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인재전형 60% 확충’에 잇단 우려…“밑 빠진 독 물 붓기”

‘지역인재전형 60% 확충’에 잇단 우려…“밑 빠진 독 물 붓기”

기사승인 2024-02-14 11:00:01
서울 시내 한 의과대학. 사진=임형택 기자


정부가 2025학년도 입시부터 비수도권 의과대학 지역인재 선발 비율을 60%까지 늘리기로 한 것을 두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의사가 된 뒤 지역에 남아 필수의료를 하도록 유인하는 지원책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선발 비율 60%를 충족한 지방 의대가 26개 대학 중 7곳에 불과한 점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14일 교육계와 의료계에 따르면 정부는 2025학년도에 의대 정원을 2000명 증원해 5058명으로 확대하고, 비수도권 의대는 지역인재 전형으로 60% 이상을 충원할 계획이다. 오는 2035년까지 1만5000명의 의사가 부족할 것이라는 계산에서다. 

지역인재 전형은 지방 학생의 수도권 이탈을 완화하고자 비수도권 지역에서 교육과정을 이수한 학생이 해당 지역 내 의대에 지원할 수 있게 한 제도다. ‘지방대학 및 지역균형인재 육성에 관한 법률’(지방대육성법) 시행령은 지방 6개 권역에 있는 의대에 신입생의 40%(강원·제주권 각 20%) 이상을 지역인재로 선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의대 모집 정원 확대로 지역인재 선발 인원은 현재보다 2배 정도 늘어날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온다. 종로학원 분석에 따르면, 올해 치러질 2025학년도 대입부터 의대 지역인재 전형 선발 인원이 1068명에서 2018명으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현재 비수도권 소재 의대 27곳의 모집정원(2023명)이 40개 의대 전체 모집정원(3018명, 의학전문대학원 40명 제외)의 67%를 차지하는 점, 비수도권 의대 정원 가운데 지역인재 전형 선발 인원(1068명)이 52.8%라는 점에 기반해 추산한 결과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지역 의대마다 지역인재 전형 비중을 60% 이상으로 높일 수 있어 확대 폭은 더 커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현재까지 정부가 지역인재 전형으로 전체 60% 이상을 선발하기로 계획했던 의대가 26개교 중 7개교(27%)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지난해 대학들이 공고한 2025학년도 대학입학 전형 기본계획에 따르면, 지방 의대 26곳 중 지역인재 전형 비율이 60% 이상인 곳은 7곳뿐이다. 나머지 19개 대학은 많게는 3배 가까이 지역인재 전형 비율을 늘려야 한다. 현재 지방 의대 26곳 중 법령상 최소 기준(40%)을 충족하고 있는 울산대가 지역인재를 60%까지 늘리려면 현재보다 최소 8명을 지역인재로 더 뽑아야 한다. 

아직 늘어난 정원이 배정되지 않았지만 정부 예고대로 60% 이상을 지역인재 전형으로 채우려면 오는 5월까지 대입 전형계획을 수정 공고해야 하기 때문에 지방 의대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수시와 정시의 지역인재 선발 비율이 60%를 넘어가는 지방 대학은 △동아대(89.8%) △부산대(80%) △전남대(80%) △경상국립대(75.0%) △전북대(62.7%) △조선대(60.0%) △대구가톨릭대(60.0%) 뿐이다.

지역인재 선발 60%라는 정부의 목표는 확고하다. 교육부는 지난 8일 보도설명자료를 통해 “지역인재 60%를 달성하기 위해 비수도권 대학과 긴밀하게 협의하며 ‘정책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등 확고한 의지를 갖고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책 인센티브 방식으로는 지방자치단체가 참여하는 ‘교육발전 특구’와 ‘지역혁신 중심 대학지원체계’(라이즈·RISE) 등이 거론된다. 라이즈는 교육부의 대학 재정 지원 사업비를 광역시도에 주고, 광역시도가 지역 발전계획에 부합하는 대학에 집행하도록 하는 게 목적이다.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 사진=임형택 기자


인재 선발보다 육성, 육성보단 유지 중요

지역인재 전형 비율을 일정 수준 높이는 데에는 지방의료계, 의학교육계, 의학계 모두 이견이 없다. 다만 인재 선발보다 육성, 육성보다는 유지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기껏 양성한 의료 인력이 수도권으로 빠져나가지 않게 하고, 필수의료과를 전담하도록 세심한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는 제언이다.

조승연 인천광역시의료원 원장은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지역인재 선발 비중 확대는 지역의료에 일정 부분 보탬이 되겠지만, 근본적인 지역·필수의료 문제 해결과는 멀어지는 느낌이 든다”며 “한 지역에 정착해 의무적으로 근무하는 기간을 정하지 않는 이상 지역인재 전형 확대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공의료의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조 원장은 “의대를 나온 지역에서 근무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제는 우리나라에서 통하지 않는다”며 “강력한 자격 조건을 거는 대신 1등급이 아니더라도 일정 성적 수준이 뒷받침돼고, 인성과 사명감을 두루 갖춘 인재들이 한 지역에 오래 남아 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종태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 정책연구소장(인제의대 전 학장)도 “지방 출신 학생이 지역인재 전형으로 의대에 입학했다고 해서 자신이 살던 지역으로 다시 돌아가는 법은 없다”며 “지역마다 생활·교육 환경 수준의 격차가 상당하고, 저출산으로 인해 인구 소멸이 가속화되는 시점에서 지방으로 갈 의사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라고 지적했다.

학생들이 의사가 된 뒤 지역 의료기관에서 근무할 방안, 필수과에 종사하도록 하는 대안부터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도 이어진다. 대한의학회 관계자는 “지역인재 전형을 늘리는 것은 찬성이지만, 학생들이 한 지역에 계속 남아 필수의료를 전담하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며 “관련 조치 없이 단순 확대만 이뤄지면 의대 진학을 위해 지방에 갔다가 의사가 된 후 서울로 돌아오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고 짚었다.

한편 지난 1일 공개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 따르면, 복지부는 지역의료 강화를 위해 졸업 후 지역 필수의료기관 근무를 계약한 의대생에게 장학금과 수련비용, 교수 채용 할당, 교육·주거를 지원하는 ‘지역 필수의사제’ 도입을 추진한다. 더불어 지역 간 의료 격차를 해소하고자 ‘맞춤형 지역수가제’를 도입하고, 필수의료 인력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지역의료 발전 기금’ 신설도 검토한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지난 12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정부는 지역·필수의료 위기를 극복하고, 의료체계를 살리겠다는 약속을 반드시 이행할 것”이라며 “현장에서 가시적인 변화를 빠르게 이뤄내기 위해 의료사고 안전망 등 정책 추진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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