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공개(IPO)를 진행 중인 기업이 경영권 분쟁 가능성을 숨긴 것으로 드러나 사상 최초로 상장예비심사 승인 취소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에 지난해 파두 사태에 이어 IPO 시장에 찬물을 끼얹는 악재가 발생한 것이다. 이에 따라 상장 주관사 책임론이 재차 부각되고 있다.
2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8일 코스닥시장위원회는 제10차 시장위원회 심의를 거쳐 클라우드 서비스 개발업체 이노그리드의 코스닥시장 상장예비심사 승인 결과 효력을 불인정하기로 결정했다.
거래소는 이노그리드가 최대주주 지위 분쟁과 관련한 내용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지만, 중요 사항이 아니라고 판단해 상장예비심사신청서 등에 기재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상장예비심사 단계에서 해당 사실을 심의할 수 없었다는 게 거래소 측 입장이다.
앞서 이노그리드는 지난 2월22일 증권신고서를 최초 제출한 이후 이달 17일까지 총 일곱 번이나 신고서를 수정했다. 지난 5월27일 6차 정정 과정에서 법적 분쟁 가능성이 추가됐다.
이노그리드는 증권신고서에서 발행 주식과 관련해 과거 최대주주였던 법인과 해당 법인의 최대주주 상호간 유·무상증자, 주주간 주식매매 거래 등 갈등을 빚고 있다고 명시했다.
거래소의 효력불인정 결정에 따라 이노그리드는 향후 1년 이내에 상장예비심사를 신청할 수 없다. 당초 내달 코스닥시장에 상장 예정으로 오는 24~25일 일반 청약을 진행할 계획이었으나 모두 무산됐다.
시장에서는 지난해 ‘파두 사태’ 이후 또다시 발생한 IPO 부실공시 논란에 관련 시장 침체를 우려하고 있다. 앞서 파두는 지난해 코스닥 상장 추진 당시 증권신고서에 연 매출 예상치를 1200억원 수준으로 밝혔다. 그러나 3분기 실적 발표에서 공개된 매출액은 3억2100만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98% 급감했다.
이에 개인투자자들은 집단 소송까지 제기했다. 파두와 상장 주관사들을 상대로 집단소송 소장과 소송허가신청서를 제출한 법무법인 한누리는 피해주주 모집 당시 “사실상 제로에 해당하는 충격적인 매출을 적어도 파두는 알았을 것”이라며 “상장 및 공모절차를 중단하고, 수요예측이나 청약 등 후속절차를 진행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강조했다.
이번 이노그리드의 상장 불발이 파두 사태와 일정 부분 일치한 만큼, 상장 주관사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이노그리드의 상장 주관사인 한국투자증권은 파두의 공동 주관사를 맡기도 했다. 이에 따라 기업금융 명가 자리를 지키던 한국투자증권이 향후 상장 주관 업무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단 전망도 나온다.
업계에서는 주관사가 발행사를 실시하는 과정에서 강제적 권한이 없어 한계점이 존재한다고 언급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발행사 측이 마음먹고 자료를 숨기거나, 공개하지 않을 경우 주관사가 이를 제대로 알아내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한편 거래소는 예비심사 승인 후 효력불인정으로 인한 시장혼란의 중대성을 감안해 이번 사태와 같은 ‘상장예비심사신청서 거짓 기재 및 중요사항 누락’ 재발방지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다. 현재 1년으로 정해진 제한기간을 3~5년으로 연장하거나, 신청서 작성요령에 필수기재 사항 관련 자의적 판단 지양 및 중요사실 누락 시 제재내용을 명시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이창희 기자 windo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