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총선 90일을 앞두고 또 다시 ‘성비위·제 식구 감싸기’ 논란에 휩싸였다. 입원 중이던 이재명 대표가 지난 9일 현근택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성희롱 논란 징계 수위를 친명계 핵심 측근과 의논하는 모습이 포착되면서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친명 일색 공천의 신호탄”이라는 평가와 함께 공천 기준에 대한 강한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발단은 지난 9일이었다. 피습 이후 서울대병원에 입원 중이던 이재명 대표가 친명(친이재명)계 좌장인 4선 정성호 의원과 주고받은 메시지가 언론에 포착됐다. 두 사람은 성희롱 발언을 한 친명계 현 부원장의 징계 수위를 논의했다. 앞서 현 부원장은 지난달 29일 경기도 성남의 한 술집에서 열린 시민단체 송년회에서 A씨의 수행비서 여성 B씨에게 “너희 부부냐” “너네 같이 사냐” “같이 잤냐” 등의 성희롱성 발언을 한 것으로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공개된 문자 메시지에 따르면, 이 대표가 “현근택은 어느 정도로 할까요”라고 묻자, 정 의원은 “당직 자격 정지는 돼야 하지 않을까, 공관위 컷오프 대상”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이 대표는 “(컷오프는) 너무 심한 거 아니냐”라고 되물었고, 정 의원은 “그러면 엄중 경고. 큰 의미는 없다”고 했다.
당 차원의 윤리 감찰·최고위원회의 징계 논의 등 절차를 건너뛰고 이른바 ‘비공식 라인’의 당무 논의가 이루어진 셈이다. 의견 수렴 과정이라는 게 당 지도부의 설명이지만, 정 의원은 당원 징계를 논의할 어떤 당직도 맡고 있지 않다. 당대표와 최측근 의원이 문자로 구체적 징계 수위까지 정하는 것은 사실상 정당의 공적 시스템을 무력화하는 행위로 비칠 수 있다. 논란을 의식한 듯 지난 10일 퇴원한 이 대표는 현 부원장의 성희롱 의혹과 관련해 당 윤리감찰단에 조사를 지시했다.
민주당 당헌·당규상 성범죄는 공천을 원천 배제하도록 돼 있다. 그간 ‘공천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해왔던 민주당 총선기획단 역시 공직후보자 검증 신청 서약서 검증 기준으로 △성폭력 범죄와 성비위 등을 제시했다. 앞서 민주당 최고위는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막말과 설화, 부적절한 언행을 엄격히 검증하고, 공천 심사에도 반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재명호(號) 민주당’의 민낯은 달랐다. 성비위 사건임에도 친명계가 연관되자 곧바로 ‘공천 탈락’에서 ‘엄중 경고’로 조치를 뒤바꿨다. 현 부원장은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변호를 맡았던 이 대표 최측근이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민주당 예비후보로 등록한 후 총선을 준비 중이다. 민주당 당규상 징계 처분은 제명, 당원 자격 정지, 당직 자격 정지, 경고 등으로 나뉜다. 당원 정지 처분이 내려지면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 후보 출마가 불가능한 점이 고려된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친명 일색 공천의 신호탄”,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 국정농단과 뭐가 다르냐” 등의 비판이 잇따랐다. 신주호 국민의힘 상근부대변인은 지난 10일 논평을 내고 이 대표와 정 의원의 텔레그램 대화를 언급하며 “이렇게 되면 피습 이후 이 대표의 첫 메시지는 ‘현근택은요?’인 것”이라며 “이 대표가 병상에서까지 측근을 챙기고, 친명 핵심을 향한 공천 컷오프는 안 된다는 사실상의 가이드라인을 내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 부대변인은 “이 대표의 의지는 분명해 보였다. 당원 자격 정지나 공천 컷오프가 ‘너무 심하다’는 것”이라며 “성 비위를 저질러도 내 편은 품고 어떻게든 국회의원으로 만들려는 안이한 인식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민주당이 자랑하는 ‘시스템 공천’은 허울뿐인 제도가 될 것이고, 사실상 이 대표에 의한 친명 일색 공천의 신호탄”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공천 기준을 향한 불신도 증폭하고 있다. 이 대표 체제를 비판하며 탈당한 야권 비주류 의원들은 작심 비판에 나섰다. 이원욱 무소속 의원은 SBS 김태현의 정치쇼에 나와 “친명(이재명)이면 다 용서해야 하거나, 징계하더라도 최소화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계신 것이다.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 국정농단과 뭐가 다르냐”며 “당의 시스템을 완전히 망가뜨리고 징계에 대한 절차와 가이드라인까지도 이재명 대표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질타했다.
민주당 소속 인사들의 권력형 성범죄 사건은 처음이 아니다. 안희정·박원순·오거돈 사건이 대표적이다. 특히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건의 경우 민주당 여성 현역 의원(남인순·진선미·고민정)이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으로 지칭하며 2차 가해 논란에 휩싸였다. 잇달았던 권력형 성범죄에 대한 미온적 태도는 민주당 역사의 오명으로 남아 있다.
당장 당내에서는 총선을 앞둔 시기인 만큼 이번 사태에 엄중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야당 의원은 “총선 국면에 본격적으로 접어든 만큼, 성비위 사건은 큰 악재”라며 “잡음이 일지 않게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전국여성위원회 역시 10일 성명서를 내고 “현근택 예비후보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명백한 성희롱이며 사안 역시 가볍지 않다”며 “어제 긴급 최고위를 개최해 윤리감찰단에 현 예비후보에 대한 감찰을 지시한 만큼 철저한 조사를 바탕으로 엄격한 심사를 하고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목소리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