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시선]‘극단적 대결’ 여과 없이 드러낸 국회

[편집자시선]‘극단적 대결’ 여과 없이 드러낸 국회

야당 대표 체포동의안-총리 해임안 헌정사상 첫 통과
격랑에 빠진 정국, 무엇이 국민위한 길인지 성찰 필요

기사승인 2023-09-25 10:31:53

쿠키뉴스 전북본부 데스크칼럼 <편집자시선>은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과 현안들에 대해 따끔하게 지적하고 격려할 것은 뜨겁게 격려할 것입니다. 특히 우리 주변의 정치적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전라북도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2023년 9월 21일, 이날은 국회 헌정사에 가장 ‘잔인’했던 날로 기록될 것이다.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체포동의안과 한덕수 국무총리 해임건의안이 가결됐고 현직 검사인 안동완 안양지청 차장검사의 탄핵안 역시 사상 처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회 본회의가 오후 2시 개회한 이후 불과 몇 시간의 시차를 두고 헌정사상 초유의 일들이 하루에 모두 처리된 것이다. 

이날 본회의장에서는 여야 고성이 난무했고, 국회 밖에서는 이 대표 체포동의안 부결을 압박하는 민주당 강성 지지층의 집회가 종일 이어졌다. 정치적 분수령이 될 수 있는 초대형 안건들이 동시에 표결된 국회 풍경은 극단적 대결로 치닫고 있는 우리 정치의 현주소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가장 먼저 상정된 한덕수 국무총리에 대한 해임건의안은 무기명 전자투표로 이뤄져 찬성 175명, 반대 116명, 기권 4명으로 가결됐다. 총리 해임건의안이 국회를 통과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과거에도 총리 해임건의안이 상정됐지만 정일권·황인성·이영덕 총리 해임건의안은 부결됐고, 김종필·이한동·김황식 총리 해임건의안은 기한(본회의 보고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 내 표결이 이뤄지지 않아 폐기됐다.

국회의 해임 건의는 구속력이 없어 윤석열 대통령이 수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현 정부 들어 국회에서 박진 외교·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해서도 해임 건의하였으나 윤 대통령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통령실은 야당의 총리 해임 건의에 대해 ‘정치공세’로 인식한다는 입장이다.

이어 상정된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은 초미의 관심이었다. 특히 이 대표가 전날 "명백히 불법 부당한 이번 체포동의안의 가결은 정치검찰의 공작 수사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라며 소속 의원들에게 부결을 호소한 상황이어서 더욱 촉각이 집중됐는데 찬성 149명, 반대 136명, 기권 6명, 무효 4명으로 의결정족수에서 2표를 넘겨 통과됐다. 

국민의힘 소속 의원 110명에 그동안 찬성 입장을 보인 정의당(6명)과 시대전환(1명)·한국의희망(1명), 여권 성향 무소속 2명이 찬성표를 던졌다고 가정할 경우 민주당에서 29명의 의원이 찬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대표는 법원의 영장실질심사에서 구속 여부를 판단 받게 됐다.

또 민주당이 주도한 '검사 안동완 탄핵소추안'도 국회 본회의에서 총투표수 287표 중 찬성 180표, 반대 105표, 무효 2표로 가결해 헌법재판소로 넘겨졌다. 현직 검사에 대한 탄핵 소추가 이뤄진 것도 헌정 사상 처음이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과 관련해 피해자를 보복 기소했다는 의혹이 있다고 탄핵소추된 안 차장검사는 곧바로 직무가 정지되고 헌재의 결정을 기다리게 됐다.

정국은 그야말로 격랑 속으로 빠져들었다. 정기국회 내내 여야의 강 대 강 대치가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당장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표결뿐 아니라 국정감사와 소위 ‘노란봉투법’ 등 쟁점 법안 심사 등에서 건건이 대립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는 사실상 재신임 투표라는 해석까지 나온 체포동의안 가결로 리더십에 큰 타격을 입게 됐고 박광온 원내대표 등 원내 지도부가 책임을 지고 총사퇴했다. 새 원내대표 선출을 위한 절차에 착수했지만 ‘피의 복수’ ‘배신’과 같은 섬뜩한 비난을 넘어 “민주당을 불지르자”는 선동과 살인 암시 글까지 등장했다. 계파 갈등이 심화하고 있어 ‘심리적 분당 상태’라는 표현까지 나올 지경에 이르렀다. 

병원에 입원 중인 이 대표는 이날 “검사 독재정권의 폭주와 퇴행을 막겠다. 국민을 믿고 굽힘 없이 정진하겠다”는 입장문을 냈다. 불체포특권 포기 입장 번복에 대한 사과나 체포동의안 가결에 대한 인정 등은 없었다. 

이 대표에 대한 법원 영장실질심사는 26일로 예정됐다. 사법적 판단은 이제 법원의 몫이다. 변수는 이 대표가 단식은 중단했지만 건강 상태에 따라 영장 심사 일정과 방식 등이 모두 달라질 수 있다. 

여야는 영장실질심사 결과에 따라 다시 한번 희비가 엇갈릴 것이다. 영장이 발부되면 민주당은 당 대표 부재 속에 리더십 교체를 요구하는 비명계 목소리가 거세질 것이다. 하지만 영장이 기각된다면 이 대표는 총선까지 당을 진두지휘할 명분을 확보하게 되고 국민의힘은 검찰의 무리한 수사였다는 비판과 함께 정치적 역풍을 맞게 된다.

전북지역 의원들의 향후 행보도 주목된다. 새만금잼버리 파행 이후 예산이 대폭 삭감되고 중앙 무대에서 발언권과 역할이 축소되고 있는 상황에 당이 좌초할 위기인 데다 지역 여론도 좋지 않아 의원 스스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더 이상의 혼란을 최소화하고 상황을 질서 있게 수습해야 다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제1야당으로서 윤석열 정부의 국정 운영을 견제하고 파산 직전의 민생을 챙기는 임무에 소홀해서는 안 된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어떤 길이 민주당의 미래를 위한 길인지 깊이 성찰하기 바란다.
김영재 기자
jump0220@kukinews.com
김영재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