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보려면 지역 비하부터? 혐오에 노출된 청년들 [쿠키청년기자단]

야구 보려면 지역 비하부터? 혐오에 노출된 청년들 [쿠키청년기자단]

기사승인 2024-03-17 15:00:02
2022년 7월16일 서울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KBO 올스타전. 사진=정세하 쿠키청년기자

한국 프로야구 응원문화에 뿌리 깊은 지역 혐오와 과도한 비방이 청년들에게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잘 몰랐던 지역 혐오를 야구에 입문하면서 배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 프로야구는 20대 관람객의 신규 유입 비율이 특히 높은 편이다. 한국프로스포츠협회가 발표한 2022년 프로야구 관람객 성향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신규 관람객이 27,7%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10개 구단 중 9개 구단에서 20대의 신규 유입 비율이 가장 높았다. 특히 삼성 라이온즈는 신규 여성 팬의 비율이 65.7%에 달했다.

한국 야구의 지역 비하 문화, ‘청년 뉴비’만 모른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KIA 타이거즈를 응원한 김가연(25)씨는 야구 생중계를 보기 전 꼭 실시간 댓글 창을 끈다. 불쾌한 지역 혐오 표현에 노출되지 않기 위해서다. 댓글 창을 끄는 순간에도 네다홍(‘네 다음 홍어’의 줄임말), 알보칠(‘알고 보니 7시’의 줄임말, 지도상 호남 지역의 위치로 비하하는 은어), 전라디언 등 호남 혐오 표현이 끊임없이 올라온다. 이 같은 지역 비하 표현은 특정 선수나 구단, 경기 상황과는 무관하게 언제든 등장한다.

김씨는 “현실에선 지역감정, 호남 혐오와 관련된 말을 들을 일이 없다”며 “야구만 틀면 홍어, 7시(호남 혐오 표현)와 같은 혐오 표현을 쉽게 볼 수 있어 괴리감이 크다”고 말했다. 다른 구단들 상황도 비슷하다. 부산이 연고지인 롯데 자이언츠, 대구가 연고지인 삼성 라이온즈도 ‘쌍도’ 같은 지역 비하 표현을 찾아볼 수 있다. 김씨는 “실시간 중계 댓글 창을 1분만 봐도 모든 팀을 향한 멸칭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라며 “한국 프로야구는 지역 혐오에 노출돼 있다”고 지적했다.

지역 혐오가 굳어진 한국 프로야구의 응원문화는 요즘 청년들에게 더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이전 세대에 비해 지역 혐오에 덜 노출된 청년들이 야구를 통해 새롭게 학습하게 되기 때문이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진행한 ‘2019년 혐오차별 국민인식 조사’에서 특정 지역 출신 대상에 대한 혐오 표현 사용 빈도를 확인한 결과, ‘전혀 사용 안 함’이라고 답한 20~30대 청년층은 39.6%로 타 연령층보다 높게 나타났다. 40~50대 장년층은 13.2%, 60~70대 노년층은 4.8%에 불과했다.

2023 LG 트윈스 우승 엠블럼. LG 트윈스 홈페이지

응원팀이 아니면 과도하게 견제하는 야구의 네거티브 응원문화도 문제다. 강희주(24·가명)씨는 지난해 자신이 응원하는 LG 트윈스의 우승에도 마음 편히 웃지 못했다. 29년 만에 우승했어도 “9개 구단이 LG 트윈스 우승을 바라지 않는다”, “LG 트윈스는 왕따 구단” 등 축하보다 비방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강씨는 우승팀을 향한 가벼운 질투보다 모두가 특정 구단을 욕하는 하나의 문화라고 느꼈다. 강씨는 “단순한 견제가 아닌, 모든 구단의 팬이 내가 응원하는 팀을 응원하기 싫다는 취지의 말이라 더 힘들었다”고 말했다. 지금도 X(구 트위터)나 온라인 커뮤니티에 ‘왕따 구단’을 검색하면 이유 없이 LG 트윈스를 비방하는 글들을 다수 확인할 수 있다.

