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의 사법리스크를 줄이고 필수의료 기피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전문성과 대표성을 가진 이들로 구성된 ‘의료사고심의위원회’가 신설된다. 수도권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쏠림을 완화하기 위해 2차 병원의 역할 재정립도 추진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3일 제7차 의료개혁특별위원회를 열고 2차 병원, 1차 의료 강화 방향과 의료사고 안전망 강화 방안 등을 논의했다고 14일 밝혔다.
정부는 의료사고심의위원회(가칭)를 신설할 계획이다. 의료사고에 대한 소모적인 수사를 줄이고, 전문적인 수사체계 구축을 위해 지난 2월부터 시행 중인 ‘의료사고 사건 수사 및 절차 개선 방침’을 제도화하겠다는 것이다.
의료사고심위는 정부, 의료계, 환자단체, 법조계 관계자 등으로 구성해 의료사고 수사와 기소가 중대한 과실 중심으로 진행될 수 있게 할 예정이다. 특히 필수의료 행위 위험성과 공익성을 고려해 명백한 주의의무 위반과 이로 인한 환자의 피해가 상당히 입증된 경우에만 기소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의료사고 사법리스크 완화의 전제로 의료사고 경위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환자의 실효적 권리구제를 보장하는 법적 요건 부과가 필요하다는 데 위원들의 의견이 모였다.
환자와 가족들에게 의료사고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줄이기 위해 ‘환자 대변인제’도 신설된다. 또 의료분쟁조정제도를 혁신하기 위한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을 입법하기로 했다. 의료진의 과실이 없는 불가항력 의료사고에 대한 국가보상을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됐다. 현행 분만 사고에 한정된 보상을 중증 소아, 중증 응급 등으로 확대하고, 지난 10월 입법예고 한 불가항력 사고의 보상 한도는 3000만원에서 3억원 이상으로 상향했다.
이날 논의 결과는 특위 산하 ‘의료사고 안전망 전문위원회’에서 구체화하고, 중대한 과실 중심 기소 체계 전환을 위한 법제화 방안 등을 연내 특위에 보고할 예정이다. 노연홍 위원장은 “의료사고로 인한 장기간 수사와 민·형사상 소송 부담으로 인해 환자들의 권리구제는 늦어진다”라며 “의료진들이 필수의료를 기피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료사고 사법리스크는 완화하되 환자들의 실효적 권리구제를 보장하는 합리적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선 2차 병원의 역할 재정립 방안도 논의됐다. 현재 1700여개의 2차 병원을 기능별로 분류하고 의료 질 평가, 종별 가산제도 등을 개선해 우수한 2차 병원이 불리한 평가를 받지 않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현행 전문병원 지원금에 더해 전문병원 질 지원금을 1개소당 약 4억원 수준으로 성과에 따라 지급하기로 했다.
의료전달체계에서 미흡한 부분인 아급성 병원 육성 필요성에 대한 의견도 제시됐다. 아급성 병원은 중증 수술 이후 회복기 과정의 환자를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병원이다. 특위는 아급성 기능에 대한 성과 지원 강화 방안을 추가로 논의하기로 했다.
고령화에 따른 노인 환자 증가에 대비해 통합적·지속적 1차 의료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혁신 시범사업도 도입된다. 환자 건강 개선, 만족도 등에 따라 성과 보상 등 지불체계를 도입하고 이들 병원이 지역 2차 병원, 지역의사회 등과 협력해 나갈 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할 예정이다.
노 위원장은 “지역·필수의료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지역 2차 병원들이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육성·지원하고, 1차 의료 체계를 혁신해 의료전달체계를 바로잡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이를 위해 지역 수가 신설과 지역 협력체계 구축 등 합리적 유인 구조 설계와 제도적 지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환자, 의료계의 의견과 해외사례 등을 심층 검토해 연내 환자와 의료진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방향과 구체적 입법 계획 등을 제시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