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마포구에서 꽃집을 운영하는 김모씨(32)는 요즘 평소보다 한 시간 빠른 오후 8시가 되면 가게 문을 닫는다. 과거 어버이날 등 바쁜 시기엔 오전 12시를 넘겨 퇴근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마스크를 쓰고 눈이 풀린 한 남성이 꽃집에 들어와 뭔가를 잃어버렸다며 횡설수설하는 일이 일어난 이후 마음을 바꿨다. 김씨는 단호하게 나가라고 말하며 파출소로 안내했다. 김씨는 “떨면서 남성을 밖으로 내보냈다”라며 “파출소로 가는지 봤더니 여성 혼자 하는 가게로 가더라”라고 말했다.
최근 혼자 가게를 운영하는 여성을 상대로 한 강력 범죄가 반복해서 일어나고 있다. 일부 지자체에서 여성 1인 가게를 대상으로 비상벨을 지급하고 있지만, 설치율이 낮고 실효성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달 30일 경기 고양시, 지난 5일 경기 양주시에서 다방을 혼자 운영하는 여성 사장이 살해되는 사건이 연달아 일어났다. 6일 경찰에 검거된 피의자 이모씨(57)는 “술을 먹으면 강해 보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지난 2017년 한 남성이 손님으로 찾아가 왁싱샵을 운영하는 여성을 살해한 일이 벌어진 후 비슷한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지난해 10월엔 대전에서 한 남성이 미용실, 네일샵 등에 들어가 흉기로 위협하거나 폭행하며 강도행각을 벌였다. 카페에 온 손님이 CCTV를 보며 음란행위를 하거나, 여성 사장에게 성희롱하는 사건도 있었다.
연이은 강력 범죄 소식에 혼자 가게를 운영하는 여성 사장들은 불안하다고 털어놨다. 서울 마포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김모(43)씨는 “아무래도 혼자 일하다 보니 고양‧양주 사건을 듣고 무서웠다”고 말했다. 그는 “가게 위치를 잡을 때도 안전을 생각해서 외진 곳은 제외하고 유동인구 많은 도로 쪽으로 알아봤다. 일찍 열고 일찍 닫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꽃집을 운영하는 김씨도 “통유리 너머로 가게 안을 뻔히 쳐다보는 사람도 있고, 술에 취한 아저씨가 들어온 적도 있다”라며 “가게에 뒷문도 없어서 위험한 상황이 생겨도 도망치거나 대응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위험한 일이 생겨도 강력하게 대응하기 두렵다. 옷 가게를 운영하는 최모(69)씨는 2년 전 옆집 꽃가게의 국화를 자신의 가게 앞에 내던지는 남성을 쫓아간 적 있다. 꽃을 왜 던지냐고 묻자, 남성은 화분을 던지고 발길질까지 했다. 최씨에겐 타박상과 트라우마가 남았다. 최씨는 “가게에 들어와 옷을 헤집어 놓는 손님에게 조심하라는 말을 하기도 어렵다. 어떻게 행동할지 모르니까”라고 했다. 가게에 들어온 낯선 남성에게 단호하게 대응한 김씨도 자신의 대응이 오히려 남성의 화를 부추겨 더 큰 해를 입을 수 있겠다는 걱정이 들었다.
반복되는 여성 1인 가게 범죄를 막기 위해 일부 지자체에선 비상벨을 설치하는 대책을 내놨다. 서울은 7개 자치구에서 임대료와 규모 등을 고려해 비상벨을 지원하고 있고, 경기는 수원과 안산 등에서 1인 점포, 경기 전역에 1인 가구를 대상으로 비상벨 설치를 지원하고 있다. 인천은 남동구에서 지원하고 있고, 대전은 올해 서구에 지원을 시작할 예정이다.
하지만 비상벨 설치율이 낮아 문제다. 지난 8일 소품샵, 액세사리점, 부동산, 네일샵 등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여성 1인 가게 10곳에 물어보니 10곳 모두 비상벨이 설치돼 있지 않았다. 부동산을 운영하는 A씨(40대)는 “비상벨과 관련해 안내 받은 적은 없다. 길가 앞에 설치된 CCTV만 믿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비상벨 설치만으로 안전이 보장되는 건 아니다. 급박한 상황에 버튼을 누를 경황이 없을 수 있다. 카페를 운영하는 김씨는 “비상벨이 있으면 안심되긴 하겠지만, 정말 위급할 때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위급한 상황에 벨을 눌러 경찰이 왔다고 해도 피의자가 구속되지 않으면 가게에 다시 찾아올 수도 있다. 물리적 위협이 없는 성희롱의 경우, 벨을 누르기 머뭇거려지기도 한다. 김씨는 ”위협이 있을 때마다 비상벨을 누르자니, 경찰이 번거롭게 여길 수도 있을 거 같다“고 설명했다.
CCTV를 설치하고 유지하기엔 비용이 부담스럽다. CCTV 1대에 출동 경비 서비스까지 이용하면 월 6~7만원, CCTV만 하면 월 3~4만원이 든다. CCTV에 거부감을 보이는 손님들에 대한 걱정도 있다. 부동산을 운영하는 나모(30대)씨는 낯선 사람이 자주 오가는 가게 특성상 CCTV 설치를 고민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상담하러 오는 손님들이 CCTV를 보면 부담스러워해서 고민 끝에 설치를 포기했다. 나씨는 “느낌이 좋지 않은 손님이 오면 휴대전화를 한쪽 손에 잡고 있는 게 할 수 있는 전부”라고 말했다.
전문가는 경찰과 지자체의 관심과 대비가 중요하다고 짚었다. 박미랑 한남대 경찰학과 교수는 “경찰이 바로 출동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건 물론, 순찰을 자주 하는 것도 중요하다. 또 지자체에서 범죄 사례를 공유하고 지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게를 운영하는 이들도 무력감을 느끼기보다는 경각심을 가지고 미리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채리 기자 cyu@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