운 시기인 만큼 이해가 돼요. 하지만 (어른인) 부모는 사과도 없이 아이만 다른 유치원으로 옮기더라고요. 유치원 교사는 당시 충격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어요.”
최근 학부모 악성 민원에 따른 교권 침해가 주목받는 가운데, 유치원·어린이집 교사들도 악성 민원과 교권 침해에 시달린다는 목소리가 쏟아진다. 현재 만 3~5세 아동이 다니는 유치원은 교육부가, 만 0~5세를 대상으로 하는 어린이집은 보건복지부가 담당한다. 보호 책임이 있는 주관부처는 다르지만, 교사들이 과도한 학부모 민원에 시달리는 점은 같다.
윤지혜 전국국공립유치원교사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은 “유치원 교사들이 (악성 민원을) 당하고 있는 게 너무 만연해 그게 교권 침해인지도 인지하지 못하다가, 이번 서초구 교사 사망 사건이 발생한 이후 여러 사례를 접하며 ‘내가 교권 침해를 당했구나’ 느끼는 교사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노조는 현재 유치원 교사들로부터 교권·인권 침해 사례를 수집하고 있다.
유치원 교사 A씨는 코로나 격리를 마치고 오랜만에 등원한 아이의 학부모로부터 “네가 우리 아이를 코로나바이러스 취급을 하느냐” “머리를 망치로 깨버리겠다” “자녀가 있다면 걔도 죽이겠다” 등의 폭언과 욕설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이날 예정된 ‘안전교육(코로나19 거리두기)’ 수업이 화근이었다. 무너진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특별휴가 1주일을 받았지만, 큰 도움은 되지 못했다. 아이를 볼 때마다 망치 생각이 났다. 자꾸 눈물이 나서 하루에도 수십 번 화장실로 달려갔다.
또 다른 유치원 교사 B씨는 40도 고열로 힘들어하는 아이를 걱정해 학부모에게 전화를 걸었다가 봉변당했다. 당시 제약회사 리콜 문제로 유치원에 보유하고 있던 해열제를 먹일 수 없었다. 유치원으로 찾아온 학부모는 “무슨 유치원이 애 약도 하나 준비 안 해놔서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을 오라 가라 하냐”며 약 봉투를 B씨의 얼굴에 집어 던졌다.
인신공격이나 모욕적인 발언을 듣기도 했다. 한 학부모는 임신한 교사에게 “왜 평일에 산부인과에 가나”며 “방학 때 출산하지, 왜 이제 애를 가져서”라고 말했다.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을 침해하는 경우도 많았다. 아동에게 욕을 먹거나 폭행당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유치원 교사 C씨는 한 아동이 “X새끼”라고 욕하고, 계속 교실 밖으로 나가는 등 수업을 방해하는 문제 행동을 학부모에게 알렸다. 그러나 C씨에게 돌아온 건 “우리 아이는 사랑이 많이 필요한데, 선생님 사랑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란 답이었다.
어린이집 상황도 다르지 않다. 13년차 어린이집 교사 전모씨는 한 학부모로부터 “어린이집에서 모기를 물려 온 건 선생님이 관심을 안 가져서”라며 “애가 없어서 모른다”는 말을 듣고 상처받았다. 또 다른 학부모는 밤 11시에 개인 핸드폰으로 전화해 민원을 넣기도 했다. 아이 상태를 온종일 체크해달라는 부탁은 어린이집에서 흔한 일이다. 5년차 어린이집 교사 김모(50대)씨는 “민원에 교사들이 굉장히 힘들어하고, 그만두는 사람도 많다”고 했다.
현재 어린이집에서 훈육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보육교사들은 다른 원아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교육적인 훈육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씨는 “특이 행동을 하는 아동이 다른 친구를 때리고 괴롭혀도 보육교사는 달래는 수밖에 없다”며 “다른 아이들을 위해서도 교육적인 훈육은 필요하다”고 했다. 전씨도 “다른 친구들 괴롭히면 안 된다고 말하거나 아예 문제 행동을 하는 아이 옆에 붙어있는 수밖에 없다”며 “가정에 아동의 행동에 관해 이야기해도 속상해만 하고 별다른 조치가 없어 답답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악성 민원과 교권 침해가 이어져도 적극 대응이 어려운 것은 이들을 위한 실질적인 보호막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영유아는 취학 아동보다 말로 표현을 잘하지 못하는데다, 아이의 첫 사회활동에 대한 학부모 관심과 불안이 높은 시기다. 학부모 민원이 초·중·고등학교보다 잦은 이유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서울 서초구 초등교사 사망 사건과 관련해 전국 유·초·중등 교사를 대상으로 ‘재발 방지 대책 의견조사’를 한 결과, 학교급 중 유치원 교사(52%)가 가장 많이 불안한 감정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년이 낮을수록 학부모의 개입이 더 큰 불안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윤 부위원장은 “교육부에서 유치원 교사들을 위해 해주는 게 전혀 없다. 공무상 요양 제도가 있긴 하지만, 현장에서 허가가 잘 나지 않는 곳이 많다”며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공무상 요양을) 증명하기 위한 서류도 많아 상당수 교사가 본인 병가로 처리한다”고 했다.
이어 “초중등교육법에는 생활지도가 명시돼 있지만 유아교육법에는 들어가있지 않다”며 “제도적인 부분에 있어 생활지도 근거가 없기 때문에 아동학대로 몰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학부모들도 이런 환경을 당연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치원부터 시작된 악성 민원과 교권 침해들이 그대로 초등학교, 중학교로 올라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함미영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보육지부장은 “보육교사는 유치원 교사와 달리 노동자로, 근로기준법을 적용받게 돼 있다. 고용노동부의 감정노동자 보호 조치가 있긴 하지만 현장에서 제대로 적용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2019년 김포와 2020년 세종에서 어린이집 보육교사가 극단 선택한 사건 등으로 보육교사들은 보건복지부에 어린이집만을 위한 감정노동자 보호 조치 매뉴얼을 만들어 달라고 여러 차례 제안했지만 달라진 점은 없었다. 함 지부장은 “복지부는 (악성 민원·아동학대 신고에 대한) 심각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관리자의 책임 떠넘기기에 대한 부담도 크다. 함 지부장은 “어린이집에 문제가 생기면 관리주체인 원장이 보육교사를 보호하지 않고, 오히려 ‘무릎을 꿇고 사과해라’ ‘혼자 책임져라’ ‘관둬라’ 등 교사를 내모는 경우가 많다”며 “악성 민원이 발생했을 때 원장이 학부모에게 명확하게 이야기를 전달해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어린이집 보육은 가정과 연계에서 하는 것인데, 오롯이 기관에서 아동에 대한 모든 걸 다 맡아야 한다는 잘못된 인식이 문제”라며 “교사와 가정이 협력 관계라는 인식 개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