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개혁, 이제는 대통령의 시간 [기자수첩]

연금개혁, 이제는 대통령의 시간 [기자수첩]

기사승인 2024-05-10 06:00:13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 2년 국민보고 및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연금개혁은 윤석열 대통령이 내놓은 3대 개혁 과제다. 대통령은 취임 초기 “개혁은 인기 없는 일이지만 반드시 해내야 한다”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약속을 지키겠다”고 공언했다. 입장이 달라진 걸까. 어느 순간 대통령의 입에서 ‘연금개혁’이 사라졌다. 

9일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2주년 기자회견 모두발언에서도 연금개혁은 입에 오르지 않았다. 기초연금을 40만원으로 인상하겠다는 후보 시절 공약만 재확인했다. 질의응답 시간에 질문을 받고 나서야 “21대 국회에서 조급하게 하지 말고 22대 국회로 넘기자”고 답했다.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영수회담에서 윤 대통령이 “22대 국회로 미루자”는 취지로 발언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보건복지부 차관이 “그런 취지는 아니었다”고 해명한 것이 무색해졌다.

대통령은 연금개혁 지연의 책임을 슬그머니 21대 국회로 미루고 싶은 모양새다. 21대 국회 역시 연금개혁 실패에 대한 비판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대통령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대통령 직속 공적연금개혁위원회 설치’를 내걸었다. 연금제도를 직접 손보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그 의지는 사라졌다. 심지어 지난해 10월 정부가 국회에 제안한 연금개혁 시나리오는 24개에 달해 개혁 의지를 의심 받기도 했다.

취재 중 만난 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연금개혁에 대한 정부 의지가 없으니, 세대별 형평성을 고려하는 제도 등 쟁점을 제시해 여러 의제를 띄우고 있다고 귀띔했다. 진전되기 어려운 논의를 일부러 부추겨 개혁을 지연시키려는 의도란 분석이다. 지난해 5월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인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조차 “정부가 대단히 소극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22대 국회에서 논의가 진전되길 기다리는 건 무책임한 태도에 가깝다. 특위를 구성하는 여야 합의 과정과 앞으로 줄줄이 예정된 선거들을 생각하면 언제 다시 국회에서 연금개혁 논의가 재개될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도 여야가 소득대체율 2%p 차이를 좁히지 못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처음부터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 22대 국회에서 합의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 지 알 수 없다.

다음 국회가 특위를 구성해 법안을 마련하길 기다리는 대통령 대신, 직접 책임지고 나서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싶다. 해외에선 최고 권력자가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 왔다. 일본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여론과 야당의 반발에도 2004년 ‘더 내고 덜 받는’ 연금개혁안을 통과시켰다. 프랑스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지난해 의회 표결 없이 연금개혁 법안을 처리했다. 미래세대가 짊어질 짐을 나눠지자며 대통령이 국민을 설득하고 밀어붙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대통령이 21대 연금특위 성과를 토대로 연금개혁 논의를 주도하면 어떨까. 이미 연금개혁이 필요하다는 국민적 공감대는 형성됐다. 시민대표단 설문조사를 통해 소득대체율 인상에 대한 방향성도 확인했다. 보험료율(내는 돈) 13% 인상에 여야가 합의하는 성과가 눈앞에 있다.

연금개혁이 늦어질수록 미래세대의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김우창 카이스트 교수는 개혁이 1년 늦어질 때마다 연금에 들어가는 국가 재정이 매년 2조원씩 늘어난다고 전망했다. 17년 만에 재개된 국민연금 개혁 논의는 결승선 앞까지 왔다. 이제 대통령이 연금개혁안 논의를 진전시킬 때다. 빚을 짊어질 위기에 놓인 미래세대가 지켜보고 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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