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화학업계가 불황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는 가운데 고부가가치 제품 투자에 매진하고 있다. 공급량을 앞세운 중국에 기술력으로 대응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LG화학 등 석유화학 주요기업들은 지난해 설비투자·연구개발(R&D) 비용 규모를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LG화학은 지난해 설비투자에 12조9598억원을 투입, 전년(8조4062억원) 대비 54.5% 늘어났다. R&D 비용도 2022년 1조7799억원에서 지난해 2조857억원으로 늘었다.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설비투자에 전년(2조5926억원) 대비 40%가량 많은 3조6400억원을, R&D에 1203억원(전년 1024억원)을 투입했으며, 한화솔루션, 금호석유화학 등 기업들도 전년 대비 설비투자와 R&D 비용을 일제히 늘렸다.
PP(폴리프로필렌)와 PE(폴리에틸렌) 등 범용 석화제품 설비를 대폭 늘린 중국의 영향으로 공급 과잉이 일어나면서 고부가가치 제품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LG화학은 일찌감치 전지 소재, 친환경 소재, 혁신 신약 분야 등 3대 신성장 동력을 중심으로 2025년까지 총 1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회사 총 투자의 70% 이상이 3대 신성장 동력에 집중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석유화학 원료 스티렌모노머(SM)를 생산하는 대산·여수 공장 가동을 잇따라 중단하는 등 기존 석화사업 구조도 고부가가치 라인업 형성을 위해 재편 중이다.
롯데케미칼 역시 2030년까지 스페셜티 소재 매출 비중을 60%까지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지난달 선임된 이훈기 신임 대표는 “범용 석유화학 비중을 과감하게 줄이고, 사업 포트폴리오 고도화 목표를 지난해보다 공격적으로 설정하고 철저하게 실행에 옮길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중국의 영향으로 가동률이 하락한 롯데케미칼 울산공장(PET 생산) 직원들의 인력 재배치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SK케미칼은 코폴리에스터 등 기 보유 중인 고부가 제품 중심의 포트폴리오로 부진한 시황의 영향을 덜 받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를 토대로 궁극적으로는 그린케미칼·재활용 플라스틱 밸류체인을 완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코폴리에스터는 테레프탈산(TPA), 에틸렌글리콜(EG), 사이클로헥산디메탄올(CHDM)을 사용하는 내화학성이 뛰어난 고투명 열가소성 비결정형 수지로, SK케미칼은 2021년 세계 최초로 화학적 재활용 코폴리에스터를 상용화한 바 있다.
SK케미칼 관계자는 “올해 글로벌 경기 침체 지속이 예상되나, 고부가가치 제품 중심 판매 확대와 운영 최적화·안정화를 통해 수익성 개선을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한화솔루션은 석유화학·태양광을 넘어 초고압 케이블용 절연 소재인 가교폴리에텔렌(XLPE) 등을 토대로 고부가가치 분야인 초고압 케이블 소재시장 확대에 나섰다.
XLPE는 PE에 첨가제를 넣어 절연·내열 성능을 향상한 것으로, 고온의 열을 견딤과 동시에 내구성도 갖춰야 해 기술 진입장벽이 높다.
업계 관계자는 “‘규모의 경제’로는 중국을 앞서기 어렵지만, 기술력은 여전히 국내 석화업계가 한 단계 높은 수준”이라며 “석화업계가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해 이러한 기술력을 토대로 고부가 제품 전략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민 기자 jaemi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