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이초 교사 순직 인정, 50만 교원의 명예 회복입니다”

“서이초 교사 순직 인정, 50만 교원의 명예 회복입니다”

기사승인 2024-02-21 06:00:28
지난해 9월4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 교사의 49재 추모제와 함께 교권회복을 위한 대규모 집회 모습. 사진=곽경근 대기자

“나는 당신입니다. 당신은 나입니다. 홀로 모든 것을 참고 견디다가 돌아가신 우리 선생님들의 죽음이 부디 순직을 인정받을 수 있길 바랍니다.” (지난 17일 ‘전국교사일동’ 12차 집회 사회자 발언)

지난해 여름 고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 이후 시작된 교육계와 교사들의 갈등이 해를 넘겨서도 이어지고 있다. 교사들은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힘쓰지 않으면 교육 현장이 붕괴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지난 17일, 20일 현장 교사들과 교원단체는 검은 옷을 입고 다시 거리에 나왔다. 지난해 7월22일부터 10월18일까지 이어진 고 서이초 교사 사망사건 관련 진상규명 촉구 집회 이후 4개월 만이었다. 이들은 21일 열리는 고 서이초 교사 순직 인정 최종 심사에서 순직을 인정해달라고 촉구했다.

“순직 인정은 공교육 정상화의 시작”

교사들에게 고 서이초 교사 사건은 남다른 의미를 가진다. 교육 현장에서 발생하던 악성 민원, 업무 과다,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 등을 수면 위로 올렸기 때문이다. 사망한 교사 개인이 아닌 교사 모두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천경호 실천교육교사모임 회장은 “그간 교육부는 일부 학생과 학부모의 심각한 교권 침해를 등한시해왔다”라며 “교원의 안전한 교육환경 구축에도 소홀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치적 필요에 의해 선택된 교육 정책들을 밀어붙인 결과, 교사들은 학생보다 시급한 업무에 주의를 기울이게 됐다”라며 “학생과 멀어지는 교사는 교권 침해에 시달리는 악순환을 겪는 중”이라고 꼬집었다.

교사들은 무너진 교실과 공교육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고 서이초 교사의 순직이 인정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장 교사 약 1만명(주최 측 추산)이 모인 지난 17일 집회에서도 교사들은 ‘서이초 순직 인정’과 ‘공교육 정상화’ 플래카드를 동시에 들었다. 경기 평택시 2년차 교사 A씨는 “고 서이초 교사 순직 인정은 공교육 정상화의 시작”이라며 “서이초 선생님을 포함해서 많은 교사 힘들어하고 있지만, 어려운 상황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희영 전교조 위원장도 “서이초 교사의 순직 인정은 개인의 명예 회복을 넘어 50만 교원의 명예를 회복하는 일이며 공교육 회복으로 가는 기점”이라고 말했다.

고 서이초 교사 사건 이후 몇 가지 대책이 나왔다. 교육부는 지난해 8월 학생생활지도 고시안, 교권 회복·보호 강화 종합방안을 각각 발표했다. 앞으로는 교사는 자신의 근무 시간과 직무 범위를 벗어나면 학부모 상담을 거부할 수 있다. 또 물리적으로 문제 학생을 제지하거나 분리시킬 수도 있다. 오는 새 학기부터 학폭 전담 조사관도 투입된다. 서울시교육청은 교권 보호팀을 신설하기도 했다.

그러나 교권을 보호받지 못 한 채 홀로 싸우는 교사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지난해 12월 경남 김해시 한 남성 초등학교 교사 얼굴이 여성 사진에 합성된 뒤 SNS에 공유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17일 집회에서 피해 교사 이모씨는 “학생 SNS에서 불법 촬영된 얼굴이 비키니 입은 여성의 몸에 합성된 채 게시된 사실을 알게 됐다”라며 “교권 침해로 교권보호위원 개최가 확정됐으나 가해 학생 학부모는 압박을 가해왔다”라고 밝혔다. 이어 “학생에게 기회를 주고자 신고를 철회했으나 돌아온 건 40가지 혐의의 정서적 아동학대 신고였다”라고 주장했다.

서이초 교사의 순직 심사를 하루 앞둔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교원 단체들이 순직 인정을 촉구하기 위해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조유정 기자

“이제 교사 꿈꾸면 말려야 하는 상황”

서이초 사건 이후 교사들의 정신건강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지난해 9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과 녹색병원이 교사 6024명을 대상으로 교사 직무 관련 마음(정신) 건강 실태조사한 결과, 38.3%가 심한 우울 증상을 보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어 경도 우울 증상을 보인 경우도 24.9%로 과반수 이상이 우울감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사들은 자부심을 잃어가고 교사를 꿈꾸는 후배들을 말려야 하는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초등교사 A씨는 “교사라는 것에 굉장히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 후배들에게도 교사를 꿈꾸지 말라고 말려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교권 보호가 제도적으로 안 되고 있다”라며 “능력 있을 때 빨리 떠나라는 말을 선생님끼리 우스갯소리로 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한승호 좋은교사운동 공동 대표도 “고3이 되는 제자가 초등교사가 되기 위해 교대에 지원한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감당할 수 없는 괴롭힘과 힘든 일을 겪을까 봐 두려운 감정이 먼저 들었다”라고 밝혔다. 

교단에 회의감을 느껴 교실을 떠나는 교사도 늘고 있다. 20일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이달 말 명예퇴직 예정인 서울 유·초등 교원은 489명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440명) 대비 49명 늘었으며 지난 2020년(499명) 이후 가장 많은 수준이다. 정년을 채우기도 전에 조기 퇴직하는 교원들이 최근 들어 급증한 것이다. 서울 유·초등 교원 명예퇴직자의 최근 5년간 추이를 보면 △2019년 591명 △2020년 585명 △2021년 422명 △2022년 518명 △2023년 604명 △2024년(이달 말 기준) 489명 등으로 나타났다.

교사노조는 교직을 떠나는 교원들은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장원 교사노동조합연맹 사무총장은 “지난해 교권4법 등이 도입됐지만, 학교 현장에서는 체감할 수 있는 변화는 없다”라며 “교사들이 악성 민원과 아동학대 신고 등으로 교직 생활을 어려워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이어 “젊은 교사들의 이직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라면서도 “이 같은 현상은 앞으로도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진단했다.

조유정 기자 youjung@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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