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석방 없는 종신형’ 국민들은 찬성, 전문가는 찬반 갈려

‘가석방 없는 종신형’ 국민들은 찬성, 전문가는 찬반 갈려

기사승인 2023-08-19 06:00:27
4일 오전 경기 성남시 분당 서현역 인근 대형 쇼핑몰에 보안요원과 경찰이 배치돼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지난달부터 잇따른 묻지마 흉기 난동과 살인 예고 글로 시민들이 불안을 호소하며 피의자들의 처벌 수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실상 사형제가 폐지된 가운데 기존 종신형보다 더 강한 처벌인 가석방 없는 종신형(절대적 종신형) 도입이 논의되자,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찬반이 갈리고 있다.

시민들 “흉악범 가석방? 끔찍해”

14일 법무부는 ‘가석방이 허용되지 않는 무기형(절대적 종신형)’을 신설한 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입법 예고했다. 지난 1997년 이후 사형 집행을 하지 않는 실질적 사형폐지국이 된 상황에서 흉악범을 사회로부터 영구 격리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17일 한덕수 총리도 흉악범죄에 절대적 종신형 도입 의사를 밝히며 힘을 보탰다.

국회에서도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 판결을 선고할 수 있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9일 “불행하게도 우리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돼야 할 괴물은 존재한다”며 “사형집행이 어렵다면 가석방 없는 절대적 무기형을 만들고 무기수에 대한 가석방 요건과 기간도 더 강화해야 한다”며 법안 발의 배경을 밝혔다.

많은 국민들이 절대적 종신형 도입에 찬성하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업체 한국갭럽이 지난 11일 ‘흉악범죄에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 찬반을 묻는 조사를 진행한 결과 87%가 찬성에 손을 들었다. 사형제 존치를 원하는 국민도 많다. 한국갤럽이 지난 1994년부터 2022년까지 총 6차례 진행한 사형제 존폐 여론조사에서도 절반 이상의 국민이 단 한 번도 사형제 폐지에 찬성한 적이 없는 걸로 나타났다. 지난해 조사에선 사형제 존치를 원하는 국민들이 69%에 달해 폐지를 원하는 국민들(23%)보다 우세했다.

시민들은 흉악범들에게 지금보다 더 강한 처벌을 하길 바라는 분위기였다. 직장인 김모(29)씨는 “흉악범들이 가석방으로 사회에 나온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 이춘재도 (가석방을 위해) 교도소에서 모범수로 지냈다”며 “흉악범들의 범행 의지를 꺾고 국민을 안전하게 지키는 방법을 다 동원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은행원 이모(29)씨는 현재 사형과 태형을 집행 중인 싱가포르를 예로 들며 “사형을 못하면 태형이라도 집행해 법을 어기면 처벌받는다는 사실을 보여줬으면 한다”고 전했다.

4일 오전 경기 성남시 분당 서현역 인근 대형 쇼핑몰에 보안요원과 경찰이 배치돼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전문가 “현실적인 대안” vs “위헌 요소 있어” 

법무부는 절대적 종신형을 도입해야 하는 이유로 △ 오판 위험성 없고 △ 미국 등 선진국에서 도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들었다. 여기에 법원에서 무기형을 선고할 때 가석방 허용 여부를 함께 선고하는 조항도 신설한다.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가석방이 허용되지 않는 무기형이 도입되면, 흉악범을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하는 실효적인 제도로 운영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무기형 수감자가 유기형 수감자보다 더 빠르게 가석방 조건을 충족하는 현 형법의 문제점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형법 72조에 따르면, 징역이나 금고의 집행 중에 있는 사람은 행상(行狀)이 양호해 뉘우침이 뚜렷한 때에는 무기형은 20년, 유기형은 형기의 1/3 지난 후 가석방할 수 있다. 단서 조항으로 유기형은 잔여 형기가 10년 이상이면 가석방이 불가능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무기징역 수감자는 복역한 지 20년이 지나면 행정 처분으로 가석방이 가능하지만, 징역 40년 유기형 수감자는 복역한 지 30년이 지나야 가석방 심사 대상에 오를 수 있는 모순이 발생하는 것이다.

원혜욱 인하대학교 로스쿨 교수는 “실질적 사형 폐지국에서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 저질렀음에도 감형되고, 감형된 후에 가석방까지 되면 결국 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절대적 종신형을 “현실적 대안”으로 본다. 이어 “사형선고가 인간 존엄성 측면에서 판사에게 상당한 부담을 준다”라며 “절대적 종신형이 도입되면 판사들이 범죄를 더 제대로 판단해, 죄질에 합당하는 선고가 내려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고 전했다.

4일 오후 서울역 대합실에 설치된 TV에서 윤희근 경찰청장의 흉기난동 관련 대국민 담화 발표가 생중계되고 있다. 연합뉴스

반대로 절대적 종신형이 사형제의 대체 형벌로 많은 나라에서 논의 중이지만 위헌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010년 2월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전원합의체)는 사형제에 합헌 결정에서 “절대적 종신형이 사형에 비해 인도적이라 할 수 있으나 자연사할 때까지 수용자를 구금한다는 점에서 사형에 못지않은 형벌”이라며 “절대적 종신형 제도는 사형제도와는 또 다른 위헌성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법무부가 모델로 삼은 미국에서 절대적 종신형으로 평균 수감자수가 증가해 다양한 문제를 유발하고 있는 것도 눈여겨봐야 한다. 2020년 기준 미국 수형자의 평균 수감 기간은 약 37년으로 과밀화된 시설에서 수형자 간 폭력 발생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수감자 형기가 다시 연장되며 교도 관리 인력 증가 등 교정 운영에 상당한 비용이 발생한다. 고령 수형자는 젋은 수형자보다 의료·관리비용이 2~3배가량 드는 등 비용 지출도 커진다. 미국에선 교정시설이 수형자 보호시설 역할 수행보다 무해화된 이들을 사회로 복귀시켜 범죄 예방 등에 사용하는 것이 더 효과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절대적 종신형이 국민 법 감정에 영합한 정치적인 입법이기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의 ‘사형 폐지에 따른 법령정비 및 대체형벌에 관한 연구’에서는 “특히 정치권에서는 사형제 폐지시 가석방 불가능 종신형을 대체 형벌로 주장하며 정치적 이익 획득을 목표하기도 한다”고 적고 있다. 

권지혜 박사는 2022년 숭실대학교 법학연구소에서 발표한 법학논총 제52집 ‘미국의 가석방 불가 종신형에 관한 비판적 고찰’에서 절대적 종신형에 대해 “응보 및 사회안전에 관한 시민들의 법감정에 영합한 가석방 불가 종신형보다는 무기형을 유지하되, 가석방 심사제도의 실질화와 정당성 확보를 위한 제도적 보완을 고려하는 것이 합리적 방안”이라고 밝혔다.

유민지 기자 mj@kukinews.com
유민지 기자
mj@kukinews.com
유민지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