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도 외면’ 선별 수주…정비업계 시공사 찾기 ‘난항’ [주거난개발 ②]

‘강남도 외면’ 선별 수주…정비업계 시공사 찾기 ‘난항’ [주거난개발 ②]

[편집자주] 전국이 낡아가고 있다. 인구 유출과 도시경쟁력 약화로 전국 곳곳에 노후된 주택과 빈집이 늘고 있다. 노후 주거지를 정비하고 재개발·재건축 속도를 높이기 위해 국토교통부와 지자체는 소규모 정비사업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주민 반발, 투기 우려, 사업성 부족 등 난제에 부딪히며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소규모 정비사업이 주민의 거주난을 해결하기 위한 개발인지, 주민을 핑계로 한 난(亂)개발인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기사승인 2024-05-23 06:00:28
2022년 11월25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바라본 송파구와 강남구 아파트 단지 모습. 사진=곽경근 대기자 

고금리‧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공사비 급증으로 인해 건설업계의 선별 수주가 이어지며 사업성이 낮은 소규모 사업장들이 시공사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재건축 사업장 유찰이 늘고 있다. 지난 22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 개포주공5단지는 시공사 선정에 경쟁입찰이 나오지 않으며 유찰됐다. 정비 사업은 시공사 선정 시 2개 이상 시공사가 참여해야 하는데 대우건설만 단독으로 입찰했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 14일 서울 성북구 길음5구역도 포스코이앤씨만 사업계획서를 제출했고, 4일 서울 강동구 암사동 495번지 가로주택정비사업도 DL이앤씨만 단독으로 입찰해 유찰됐다. 

가구 수가 적은 소규모 정비사업장은 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서울 용산구 신용산역 북측 제1구역(324가구)은 한 차례 유찰 실패로 재공고에 나섰으나 롯데건설만 입찰 참여 의향서를 제출했다. 서울 마포구 도화동 마포로1구역 제10지구(231가구)는 유찰을 겪은 이후 아직까지 시공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건설사들이 정비 사업 수주에 보수적으로 나오며 수주 실적도 지난해 대비 감소세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국내 건설사 1분기 재개발 수주액은 2조6309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7.7% 감소했다.

올해 1분기 수주 실적을 공개한 국내 상위 건설사 10곳의 정비사업 수주액은 3조9994억원으로 지난해 1분기(4조5242억원) 대비 약 12% 줄었다. 특히 2년 전(6조7786억원)과 비교하면 40% 가까이 감소한 수치다. 10대 건설사 중 삼성물산·대우건설·현대엔지니어링·GS건설 등 7개사는 올해 1분기 정비사업 수주 물량 ‘0’건이었다.

공사비 920만원에도 시공사 응답 ‘무’

건설 업계는 부동산 경기 침체와 원자재 가격 인상 등으로 인해 선별 수주에 나서고 있다. 부동산 시장 중심인 강남 지역이라도 사업성이 낮거나 공사비에 따라 건설사 선택이 갈리고 있다. 특히 소규모 사업장의 경우 업계의 외면을 받고 있다. 건설사들이 공사비 급등으로 인해 수익성이 확실한 곳에만 입찰에 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규모 정비사업장의 경우 조합물량이 많고 일반 분양 물량이 적어 시공사에서 높은 수익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실제 서울지하철 3호선 매봉역 앞인 ‘도곡개포한신아파트’는 3.3㎡당 공사비 920만원을 책정했으나 입찰자가 전혀 없었다. 강남에 위치했음에도 620가구 규모로 단지가 작고 일반 분양 물량도 85가구로 적어 건설사들이 사업성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서울 서초구 ‘신반포27차’ 역시  강남 3구 노른자 입지에도 유찰을 반복했다. 총 2개 동, 210가구를 재건축하는 소규모 사업장으로 사업성이 낮게 판단됐기 때문이다.

반면, 공사비 증액을 통해 건설사와 계약하는 경우도 있었다. 132가구인 서울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22차 재건축 조합은 지난달 현대엔지니어링과 3.3㎡당 1300만원으로 상향해 계약을 체결했다. 3.3㎡당 1300만원 공사비는 강남권 재건축 현장에서 최고액으로 꼽힌다. 570세대 규모인 서울 여의도 공작아파트는 지난해 대우건설과 3.3㎡당 1070만원에 계약을 마쳤다.

시공사와 조합의 공사비 눈높이가 달라 곳곳에서 갈등도 이어지고 있다. 서울 성동구 행당7구역 재개발 조합은 시공사인 대우건설은 자잿값 상승 등을 이유로 조합에 공사비 2203억원에서 2714억원으로 511억 인상을 요청했으나 조합이 거부하며 공사 중단 위기에 놓였다. 최근 양측은 2509억원으로 공사비 인상을 결정하며 합의했다.

건설 업계도 가파르게 오른 공사비에 시름을 앓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시멘트 가격은 42% 올랐다. 이외에도 골재 36.5%, 레미콘 32.0%, 인건비 15.8% 인상됐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월 주거용건물 건설공사비지수는 154.81(2015년 공사비=100)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공사비가 오르면서 건설사들의 원가율은 90%를 넘어섰다. 원가율은 매출액에서 원가가 차지하는 비율로 높을수록 이익은 줄어든다. 

업계는 공사비 부담으로 인해 보수적으로 사업을 접근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한 대형 건설 관계자는 “예전에는 시공사들이 정비사업에 시공사 선정 공고 때부터 관심을 가지고 경쟁하는 분위기였지만 지금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최근 공사비는 3년간 30% 오르는 등 가파르게 올랐는데 조합이 제시하는 공사비는 인상률을 못 따라오고 있다”라며 “업계에서도 공사비에 부담이 크고 인상액에 대한 조율이 쉽지 않아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라 설명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도 “공사비가 최근 너무 급등해 수주를 보수적으로 보는 분위기가 있다”라며 “지방의 경우에는 미분양 리스크가 있기 때문에 건설사 입장에서는 선별적인 수주 전략을 펼칠 수밖에 없다”라고 밝혔다.

건설업계의 선별 수주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됐다. 한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팬데믹부터 시작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이어지며 수급 불안과 자잿값 상승이 멈추지 않고 있다”라며 “정상 가격을 되찾는데 시간이 다소 걸릴 것으로 보인다. 안정되기 전까진 업계에서도 보수적인 분위기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유정 기자 youjung@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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