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손’도 필요한 추석 전 반찬가게, 얼마나 바쁜지 [가봤더니]

‘고양이 손’도 필요한 추석 전 반찬가게, 얼마나 바쁜지 [가봤더니]

해 먹는 추석에서 사 먹는 추석으로
반찬가게 찾는 주부들 “힘들어서 명절 음식 못해”

기사승인 2023-09-28 06:00:30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27일 오전 경기도 광명 전통시장의 한 반찬가게에서 꼬치전이 노릇하게 구워지고 있다. 사진=임지혜 기자

전통시장 초입부터 고소한 기름 냄새가 밀려들었다. 시장 안 반찬가게는 어느 때보다 활기가 넘쳤다. 새벽부터 준비한 명절 음식은 순식간에 팔려나갔다. 명절 준비가 간소화되고 물가가 오르며 해가 갈수록 명절 전 반찬가게를 찾는 손님이 많아지고 있다.

코로나19 엔데믹 이후 첫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27일. 반찬가게에 얼마나 많은 손님이 밀려드는지 직접 알아보러 경기 광명시 한 전통시장을 방문했다. 일하기로 한 반찬가게에선 쉴 틈 없이 음식을 만드는 직원들과 손님으로 북적였다. 일을 시작하자마자 앉을 틈도 없이 서서 계속 반찬을 만들고 전을 부쳤다. 전날 반찬가게 사장님이 “명절 때는 고양이 손이라도 필요하다”고 했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앉을 수 있을 때 쉬어요”

기자인 동시에 15년차 주부라 명절 음식 준비엔 자신이 있었다. 큰 착각이라는 걸 깨닫는 데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집에선 애호박 하나만 씻어 전으로 부치면 됐는데, 반찬가게는 규모가 달랐다. 애호박 63개 포장 비닐을 까고 허리를 두드리자, 가게 직원이 “어제 동그랑땡만 9000개 빚었어요”라며 코웃음 쳤다.

새벽 7시 전부터 준비를 시작했지만, 오전 10시가 돼도 반찬 진열대를 가득 채우지 못했다. 새벽부터 만든 음식은 예약된 손님이 가져가거나 포장해서 진열대에 놓기도 전에 팔렸다. 오후에 가까워질수록 더 바빠졌다. 노릇하게 구워진 각종 전과 삼색나물, 코다리조림, 홍어무침, 겉절이, 나박김치 등을 보기 좋게 진열하면, 금세 판매돼 다시 빈자리가 생겼다. 딱히 뭘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오후 1시가 넘었지만, 다들 밥 먹을 생각도 없어 보였다.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27일 오전 경기도 광명 전통시장의 한 반찬가게에서 일하는 동안 손님 발길이 이어져 쉴 틈 없었다. 사진=임지혜 기자

“이제 허리 아파서 명절 음식 못해”

사 먹는 음식으로 대신하는 명절의 장점은 ‘편리함’이다. 반찬 진열대 앞을 지나가던 시민들은 “이렇게 사 먹는 게 낫지” “집에서 해 먹는 것보다 사 먹는 게 낫다”고 말했다. 명절을 보내기 위해 타지에서 하루 일찍 본가를 찾았다는 한 남성은 “명절 때마다 반찬가게를 찾는다”며 “연휴에 가족들과 함께 먹으려고 넉넉하게 구매했다”고 했다. 고민 끝에 모둠전을 구매한 한 고령의 어르신은 “어휴, 이제 허리가 아파서 명절 음식은 못한다”며 “올해는 파는 음식으로 명절을 지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명절을 앞두고 신선식품 물가가 오르면서 사 먹는 것으로 마음을 바꾼 손님도 있었다. 30대 주부 이모씨는 “마트에서 시금치 한 봉지가 5000원이 넘는다”며 “시금치 요리에 들어가는 다른 재료들까지 생각하면, 차라리 반찬가게에서 사 먹는 게 더 저렴하고 편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손님도 ‘사 먹는 게 더 경제적인가’ 하는 질문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27일 오전 경기도 광명의 한 전통시장이 방문객으로 북적였다. 사진=임지혜 기자

“좀 깎아줘요”, “재료 가격 올랐어요”

높아진 물가에 상인과 손님의 흥정 시간은 길어졌다. “아이고, 너무 비싸. 저 아랫집은 더 싼데 가격 좀 깎아줘요”라는 손님에게 반찬가게 사장은 “요즘 재료 가격이 얼마나 올랐는데, 이 정도면 비싼 것도 아니지”라고 받아쳤다. 몇몇 시민들은 가격 깎기를 포기하고 구매한 음식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다른 몇몇 시민들은 “시장에서도 살 것이 없다”며 한숨 쉬고 발길을 돌렸다.

오후 1시를 넘기자 반찬가게 직원들의 손길은 더 바빠졌다. 열흘 전부터 준비하며 기다린 명절 대목인 만큼, 쉴 틈 없이 일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흘렀다. 표정에서도 피로가 보이지 않았다. 반찬가게 사장은 고금리·고물가에도 지갑을 닫지 않고 전통시장을 찾아준 방문객들을 보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 그는 “평소엔 (손님이 많지 않아) 맞은편 가게 한숨 소리가 여기까지 들릴 정도”라며 “이렇게 바쁠 수 있다는 게 좋다”고 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임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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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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