과도한 특정팀 네거티브 문화를 극복하는 자정 작용은 일어나지 않는다. 온라인에 만연한 비방 문화를 개선하자는 취지의 댓글을 달면, ‘예민충이다’, ‘뉴비(입문자)라서 뭘 잘 몰라 그런다’ ‘알못(잘 모르는 사람)은 빠져라’와 같은 반응이 따라붙는다. 강씨는 “가끔은 야구를 보는 것이 스트레스 해소가 아닌, 피로가 될 때도 있다”라며 “견제가 아닌, 서로 응원하는 문화가 자리 잡으면 야구를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 혐오 논란에 오른 스포티비 영상에 대한 X(구 트위터) 게시물들

자정 작용 없는 한국 야구 문화, 혐오 키운다

지역 혐오는 팬들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한국 프로야구는 지역을 기반으로 하지만, 지역 혐오에 안일하게 대처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0년 안경현 SBS 스포츠 해설위원은 “광주에 가기 위해 여권이 필요하다”는 발언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해당 발언은 호남 지역을 해외처럼 취급하는 뜻으로,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쓰이는 말이다.

논란이 일자 안 해설위원은 곧바로 사과문을 게시했다. 이후 같은 논란이 반복됐지만, SBS 스포츠와 KBO의 징계는 없었다. 해당 사건 이후 SBS 스포츠 홈페이지 시청자 게시판에는 “역시 하차하지 않을 줄 알았다”,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중계진이 나서서 지역을 비하하냐” 등 실망했다는 목소리가 빗발쳤다.

오해를 부를 수 있는 표현으로 논란이 된 적도 있다. 2020년 5월 스포티비는 KIA 타이거즈와 삼성 라이온즈 경기의 하이라이트 영상 제목을 “KIA, ‘쓱’ 했더니 ‘싹’하고 끝난 5병살”로 올렸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제목으로, 당시 실시간 SNS에 스포티비의 사과를 바라는 해시태그 글이 올라왔다. 하지만 당시 스포티비는 사과 없이 조용히 제목만 수정했다.

LA 다저스는 재키 로빈슨 데이에 모두 42번을 달고 경기에 임한다. MLB 공식 사이트

혐오 발언 근절에 앞장서는 MLB

미국 프로야구(MLB)는 팬과 구단 모두 혐오 발언 근절에 노력을 기울인다. LA 다저스는 최초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흑인 선수 재키 로빈슨을 기념하기 위해 1년에 한 번 그의 생일에 ‘재키 로빈슨 데이’를 연다. 재키 로빈슨 데이에는 모두가 그의 영구결번(해당 번호를 사용한 선수를 기리기 위해 특별히 빼놓는 번호)인 42번을 달고 경기를 진행한다.

또 2017년 MLB는 인종, 성 혐오 발언을 근절하기 위한 팬 운동 수칙을 적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혐오 발언 근절은 MLB가 계속해서 강조한 것이다. 실제로 MLB는 인종차별 발언으로 논란이 된 뉴욕 양키스의 조시 도널드슨에게 징계 결정을 내렸다. 성숙한 스포츠 문화를 만들기 위해 리그 내부의 노력이 이어지는 분위기다.

김석호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출범 당시 지역 기반 스포츠였던 야구는 세대 간 전승되며 여전히 지역감정이 남아있다”며 “수십 년에 걸쳐서 완성되는 문화는 한 번 만들어지면 쉽게 바뀌기 힘들다. 지역 기반 응원 문화가 이어지며 응원 문화에서 혐오 발언들이 용인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제 혐오 발언들을 엄격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라며 “내 팀을 응원하는 것과 상대 팀을 혐오하는 것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 차이를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세하 쿠키청년기자 s2_1110@naver.com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이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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