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10명 중 8명 이상은 전공의와 의대 교수들이 집단행동을 멈추고, 환자 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은 지난달 28~29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서던포스트에 의뢰해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유무선 임의전화걸기(RDD) 방식으로 ‘의대 증원과 의료개혁에 대한 국민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3일 발표했다. 표본오차는 ±3.1%, 신뢰수준은 95%이다.
조사 결과, 응답자의 85.6%가 “의대 증원에 반대해 진료 거부, 집단 사직, 휴진 등 집단행동을 하는 전공의와 의대 교수들이 집단행동을 중단하고 환자 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밝혔다. “의사들의 집단행동을 존중하고 지지한다”는 대답은 12%에 불과했다.
법원이 의료계 측이 제기한 의대 증원 2000명 집행정지 소송에 대해 정부의 손을 들어준 것에 대해서도 ‘적절하다’는 여론이 우세했다. 서울고법이 지난달 16일 각하·기각 결정을 내린 것과 관련해 70.4%가 ‘잘한 판결’이라고 응답했다. ‘잘못된 판결’이라는 의견은 18.1%에 그쳤다.
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의대 증원 정책을 ‘전면 재검토’를 해야 한다는 의사 단체들의 입장을 지지하는 응답자는 29.1%였다. 반대로 의사단체 입장을 반대한다는 의견은 65.3%에 달했다. 정부 계획대로 의대 증원을 추진해야 한다는 응답 역시 65.3%로 집계됐다.
전공의 이탈로 직격탄을 맞은 수련병원이나 의료공백을 메우는 데 헌신한 공공병원을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수련병원을 지원해야 한다는 응답자는 82.2%, 지원을 반대한다는 의견은 12.7%로 나타났다. 또 “지방의료원과 적십자병원 같은 공공병원의 기능이 회복되도록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는 응답은 85.9%에 기록했다. “코로나19가 끝났으므로 더 이상 지원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견은 11.6%에 그쳤다.
노조는 “의대 증원을 백지화해야 한다는 의사단체들의 주장이 더 이상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준다”면서 “국민들은 의대 증원이 붕괴 위기의 필수·지역·공공의료를 살리기 위한 마중물이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이번 조사 결과는 의대 증원 확정을 ‘한국의료 사망선고’라고 규정한 대한의사협회의 주장과 극명한 온도차를 보인다”면서 “의사 단체는 국민여론에 따라 의대 증원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환자 곁으로 복귀해 진료 정상화에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86.5% “의사들, 의료개혁 참여해야”…지역의사제 도입 찬성 여론도 우세
의료개혁에 대한 국민적 열망도 높았다. 필수의료와 지역의료 공백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의사 단체가 의료개혁을 위한 논의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응답자의 86.5%는 “의사단체들이 의대 증원과 관계없이 의료개혁을 위한 대화에 참여해야 한다”고 했고, 11.2%만 “대화를 거부하는 의사 단체 입장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대형병원 쏠림, 필수의료 기피 현상의 원인으로 꼽혔던 무분별한 개원이나 병상 증축을 통제하는 정책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도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무분별한 병상 증축을 통제하는 정책에 대해서 62%는 찬성, 29.1%는 반대 의견을 냈다. 또 개원 통제 정책의 경우에도 응답자 55%는 찬성, 34%는 반대했다.
지역의료 공백 해소의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는 지역의사제와 공공의대에 대한 찬성률도 높았다. 지역의사제 도입의 경우 85.3%가 지지했으며 반대 의견은 9.7%였다. 공공의대 설립에 대해서는 81.7%가 찬성했고, 반대는 13.6%로 조사됐다.
지역의사제는 의대생들이 졸업 후 특정 지역에서 근무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식이다. 공공의대는 이런 의무를 진 의대를 설립하는 방안이다.
정부는 거주지 선택의 자유 등을 헤칠 수 있다며, 계약을 통해 지역 근무를 유도하는 ‘지역필수의사제’ 도입을 추진할 계획이다. 내년도 의대 정원을 늘리면서 지역에서 교육받은 인재들을 의대생으로 선발하는 ‘지역인재전형’을 대폭 강화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시민사회는 지역인재전형 같은 유인책으로는 지역의료 공백을 해소하기 어렵다고 전망했다. 곽경선 보건의료노조 사무처장은 3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지역인재전형은 단순히 의대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만 늘려주는 것이지 지역에 남거나 공공의료에 종사할 확률은 크지 않다고 본다”면서 “필수·지역의료에 종사하는 의사가 부족하기 때문에 자율성에 맡기는 것은 진전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