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의대증원 중단될 수도”…의정 ‘회의록 공방’ 가열

“내년 의대증원 중단될 수도”…의정 ‘회의록 공방’ 가열

기사승인 2024-05-08 06:00:42
지난 3월26일 서울 시내 한 의과대학 전경. 쿠키뉴스 자료사진

2025학년도 의대 증원 추진 여부를 판가름할 법원 결정을 앞두고 ‘회의록 유무’ 논란이 새 변수로 떠올랐다. 정부가 재판부에 2000명 증원의 근거 자료를 충실히 제출하지 않을 경우 내년 의대 증원 절차가 중단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7일 정부와 의료계는 2000명 증원의 근거가 될 ‘회의록 자료’ 존재 여부를 두고 공방전을 펼치고 있다. 정부가 의대 증원과 관련해 운영한 주요 회의체는 의료현안협의체와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 보정심 산하 의료인력전문위원회, 정원 배정심사위원회(배정위) 등 4개다. 

쟁점은 회의록 작성 의무다. 법원이 지목한 4개의 핵심 회의 중 정부는 보정심과 보정심 산하 전문위 회의록만 제출할 예정이다. 나머지 회의는 법적으로 회의록을 작성할 의무가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의료계는 4개 회의체 모두 주요한 회의인 만큼 법적 의무가 부과될 수 있다고 맞서고 있다. 

앞서 서울고법 행정7부(부장판사 구회근)는 정부를 향해 의료계가 제기한 의대 증원 취소소송 집행정지 가처분 소송과 관련해 오는 10일까지 의대 증원에 대한 근거를 제출하라고 밝혔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이 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발언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정부 “논의 과정 숨길 이유 없어…회의록 기록 법정 의무 준수”

정부는 법적 의무에 따라 작성된 회의록을 제출해 의대 증원 근거를 소명할 계획이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을 통해 “정부는 (의대 증원 규모) 논의 과정을 숨길 아무런 이유가 없다”며 “의료개혁 관련 회의록에 대한 법정 의무를 준수하고 논의 과정을 국민께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공개하겠다고 밝힌 회의록은 보정심과 보정심 산하 전문위원회 회의 자료 2가지다. 다만 해당 회의록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가 정부 입장이 바뀌며 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해당 위원회는 복지부 장관 등 정부 부처 차관급 7명, 의료 전문가 등이 참여하기 때문에 공공기록물 관리법에 따라 회의록을 작성해야 할 의무가 있다. 법을 어겼다는 비판이 거세지자 정부는 회의록이 존재한다고 입장을 바꾸며 고개를 숙였다.

박 차관은 7일 브리핑에서 “초기에 답변이 부정확하게 나갔다. 혼선을 초래하게 된 점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보건의료기본법에 근거를 둔 보정심과 보정심 산하 의료인력전문위원회 회의에 대해선 회의록을 작성·보관하고 있다”고 시인했다. 

나머지 2개 회의 자료는 법원에 제출하지 않을 방침이다. 우선 의료현안협의체는 작성된 회의록 자체가 없다고 설명했다. 협의체는 지난 2020년 의사 집단휴진을 마무리하며 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가 체결한 ‘9·4 의정합의’에 따라 지난해 1월부터 올해 1월까지 28차례 열렸다. 의협과 상호협의한 운영 방식에 따라 회의 종료 즉시 보도설명자료를 배포했기 때문에 따로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박 차관은 “공공기록물관리법에서 요구하는 회의록 작성에 준하는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한 것”이라며 “회의록 작성 의무가 있는 회의체가 아니다”라고 전했다.

특히 배정위 회의록은 베일에 싸인 상태다. 배정위는 지난 3월15일부터 20일까지 회의를 열고 내년 의대 증원분 2000명에 대한 대학별 의대 정원을 결정했다. 그러나 정부는 배정위의 위원 명단, 회의 개최 횟수, 장소 등을 극비에 부쳐왔다. 박 차관은 “배정위는 법상 위원회가 아니고 회의록 작성 의무도 없다”며 “인력이 충분하지 않아 속기록 작성도 안 돼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사직 전공의들과 이들을 대리하는 이병철 법부법인 찬종 변호사가 7일 과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정부 관료들이 회의록을 투명하게 남기지 않았다는 혐의로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등을 공수처에 고발했다. 연합뉴스

의료계 “의료현안협의체, 배정위 회의록도 공개해야”

의료계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정부가 회의록을 공개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는 지적이다. 

일부 사직 전공의들은 회의록을 투명하게 남기지 않았다는 이유로 조규홍 복지부 장관 등 정부 관료들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발했다. 정근영 분당차병원 사직 전공의는 7일 공수처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2000명이 결정된 ‘최초’ 회의록 공개를 요구한다”며 “만약 회의록이 없으면 없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하길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법부를 향해서는 “만약 재판부에서 요청하는 자료를 제출하지 않는다면, 인용 판결을 내림으로써 삼권분립의 정신과 정의를 실현해달라”고 호소했다.

이들의 법률대리인 법무법인 찬종의 이병철 변호사는 이날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보정심, 보정심 산하 전문위 뿐 아니라 의료현안협의체, 배정위도 회의록 작성 의무가 있다”며 “공공기록물 관리법의 ‘회의록 작성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주요 회의’에 해당하므로 회의록 작성 의무가 있다. 2000명 숫자를 논의하진 않았더라도 의대 증원 근거가 되는 회의이므로 회의록을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현안협의체에 참석한 의협 역시 작성한 회의록이 없다는 소식에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성혜영 의협 대변인은 7일 본지에 “회의록 형식이 아니더라도 매회 일시, 장소, 주요 발언을 정리해놓은 문건이 있을 것 아닌가. 의협은 협의체 회의가 끝난 뒤 상임이사회 보고용 자료를 작성했다”며 “정부가 만약 회의록 작성도 하지 않았다면 주먹구구식으로 일한 것이다. 회의록을 공개할 수 없다면 그 이유가 중요하다”고 비판했다.

임현택 의협 회장도 지난 5일 자신의 SNS에 “오백년 전에 왕이 노루사냥 하다가 말에서 떨어지고 사관에게 창피하니 역사에 쓰지 말라고 했던 내용도 반드시 쓰는 민족인데 백년 국가 의료정책에 대해 회의 후 남은 게 겨우 보도자료 밖에 없다네요. 밥알이 아까운….”이라고 적었다. 

“법원, 의료계 손 들 가능성 있어…법조계 분위기 바뀌었다”

전문가는 당장 내년도 의대 증원에 대한 절차가 중단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본안에서 2000명 증원 근거가 합리적이지 않다고 추후 판단될 경우, 혼란이 크기 때문이다. 

이동찬 더프렌즈법률사무소 의료전문 대표변호사는 7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법원에서 가처분 신청을 인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며 “만약 가처분이 인용된다면 2025학년도 의대 정원 증원 정책을 추진하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고 진단했다.

이어 “2000명 증원이 옳다, 그르다는 판단을 본안에서 다퉈볼 이유가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다면 가처분을 인용하는 것”이라며 “법원에서는 이번 가처분 신청에 대해 정부 측에 불리하게 보고 있는 것이 맞다”고 부연했다. 

법조계 분위기가 바뀌었다고도 전했다. 이 변호사는 “이전엔 법조인 10명이면 10명 모두 인용 가능성이 없다고 봤는데, 지금은 절반 정도가 인용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입장”이라며 “법조계 분위기가 크게 바뀌었다”고 말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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