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 비하 논란에 휩싸인 양문석 경기 안산갑 후보의 거취를 둘러싸고 이재명 대표와 친노·친문 진영이 정면충돌하며 내분 조짐이 일고 있다. 불공정 공천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양 후보에 대한 자진사퇴·공천 철회 요구가 들끓고 있지만, 이 대표는 반발에 아랑곳하지 않고 ‘양문석 지키기’에 나섰다.
강성 친명계로 꼽히는 양 후보는 앞서 언론연대 사무총장 시절인 지난 2008년 ‘이명박과 노무현은 유사불량품’이란 제목의 칼럼에서 “국민 60~70%가 반대한 한미FTA를 밀어붙인 노무현은 불량품”이라고 비하해 물의를 빚었다. 또 ‘미친 미국소 수입의 원죄는 노무현’이란 다른 칼럼에선 “낙향한 대통령으로서 우아함을 즐기는 노무현씨에 대해 참으로 역겨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라고 했고, 최근엔 자신이 출마하는 지역구에 대한 비하 발언까지 한 사실이 알려졌다.
당 안팎에선 노무현 정신이 민주당의 뿌리인 만큼, 양 후보가 부적격하다는 비판이 거세다. ‘친노 적자’인 이광재 전 국회 사무총장과 친문 윤건영 의원은 결단을 촉구하는 입장을 냈다. 노무현재단 이사장인 정세균 전 총리도 입장문을 통해 “양문석 후보의 노무현에 대한 모욕과 조롱을 묵과할 수 없다. 당의 결단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친문 핵심이자 양 후보의 경선 상대였던 안산갑 현역 전해철 의원 역시 자신의 페이스북에 “양 후보의 막말은 실수가 아니다. 용납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것”이라고 직격했다.
양 후보 공천 과정의 공정성 문제도 제기됐다. 민주당 공천관리위원회 산하 ‘도덕성 검증소위’의 심사 과정에서 양 후보가 도덕성 점수에서 0점을 받았지만, 공관위가 이를 무시하고 양 후보의 경선 참여를 밀어붙였다는 의혹이다. 홍익표 원내대표는 전날 SBS 라디오에 “공관위원 상당수가 (양 후보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는데 공관위 차원에서 정리가 제대로 안 된 것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라며 “이 문제도 빨리 논란을 종식하고 여러 가지 선당후사의 모습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결론을 빨리 내고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사실상 양 후보의 결단을 촉구했다.
잠시 숨죽이고 있던 내분 불씨가 살아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선대위 출범부터 시작된 ‘3톱’(이재명·이해찬·김부겸) 사이에서 ‘엇박자’가 포착되면서다. 김부겸 위원장은 “양문석·김우영 등 막말과 관련해 논란이 있는 후보들이 있다”며 “경선 이전의 절차에서 충분히 검토되지 않은 부분을 다시 검증해서 확인할 필요가 있다”며 양 후보 공천 배제 필요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이 대표는 친노·친문계 반발에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그는 전날(18일) 서울 마포갑 지원 유세에서 기자들과 만나 양 후보자의 당내 공천 철회 요구에 대해 “양 후보자 발언은 지나쳤다. 사과해야 한다”면서도 “과거 사과했고 또 사과하고 있다. 그 이상 책임을 물을 것인지는 국민들께서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 후보의 발언이 ‘정치인에 대한 정치인의 비판’이기 때문에 문제 삼을 수 없다는 취지로, 공천 번복 의사가 없음을 재확인한 것이다.
정가에선 이 대표와 양 후보의 버티기를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이중 ‘포스트 이재명 체제’에 집중한 계파 간 힘겨루기가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서울 중·성동갑 공천 배제 전후 불거진 이른바 ‘문·명(문재인·이재명) 갈등’이 2라운드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관측이다.
민주당이라는 한 이불을 덮고 있지만, 친명계와 친문계는 완전히 다른 색채를 가진 세력이다. 친문 세력은 2012년과 2016년, 2020년 총선 등 세 차례나 공천권을 거머쥔 ‘민주당 대주주’다. 그만큼 지역구 입지와 정치적 기반이 탄탄하다.
반면 비주류로 정치를 시작한 이재명 대표 중심의 친명 세력은 대다수 원외 인사들로 꾸려져 있다. 이번 총선에서 주류로 올라서지 못할 경우, 당 주도권을 내줄 수 있다는 부담이 친명계 측엔 상당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 대표는 정치적 변곡점마다 친노·친문 진영과 대립해왔다. 총선에서 참패하는 최악의 경우, 이 대표는 친문계의 조직적 반격에 더해 정계은퇴 수준까지 내몰릴 수 있다. ‘친명 독주’ 구도를 완성하려는 이 대표 입장에선, 그만큼 친문계를 물리쳐야 하는 상황이다.
오는 8월이면 이 대표의 임기도 끝난다. 민주당은 총선을 마치고 4개월 뒤 새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를 열어야 한다. 당권 전쟁은 공천 전쟁을 뛰어넘는 ‘주류 교체 전쟁’이다. 친명계와 친문계 간 해묵은 앙금이 풀리지 않은 상황에서 8월 전당대회는 분열의 용광로가 될 수 있다. 과거 국민의힘 친이계(친이명박계)와 친박계(친박근혜계) 간 갈등이 보수 공멸로 이어진 사례가 대표적이다. 민주당 내에서도 계파 갈등이 최고조에 치달을 경우, 분당의 가능성도 점쳐진다. 주도권을 잡는 측과 뺏기는 측 모두 상대를 인정하지 않을 경우, 웃는 쪽은 국민의힘이다.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