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신용평가사 피치가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전격 강등했다. 3대 국제 신용평가사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한 것은 2011년 이후 12년 만에 처음이다. 2011년 당시 美 신용등급 하락의 여파로 코스피는 물론 글로벌 증시가 폭락한 바 있어 시장의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피치는 1일(현지시간) 미국의 신용등급(IDRs·장기외화표시발행자등급)을 ‘AAA’에서 ‘AA+’로 하향하고 등급 전망을 기존 ‘부정적 관찰 대상’에서 ‘안정적’으로 변경했다. 피치는 강등 배경에 대해 “향후 3 년간 예상되는 미국의 재정 악화와 국가 채무 부담 증가, 거버넌스 악화 등을 반영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반복되는 정치권의 부채한도 협상 상향 대치 리스크가 다른 나라에 비해 지배구조 약화를 초래하는 것으로 지적했다.
피치에 따르면 올해 미국의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6.3%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미국의 GDP는 지난해 25조달러(약 3경2262억원)를 넘어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다. 미국의 GDP 대비 재정적자는 지난해 3.7% 수준에서 올해 6.3%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연방 세수 감소와 지출 증가, 금리 인상에 따른 이자 부담으로 2024년에는 6.6%, 2025년에는 6.9%까지 더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미국은 적자 확대에 따라 32조달러가 넘는 부채를 가진 세계 최대 채무국이다. 미 국민 1인당 9만 7537달러의 빚 부담을 지고 있는 셈이다. 올해 1분기 기준 미국 다음으로 부채가 많은 국가는 중국(14조달러), 일본(10조 2000억달러), 프랑스(3조 1000억달러), 이탈리아(2조 9000억달러) 순이며, 미 부채 규모는 이들 4개국의 부채를 모두 합친 수준이다.
피치는 부채 한도 상향 과정도 문제라고 봤다. 미국 정부가 합법적으로 빌릴 수 있는 총금액을 제한받고 있으며, 부채한도를 늘리기 위해서는 미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매번 부채한도 상향 문제를 두고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미 정부의 디폴트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피치는 “미국 정치권이 부채한도 상향 문제를 놓고 대치하고 이를 마지막 순간에 해결하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며 “재정 운영에 대한 신뢰도를 손상 시켰다”고 봤다.
금융시장 충격 우려 “영향은 제한적일 것”
시장에서는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강등에 따라 미칠 파장에 주목하고 있다. 앞서 2011년 8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미국 신용등급을 강등했을 당시 미국 증시가 15% 이상 폭락했다. 이후 미국 증시의 충격은 글로벌 증시 전체로 확산됐다. 코스피의 경우 8월 1일 2172.27포인트에서 9 일 1801.35포인트로 6거래일 만에 17%나 떨어졌다. 8월9 일에는 유가증권시장 거래대금이 13조 5050억원에 달할 정도로 투매가 발생했다.
다만 이를 두고 이번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강등이 시장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신용등급의 하향 악영향은 일단 제한적일 것으로 판단된다”며 “2011년 신용등급 하향 조정의 폭락 사태가 발생했지만 약 2개월 이후 미국 증시는 반등한 바 있다”고 분석했다. 신용등급 조정의 여파가 장기적으로 증시에 악재로 작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어 신용리스크 측면에서 “2011년은 미 연준도 위기극복을 위해 양적완화 정책을 추진하던 시기였지만 현 시점은 미 연준의 고강도 금리인상 사이클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신용리스크가 진정되는 분위기”라며 “리스크 강도 측면에서 2011년과 현 시점은 대비된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박 연구원은 “2011년 미국 신용등급 하향 조정이 글로벌 증시에 큰 충격을 주었던 배경에는 유럽 신용위기도 한 몫을 했다”며 “현재는 글로벌 경제가 막대한 부채를 안고 있는 것은 분명 리스크이지만 이번 미국 신용등급 하향 조정이 글로벌 부채 리스크의 트리거 역할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피치의 신용등급 강등에 미 정부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이날 성명을 내고 “피치의 결정에 강력히 동의하지 않는다”며 “피치의 신용등급 변경(강등)은 임의적이며 오래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했다”고 반발했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