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ELS 가입자만 15만명...“손놓고 있다 일괄배상? 어렵다” [인터뷰]

홍콩 ELS 가입자만 15만명...“손놓고 있다 일괄배상? 어렵다” [인터뷰]

노윤상 법무법인 정윤 변호사 인터뷰
내부통제 문제 발견되지 않으면…최소 20%도 어려워
사법 리스크…은행도 자율배상 소극적 일수밖에
“불완전판매 입증, 투자자 책임”

기사승인 2024-02-27 06:00:24
노윤상 법무법인 정윤 변호사. 사진=정진용 기자

“금융감독원에 민원신청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은행에서 배상 해주지 않겠냐는 문의 전화를 최근 많이 받습니다. 굉장히 안일한 생각이라는 게 제 의견입니다. 은행은 배상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고, 피해자가 15만명에 달하는 점을 생각하면 금감원 역할도 제한적입니다. 피해자가 적극 불완전판매 입증에 나서야 합니다” 

홍콩 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ELS(주가연계증권) 손실 규모가 1조원을 넘어섰다. 금융당국은 빠르면 이번 주나 내달 초 손실 배상 기준을 내놓을 방침이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은행이 판매한 H지수 기초 ELS 상품 중 지난 22일까지 만기가 도래한 규모는 1조6975억원으로 집계됐다. 평균 손실률은 53.6%로 나타났다. 올해 상반기로 보면 H지수 관련 ELS 만기 상환 금액은 10조원이 넘는 만큼 손실액은 지속해서 늘어날 전망이다.

피해자들은 100% 일괄배상을 요구하지만 금융권에서는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상품 구조에 문제가 없을 뿐더러 불완전판매 입증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2019년 독일 국채금리 연계형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때에도, 불완전판매가 입증된 건에 한해 분쟁조정이 이뤄졌다. 금감원은 투자자 피해 유형을 6가지로 나눠 배상비율은 손해액의 20~80%로 제시했다. 고령(79세)에 치매증상과 난청이 있는 투자자가 배상비율 80%을 받았다. 라임 펀드의 경우, 상품 자체에 하자가 있었기에 착오에 의한 계약 취소로 100% 배상이 이뤄졌다.

일괄배상 어려워 보여…‘최소 20%’ 기준 무너질 수도

금감원 출신의 노윤상 법무법인 정윤 파트너 변호사는 쿠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홍콩 H지수 ELS는 H지수가 폭락했을 뿐이지 상품 자체 문제는 전혀 없다”며 “민원 사례를 살펴봐도 케이스가 워낙 제각각이라서 은행의 조직적 위법 행위라던지, 내부통제 문제로는 보이지 않는다. 결국 배상이 선별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봤다. 이번 금감원 ELS 현장 검사에서도 은행 전반에 적용할 수 있을 정도의 공통적이면서 심각한 불완전판매 혐의는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노 변호사는 내부통제 문제가 입증되지 않으면 DLF때처럼 최소 20% 기준도 무너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금융당국이 배상 기준안에서 증권사를 통해 상품에 가입한 투자자를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에 대해서는 “형평성에 어긋나는 것으로 보여진다”고 했다. 금감원은 증권사를 통해 가입한 투자자의 경우, 원금 손실 가능성을 충분히 인지했을 가능성이 높고 투자자 성향이 은행과 달라 배상 대상에서 제외하는 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 변호사는 “증권사에서 ELS를 가입한 고객 중 PB(프라이빗 뱅커)가 고객이 점포를 내점(직접 방문)해 청약했다고 서류에 허위 기재하거나, 적합성 원칙과 설명의무 순서가 뒤바뀌는 등 불완전판매 의심 사례가 있었다”며 “은행에서 수십번 ELS 가입한 사람은 위험성을 몰랐고 증권사에서 한두 번 가입한 사람은 알았다는 건 말이 안된다”고 덧붙였다.

DLF 배상기준안. 금감원

금감원 역할 제한적…형사처벌 리스크에 몸사리는 은행

홍콩H지수 ELS 피해자라면 현 시점에서 어떻게 대응하는 게 좋을까. 금융사의 불완전판매 입증 책임은 결국 투자자에 있다. 금감원 민원 단계뿐만 아니라 법원 소송으로 가면 더 입증이 까다롭다.

피해자 수가 많고 사례도 제각각이라 금감원이 역할은 제한적이다. 원래대로라면 민원 제기가 들어오면, 금감원이 증거수집 등 사실관계 조사를 통해 투자자 입증 책임이 덜어지는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홍콩 H지수 ELS는 가입자 규모만 약 15만명, 판매 잔액 19조6000억원에 이른다. 투자자들이 금융감독원에 제기한 분쟁조정 및 민원도 이달 초에 벌써 3000건을 넘겼다.

피해자가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금전적 손실을 최소화하고 형사 처벌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 은행이 배상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본시장법 제 55조는 예외적 사유가 아니라면 판매사가 투자자가 입은 손실을 사후에 보전해주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위반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또 금융투자업 규정 4-20조는 ‘투자매매업자, 투자중개업자 및 그 임직원이 자신의 위법 행위 여부가 불명확할 경우 사적 화해 수단으로 손실을 보상하는 행위는  불건전 영업행위에 포함되지 않는다’면서도 ‘다만 증권투자의 자기책임원칙에 반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단서를 달고 있다.

노 변호사는 “한마디로 자기투자책임원칙에 반하는 건에 대해서는 배상을 해줘서는 안 된다는 뜻”이라며 “결국 금융사 입장에서는 불완전 판매도 명확치 않고, 민원 제기도 안한 가입자에게 자율 배상에 나섰다가는 배임뿐 아니라 자본시장법 위반에 해당할 소지가 생긴다”고 말했다.

아울러 노 변호사는 “금감원 배상기준안이 나온 뒤에도, 은행에서 자체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라 배상비율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며 “은행도 금융소비자보호부 인력이 5~10명 수준으로 한정돼 있다. 지금 민원 들어온 건 조사도 버거운데 은행에서 알아서 민원이 들어오지 않은 건까지 일일이 조사해 배상을 해줄 거라는 기대는 안일한 생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증거 수집을 해서 논리적으로 불완전판매를 입증하는 민원을 빨리 접수할 수록 배상에 유리하게 보인다”고 덧붙였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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