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오래 있고 싶은 아동은 없다

학교에 오래 있고 싶은 아동은 없다

저녁 8시까지 학교 머무는 ‘늘봄학교’
돌봄 주체 ‘아동’ 의견 없는 정책 도입

기사승인 2023-09-12 06:05:01
지난 2월 서울 서대문구 가재울초등학교에서 돌봄교실이 운영되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학교 수업 시간 외에 아동들의 돌봄을 학교에서 전담하는 것이 옳은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업무가 많고 공간이 부족한 학교보다 해당 지역에서 책임과 운영을 함께 나눠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늘봄학교는 희망하는 모든 초등학생에게 정규수업 전후로 교육·돌봄 통합 서비스다. 학교 정규수업 전인 오전 7시부터 수업 이후 오후 8시까지 교육·돌봄이 이뤄진다. 지난 1일부터 전국 시도교육청 8곳의 총 459개 초등학교에서 늘봄학교 시범 운영에 돌입했다. 정부는 시범 운영을 거친 뒤, 내년부터 전국으로 확대 도입한다는 방침이다.

‘늘봄학교’ 정책이 진행되고 있지만, 돌봄 공간이 꼭 ‘학교’여야 할 이유는 없다. 학교 공간도 부족하고 교사들 업무도 과중해지기 때문이다. 방과후학교 돌봄 경험자인 박영란 인평초등학교 교사는 “담임교사는 학생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일 외에도 업무가 많다”라며 “방과 후 돌봄 업무로 학급을 돌보는 데 소홀할 수밖에 없다”라고 했다. 그는 “늘봄학교를 지자체로 이관하거나 협력하는 지역단위 전담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부모들은 안전상 이유로 학교에서 돌봄을 맡아주길 바란다. 학교 내 돌봄을 담당하면 최장 오전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긴 시간 동안 이동하지 않고 아이들을 학교에 머물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8일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교육부에서 받은 ‘2023년도 범정부 온종일 돌봄 수요조사’ 자료에 따르면 초등 1~5학년과 2023학년도 예비 취학아동 보호자 8만9004명 중 49.5%가 돌봄을 희망한다고 응답했다. 희망 돌봄기관(중복응답)으로는 초등돌봄교실이 81.4%로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다. 학교돌봄터가 36.7%로 뒤를 이었고 다함께돌봄센터·지역아동센터는 10%대였다.

아동들 역시 장시간 학교에 머무는 걸 원하지 않는다. 지난달 22일 국회에서 열린 ‘늘봄학교, 한 아이를 키우는 데 필요한 온 마을의 참여를 위한 토론회’에서 김송이 전 서울여성재단 연구위원은 “양육자들과 달리 아동들은 학교 공간을 선호하지 않는다”라며 “아동 관점에서 초등돌봄교실 운영 개선 없이 운영시간 확대는 오히려 아동권을 침해할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지난 2월 서울 서대문구 가재울초등학교에서 돌봄교실이 운영되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일부 전문가들은 돌봄의 운영과 책임을 학교가 아닌 지자체가 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영 중앙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늘봄학교, 한 아이를 키우는 데 필요한 온 마을의 참여를 위한 토론회’에서 “(돌봄 체계의 주체를) 기존 교육부와 초등학교 중심에서 중앙정부와 시군구 중심인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로 가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최 교수는 “돌봄 수요가 많으면 학교에 빈 공간이 없을 수 있다”며 “지역사회 자원을 활용하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학부모들도 학교보다 지자체 돌봄에 대한 만족도가 더 높다. 김송이‧조수진 연구위원이 공개한 지난해 서울시 초등돌봄 통합체계 구축 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양육자들의 초등돌봄교실에 대한 평균 만족도는 3.82점인 반면, 지역아동센터는 4.33점, 우리동네 키움센터는 4.37점이었다. 초등돌봄교실의 경우 ‘이동거리/안전’ 4.44점, 이용 시간 4.11점으로 높은 점수를 받았으나 프로그램과 교사 전문성, 아동 중심 운영 등에서는 지자체 돌봄교실이 만족도가 높았다.

아동은 학교가 아닌 가정의 돌봄을 원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늘봄학교의 이용자인 아동의 관점에서 돌봄에 접근해야 한다는 얘기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A씨는 “늘봄학교는 기존 돌봄과 달리, 아침부터 저녁까지 돌봐준다. 이건 부모의 역할을 빼앗는 것”이라며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하는 직장 근무 시간만 지켜져도 아이를 돌볼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학부모 B씨도 “아이들은 집에서 부모와 함께이길 원한다”라며 “사회가 아이들을 봐줄 테니 부모들은 늦게까지 일하라는 게 과연 정상적인가”라고 비판했다.

“공급자 중심 논의가 아닌 아동과 양육자가 원하는 돌봄이 무엇인지 먼저 고민하고 이를 실현할 방안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김송이 전 서울여성재단 연구위원)

조유정 기자 youjung@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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