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건강하세요”…나이·성별 호칭, 꼭 써야하나요

“어르신, 건강하세요”…나이·성별 호칭, 꼭 써야하나요

기사승인 2023-10-25 06:00:29
서울지하철 무인발매기의 우대용 교통카드. 사진=유민지 기자

최근 서울지하철에서 도입한 “어르신, 건강하세요” 안내 음성이 20일 만에 “건강하세요”로 수정됐다. 어르신이란 호칭이 불쾌하다는 민원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세대·연령·성별 등을 일반화해 호칭으로 부르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교통공사는 지난 6월 서울지하철에 “어르신, 건강하세요”라는 경로 우대 승객 안내 멘트를 처음 적용했다. 강남역, 광화문역, 서울역 등 10개 역에서 3개월 정도 시범 운영한 뒤 전체 역으로 확대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반발이 커서 ‘어르신’을 빼고 “건강하세요”로 바뀌었다.

우대권 대상자인 65세 이상 연령층은 ‘어르신’ 호칭에 공감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서영수(66·가명)씨는 “환갑도 의미가 없는 요즘 세상에 65세가 어떻게 어르신이냐”고 말했다. 서씨는 “몸도 건강하고, 친구들과 만나도 3040때와 다르지 않다”라며 “어르신이라고 하니 거부감이 드는 건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나이로 구분하고 규정짓는 것이 불쾌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전지영(66)씨는 “세상에 어떤 사람이 나이 많다는 말 듣길 좋아하냐”며 “주관적으로나, 객관적으로나 65세는 어르신 소리 들을 나이가 아니다”라고 전했다.

문제가 된 ‘어르신’의 사전적 정의는 “공경의 의미를 담아 어른을 높여 이르는 말”이다. 노인을 혐오하거나 비하하는 표현은 아니다. 온라인상에서 한 차례 논쟁이 일기도 했다. “어르신이 혐오 표현은 아니지 않냐”, “별게 다 기분 나쁘다. 그럼 돈 내고 타라”는 의견부터 “당사자들이 나이 가늠당하는 게 싫다는데 왜 남이 판단하냐”, “청년들한테 ‘힘내라 MZ’이러면 기분 나쁜 것과 같다” 등 다양한 의견이 맞섰다.

서울 종로3가역에서 한 시민이 요금을 지불하고 있다. 연합뉴스

65세 이상을 모두 노인 집단으로 분류하는 기준을 바꿔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고령인구가 많아지는 사회 변화에 정책이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 결과로 볼 수 있다. 2020년 노인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노인들이 생각하는 노인 기준 연령은 평균 70.5세였다. 해당 보고서 응답자는 65세부터 102세까지로 최고령자와 최저연령자가 1세대 이상(38세) 차이난다. 한국은 오는 2025년 초고령사회, 즉 65세 이상 연령층이 총인구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사회로 진입할 예정이다.

어르신 외에도 세대, 연령, 성별 등을 일반화해서 부르는 호칭이 문제가 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젊은 여성을 아가씨, 나이든 여성을 아줌마, 음식점 종업원을 이모라고 부르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지난 9월 직장갑질119와 아름다운재단이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성차별적 괴롭힘 경험’을 조사한 결과, 여성 노동자 2명 중 1명은(55.9%) 아가씨·아줌마 등 부적절한 호칭을 들어본 적 있다고 답했다.

부적절한 호칭이 문제되는 이유는 상대의 역할과 특징을 없애고 성별, 연령으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이에 전문가는 한국 사회를 보여주는 단편적인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신지영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아저씨를 아저씨, 아줌마를 아줌마라고 부르는 게 뭐가 문제냐고 하는 건 굉장히 단편적인 시각”이라며 “호칭은 상대와 나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의 입으로 고백하는 말”이라고 정의했다. 이어 “가족관계 호칭을 쓰는 건 다양하고 복잡해진 사회적 관계를 지칭할 호칭이 기존 언어에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개인의 역할이 아닌 성별과 연령을 특정해서 지칭하면 불편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결국 호칭이 사라질 가능성도 있다. 곽금주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호칭이 주는 긍정적인 영향보다 부정적인 측면이 강해졌다”며 “세대 성별 등을 강조하는 호칭은 점차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명호 단국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역시 “호칭은 윤리적인 문제기에 답이 있는 건 아니지만, 말하는 사람이 아닌 듣는 사람이 기준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 교수는 “차별은 인간 본성과 가까워서 말하는 사람은 몰라도 듣는 사람은 상처 입을 수 있다”며 “호칭을 부르지 않거나 되도록 중립적인 단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유민지 기자 mj@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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