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차별 칼부림, ‘형 가중’ 안되는 이유 “명확성 부족”

무차별 칼부림, ‘형 가중’ 안되는 이유 “명확성 부족”

묻지마·증오형 범죄 처벌 수위↑ 입법 시도…명확·비례성 부족 ‘계류 중’
무기징역 가석방 전격 배제 입법 추진도
전문가들 “엄벌보다 예방 활동 더 시급…순찰 및 CCTV 보완해야”

기사승인 2023-08-22 06:00:23
4일 오전 경기 성남시 분당 서현역 인근 대형 쇼핑몰에 보안요원과 경찰이 배치돼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연달아 신림역·서현역 칼부림 사건이 발생하고 이를 모방한 범죄 예고 글이 계속되면서 범죄의 형량을 높여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가 크다. 하지만 ‘묻지마·증오형 범죄’의 개념이 불명확해 법 규정화하기 어렵다는 현실의 문제가 따른다.

전문가들은 형량을 가중 처벌하는 엄벌주의보다는 범죄를 저지르면 반드시 처벌받는다는 ‘처벌의 확실성’과 경찰의 실질적 예방 노력이 더욱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22일 쿠키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21대 국회에서는 ‘묻지마’ ‘무차별’ 범죄에 대해 형량을 가중하는 내용의 관련 법안이 앞서 여야에서 각각 1건씩 총 2건이 발의됐다. 유정주 의원은 ‘묻지마·무차별’ 범죄 형량을 가중하는 법안을, 조경태 의원은 ‘증오형 보복 범죄’의 형량을 법정형 두 배로 가중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두 법안 모두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채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사회에 대한 증오심, 적개심을 표출할 목적’, ‘무차별 범죄’ 등의 개념이 불분명하고 처벌의 비례성의 원칙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게 이유다. 쉽게 말해 ‘증오나 적개심’의 범위를 어디까지 규정할지 명확하지 않고, 다른 형벌 수준에 비해 과도하게 처벌한다는 것이다.

유정주 민주당 의원은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지난 2021년 9월 법사위 1소위에 회부됐지만 이후 논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며 “법사위가 소속 상임위가 아니다 보니 직접 관여가 어려웠다. 최근 ‘묻지마 범죄’로 다른 의원님들의 개정안 발의가 예상되는 만큼 병합 심사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근 발생한 묻지마, 증오형 범죄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정치권에서는 형 가중 이외의 입법 움직임도 있다. 국민의힘은 지난 5일 당정협의회를 통해 무기징역의 가석방 배제 형법 개정안 추진을 예고했다. 현행 형법은 무기형이라도 20년이 지나면 가석방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는데 흉악 범죄의 무관용 원칙에 따라 이를 개정하겠단 것이다. ‘칼부림’을 예고하는 행위를 처벌하고 규제하는 법안 발의도 잇따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범죄 형량을 강화하는 등의 엄벌주의는 예상외로 실질적인 범죄예방 효과가 크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보다는 경찰의 순찰 기능을 강화하고 CCTV 등을 추가 설치해 범죄를 저지르면 반드시 처벌받게 된다는 인식을 확산해야 한다.

정세종 조선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21일 쿠키뉴스에 “사형집행 현장에서도 소매치기 사건이 발생한다. 처벌 형량이 높다고 해서 범죄 예방효과가 큰 것은 아니다”며 “이보다는 ‘범죄를 저지르면 99% 다 검거되고 처벌받는다’라는 처벌의 확실성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 교수는 “서현역에서 칼부림 사건이 벌어졌다고 장갑차를 배치하고, 특공대를 투입하고 난리를 쳤지만 사각지대가 생겼고 또 다른 사건들이 발생하지 않았느냐”며 “제도 개선을 통한 엄벌주의보다 경찰의 기본 근무를 좀 더 촘촘하게 하는 게 범죄예방에 효과가 더 크다”고 부연했다.

신이철 원광디지털대 경찰학과 교수는 쿠키뉴스에 “법정형을 높이는 게 하나의 범죄예방책이 될 수 있지만, 결코 능사가 아니다”며 “다중 밀집 지역에 대한 순찰을 늘리고 CCTV를 확대 설치해 예방하는 게 더욱 효과적이다. 당장 경찰이 눈앞에 있으면 범죄 의지가 대폭 낮아진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신 교수는 “증오형 범죄의 경우 형량이 높다고 무서워서 범죄를 안 저지르는 억제 효과가 거의 없다”며 “대신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이들을 치료하고 보호하는 시설 등을 확충하는 게 더욱 현실적이다”고 덧붙였다.

황인성 기자 his1104@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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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1104@kukinews.com
황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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