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본인확인제’ 본격 시행…“정착까진 시간 필요”

‘환자 본인확인제’ 본격 시행…“정착까진 시간 필요”

기사승인 2024-05-21 11:00:01
20일 오전 인천 서구 국제성모병원 전광판에서 의료기관 신분증 확인 의무화 안내가 이뤄지고 있다. 연합뉴스

# 20일 오전 감기 치료를 위해 서울 중구 한 이비인후과 병원을 찾은 박지연(31·가명)씨는 당황스러웠다. 병원에서 신분증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신분증이 없다고 하자 간호사는 “모바일 건강보험증도 가능하다”고 안내했다. 박씨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설치한 뒤 인증을 거쳐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20일부터 ‘진료 시 신분증 제출 및 확인 제도(요양기관 본인확인 강화 제도)’가 본격 시행됐다. 시행 첫날 현장에 큰 혼란은 없어 보였지만 제도가 일상에 녹아들기까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날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요양기관 본인확인 강화 제도가 시행됨에 따라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때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 등 신분증을 제시해야 건강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다. 신분증 사본은 인정되지 않는다. 외국인의 경우 사진과 외국인 등록번호가 포함된 증명서를 제출하면 된다. 

19세 미만이거나 응급상황에 놓인 환자, 진료받는 병원에서 6개월 내 본인 여부를 확인한 적이 있는 환자 등은 예외적으로 신분증을 제시하지 않아도 된다. 신분증이 없으면 모바일 건강보험증을 제시하면 된다. 또 전액 본인부담으로 우선 진료비를 내고 14일 안에 신분증과 진료비 영수증 등을 지참해 진료기관을 방문하면 건강보험이 적용된 금액으로 차액을 환급받을 수 있다.

이 제도는 건강보험증을 대여하거나 도용해 진료를 받는 부정수급 사례를 예방하고자 시행됐다. 건보공단에 따르면 건강보험증 대여·도용 적발 사례는 2021년 3만2605건, 2022년 3만771건, 2023년 4만418건에 달한다. 건강보험 재정 누수를 막고, 다른 사람 명의로 마약류 등 약물을 처방받아 오남용하는 등의 사고를 방지하는 목적도 있다.

제도 시행 전 신분증 확인 과정에서 환자와 병원 직원 간 실랑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지만 쿠키뉴스가 취재한 병원들에선 큰 혼란은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신분증을 가져오지 않아 진료를 받지 않고 되돌아간 환자가 곳곳에서 있었다.

서울 서초구의 한 한의원에 요양기관 본인확인 제도를 알리는 홍보물이 놓여져 있다. 사진=서울 서초구 소재 한의원


서울 관악구 소재 이비인후과 의원 A원장은 “바쁜 월요일부터 제도가 시행돼 혼란스러울 것으로 예상했지만 큰 문제없이 환자 접수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A원장에 따르면 이날 정오까지 재진 환자 25명, 신규 환자와 초진 환자가 각각 4명씩 방문했다. A원장은 “1년 만에 온 환자도 신분증이 갖고 있어 잘 진료받고 갔다”면서 “어떤 환자는 신분증을 확인하자고 하니 그냥 가버렸다”고 했다.

서울 은평구 소재 내과 의원 B원장도 “신분증을 두고 와서 집에 다시 다녀온 환자가 있었다”며 “신분증 확인 없이 진료를 보게 해달라며 난리를 피운 경우는 없었다”고 전했다. 경기 고양시 소재 이비인후과 의원 C원장은 “아침에 환자 몇 분이 신분증이 없어서 되돌아갔다. 그냥 진료해달라고 하는 분도 계셨지만 원칙상 어쩔 수 없다고 설명하니 이해해주셨다”며 “아무래도 어르신들이 제도 추진 과정에서 불편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이어 “지역별, 진료과별로 어느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제도가 완전히 정착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심지성 대한이비인후과의사회 공보이사(연세이비인후과 원장)는 “환자 대부분 신분증을 지참해 병원을 방문했고, 신분증이 없어 돌아가거나 전액 본인부담으로 진료받은 환자는 전체의 2% 수준에 불과했다”며 “걱정했던 것과 달리 다들 수긍하는 분위기였고 특별한 문제 제기도 없어 다행이다”라고 했다.

하지만 병원 직원들의 업무 부담은 늘었다. 서울 서초구 소재 한의원 D원장은 “신분 확인에 화를 내거나 거부하는 환자는 없었지만, 직원들이 제도에 대해 설명하고 모바일 건강보험증 설치를 돕느라 업무 부담이 컸다”면서 “정부의 과태료 부과에 계도기간이 있다고는 하지만 국민들이 아직 많이 모르는 것 같다. 대국민 홍보를 늘려 직원들이 일일이 설명하는 부담을 줄여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의료기관이 환자 본인 여부와 건강보험 자격 여부 등을 확인하지 않으면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게 된다. 건강보험 자격을 부정하게 대여해 준 사람과 대여 받은 사람 모두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정부는 TV 등 매체를 활용한 대국민 홍보를 강화하고, 도용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보완하겠다고 했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도용 사례를 최소화하기 위해 본인 명의의 휴대폰에만 모바일 건강보험증이 설치되도록 기술적으로 보완하겠다”며 “지나치게 잦은 인증서 발급 등은 확인이 가능한 만큼 의심 사례를 철저히 모니터링하겠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TV, 유튜브, 기차역, 버스정류장 등을 활용해 홍보를 확대하고, 제도의 원활한 안착을 위해 공단 고객센터 상담원을 통한 지원을 가동하겠다”고 밝혔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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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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