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게손’이 뭐라고…연이은 사과로 ‘페미 사상검증’ 부추기는 게임업계

‘집게손’이 뭐라고…연이은 사과로 ‘페미 사상검증’ 부추기는 게임업계

넥슨·스마일게이트, 일부 남성 이용자 악성 민원에 신속히 굴복
‘페미니즘 사상검증’ 움직임에 사과로 동조...전문가 우려 목소리 커져
집게손이 아닌 게임 속 여성혐오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어

기사승인 2023-11-27 10:49:31
문제의 ‘집게손’ 장면. 넥슨 게임 홍보 영상 갈무리

한 애니메이션 제작사 게임 홍보 영상에 ‘집게손’이 등장하자 일부 남성 이용자들이 ‘남성혐오’라며 들고일어섰다. 이들의 ‘페미니즘 사상검증’ 움직임에 대형 게임사는 사과로 동조하고 있어 전문가들의 우려가 커진다.

지난 23일 넥슨은 애니메이션 제작사 ‘스튜디오 뿌리’가 만든 ‘메이플스토리’ 엔젤릭버스터 홍보 영상을 공개했다. 엔젤릭버스터는 넥슨 대표 IP 메이플스토리 내 인기 캐릭터 중 하나다.

문제는 이른바 여초 커뮤니티 ‘메갈리아’에서 쓰이는 집게손 모양이 영상 속 찰나의 순간에 등장하면서 시작됐다. ‘펨코’ 등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제작자가 의도적으로 집게손 모양을 넣었다고 항의했다.

지난 2021년 논란이 됐던 GS25와 서울경찰청 포스터. 인터넷 커뮤니티 갈무리

해당 집게손 모양은 남초 커뮤니티 사이에서 한국 남성의 성기 크기를 조롱하는 의미로 통한다. 지난 2021년에는 편의점업체 GS25 홍보물에서 집게손 모양을 발견한 일부 이용자들이 항의하자 GS리테일이 사과한 바 있다. 같은 시기 서울경찰청 역시 도로교통법 개정 안내 포스터를 배포했다 남성혐오 논란에 휩싸였다.

일각에서는 이 애니메이션을 만든 외주업체 직원이 과거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여성 인권 옹호 글을 올렸다는 것을 근거로 “회사와 회사 간 거래가 이뤄진 작업물에 개인의 사상을 숨겨 주입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넥슨의 사과문. 메이플스토리 홈페이지 갈무리

이에 넥슨은 26일 밤 늦게 영상을 신속히 비공개 처리하고 “해당 홍보물은 더 이상 노출되지 않도록 조치하고 최대한 빠르게 논란이 된 부분들을 상세히 조사해 필요한 조치를 진행하겠다”며 사과문을 올렸다.

같은 제작사에 외주를 맡긴 ‘던전앤파이터’도 이원만 총괄 디렉터 명의로 “문제가 된 범위가 넓을 수 있기 때문에 빠짐없이 검토하고 조치사항에 대해선 다시 공지하겠다”고 밝혔다. ‘던전앤파이터 모바일’ 역시 옥성태 디렉터 명의로 “부적절하고 바람직 하지 않은 표현에 대해서 저희 던파모바일은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블루 아카이브’는 김용하 총괄PD 명의 게시글에서 “영상 홍보물 중 일부 부적절한 표현이 포함된 점을 확인했다”면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확인되는 영상들에 대해서는 진위 확인과 빠른 조치를 위한 비공개 처리가 완료됐다”고 전했다. 스마일게이트의 ‘에픽세븐’을 만든 김윤하 PD도 “PV 영상의 일부 부적절한 표현에 대해 조사 중”이라면서 “관련 리소스 조사 및 비공개 조치를 진행 중이며, 진행 상황에 대해서는 다시 안내하겠다”고 말했다.

스튜디오 뿌리의 사과문. 스튜디오 뿌리 소셜미디어

해당 영상 제작사도 결국 사과했다. 스튜디오 뿌리는 26일 오후 소셜미디어를 통해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 믿고 일을 맡겨주신 업체들, 이 사태를 지켜보는 많은 분께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며 해당 직원이 원화 작업을 중단했음을 전했다.

다만 남성혐오적 의미가 담긴 손동작이 영상에 몰래 삽입됐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의도하고 넣은 동작은 절대 아니다”면서 “해당 스태프는 키 프레임을 작업하는 원화 애니메이터로서 모든 작업에 참여하나 동작 하나하나를 컨트롤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저희로 인해 게임사에서 최선을 다해 만든 콘텐츠가 오해받는 것이 정말 마음이 아프다”고 덧붙였다.

넥슨 CI. 넥슨

게임업계와 남초 커뮤니티의 ‘페미니즘 사상검증’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6년 7월 넥슨은 자사 게임 캐릭터 성우가 페미니즘 후원 티셔츠를 입었다는 이유로 퇴출 조치했다. 앞선 7월에는 한 여성 일러스트레이터가 과거 소셜미디어에 작성한 여성 인권 옹호 글을 이유로 계약 해지를 당한 바 있다. 지난 2020년 전국여성노동조합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 이후 게임업계에서 여성 인권 지지 의사를 표명하다 부당 대우를 당한 여성 노동자는 최소 14명이다.

전문가들은 일부 남성 이용자들의 악성 민원에도 불구하고 게임업계가 사과로 동조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김민성 한국게임소비자협회 협회장은 “말도 안되는 악성 민원을 받아들이면서 남성 이용자들을 무서워하고 챙긴다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GS25 사건 때도 그랬지만, 이런 선례가 반복되면 멈출 수 없을 것”고 지적했다. 이어 “사과는 미봉책에 불과하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회사에 손해일 것이다. 블랙 컨슈머를 메인스트림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일갈했다. 그는 “게임사의 서비스에 불안감을 느껴 이탈하는 여성 이용자도 적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집게손이 아닌 게임 속 여성혐오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신경아 한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소수 커뮤니티에서 집게손을 남성혐오 상징으로 쓴다 하더라도 그것을 보편적으로 확대 해석하는 건 왜곡”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게임을 하는 젊은 남성들이 성적 대상화, 폭력성을 띈 여성혐오적인 콘텐츠를 자주 접하는 것이 더 큰 문제며 공론화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부 남성 이용자들이 넥슨의 꼬리를 내리게 함으로써 집단적인 힘과 효능감을 맛보는 것. 게임이 남성들만의 공간인 양 장벽을 높이 치고 과시하는 것. 그리고 이런 현상이 되풀이 되는 것이 남성과 여성 이용자에게 모두 좋지 않다. 게임은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며, 여성이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전하기도 했다.

차종관 기자 alonei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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