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4·10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국회 제3당으로 입성한 조국혁신당과의 관계 설정에서 묘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조국혁신당의 대통령 회담, 야권 연석회의 제안에 연달아 퇴짜를 놓으면서도 ‘고량주 회동’ 등 의기투합 모습을 보이면서다. 정권 심판 깃발 아래 한목소리를 냈던 양당 간 구도 변화에 관심이 쏠린다.
27일 정치권에 따르면 최근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에 영수회담 전에 야권 연석회의를 열자는 조국 대표의 요청을 거절했다. 박성준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번 회담은 (대통령과) 민주당과의 회담”이라며 “윤 대통령이 야당 목소리를 듣고자 한다면 조국혁신당과 개혁신당 등 야당 대표와 만나는 시간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영수회담에는 다른 야당이 끼어들 공간이 없다는 완곡한 거절의 표현인 셈이다.
조국혁신당을 향한 친명계 인사들의 견제구도 이어졌다. 친명계 좌장으로 꼽히는 정성호 민주당 의원은 23일 CBS에서 영수회담과 관련해 “아직 거기(조국 대표)는 국회의원이 아니다. 지금은 그런(대화할) 단계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한민수 민주당 대변인 역시 BBS라디오에서 “22대 국회가 아직 개원 전”이라고 말했다.
조국혁신당의 교섭단체 구성도 어려워졌다. 국회법상 교섭단체는 의원 20명 이상을 보유한 정당이 구성할 수 있다. 조국혁신당은 총선에서 12석을 확보했다. 교섭단체를 구성하기 우해선 다른 야당 의원 8명과 공동으로 교섭단체를 구성하거나, 국회법을 개정해 원내 교섭단체 기준을 완화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 비례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 소속 서미화·김윤 당선인은 민주당 합류를 결정했다. 사실상 조국혁신당이 자력으로 교섭단체를 꾸리기는 힘들어진 셈이다. 후자를 추진하려면 원내 제1당인 민주당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시큰둥한 반응이다. 앞서 민주당은 정치개혁 공약으로 교섭단체 구성 요건 완화를 약속했으나, 총선을 치른 후 돌연 분위기가 바뀌었다. 박성준 수석대변인은 지난 17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교섭단체 구성 요건에 대한 질문에 “22대 국회에서 어떻게 할지는 모르겠지만 제도 개선안이라는 점에서 쉽진 않을 것 같다”고 미온적 반응을 보였다.
민주당은 4·10 총선 기간에도 유사한 행보를 보였다. 복수의 여론조사에서 ‘지민비조’(지역구 민주당, 비례대표 조국혁신당) 기류가 뚜렷해지면서다. 당시 민주당의 정권심판론이라는 큰 틀에선 조국혁신당과 연대를 유지하되, ‘더불어 몰빵(지역구도 민주당, 비례대표도 더불어민주연합)’론을 부각하는 등 ‘투트랙’ 전략을 보였다.
정치권에선 민주당이 본격적인 주도권 싸움에 나섰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 대표와 조국 대표는 범야권의 세력을 넓힌 우군이지만, 잠재적 대권 경쟁자다. 야권 구심점 역할을 목표로 하는 민주당과 친명계 입장에선 ‘조국 돌풍’이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 총선이 끝난 후에도 조국혁신당의 존재감이 이어질 경우, 22대 국회에서 자칫 주도권을 내어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친문(친문재인)계와 가까운 조 대표는 총선 이전부터 민주당과 이른바 정통성 경쟁에 돌입했다. 그는 지난 15일 이 대표보다 먼저 문재인 전 대통령을 예방했다. 지난 23일엔 김대중 전 대통령 생가가 있는 전남 신안 하의도를 찾았다. 22대 국회 제3당으로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을 넘어, 이 대표와의 ‘야권 투톱’ 구도를 짜는 것으로 풀이된다. 친명 독주 구도를 완성하려는 이 대표 입장에선, 조국혁신당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다만 양측이 총선 정국에서 ‘정권 심판론’을 기치로 내걸며 공감대를 형성한 만큼, 선별적 협력 관계가 계속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재명 대표와 조 대표는 지난 25일 저녁 만찬 회동을 가졌다. 이들은 내달 개원하는 22대 국회에서 공동 법안과 정책은 추진하는 것은 물론, 특정한 의제가 없어도 상시 회동을 통해 소통을 강화하기로 뜻을 모았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 ‘해병대 채상병 사망사건 외압 의혹 특검법’ 등 법안 처리를 비롯한 주요 안건에서의 범야권 공조가 예상된다.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