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근로시간 축소…‘수련교육 질’ 나아질까

전공의 근로시간 축소…‘수련교육 질’ 나아질까

기사승인 2024-06-23 06:05:02
4월1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정부가 전공의 복귀와 수련환경 개선을 위해 현재 80시간인 주당 근로 시간을 60시간으로 줄이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을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서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수련교육체계 개편 없이 근로 시간만 줄이면 역량이 부족한 전문의가 양산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23일 의료계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전공의 연속근무 시간을 현행 36시간에서 24~30시간으로 축소하는 ‘전공의 연속근무 단축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시범사업에 착수한 병원은 강원대병원, 고려대 구로·안암병원, 대구파티마병원, 해운대백병원, 인하대병원 등 6곳이다. 남은 36곳의 병원은 준비 상황에 따라 순차적으로 시범사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시범사업 기간은 내년 4월까지다.

전공의 연속근무 단축에 대해 전문가들은 당연하다는 반응이다. 그동안 전공의들이 과도한 업무와 부담에 시달려왔단 것이다. 실제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의 ‘2022년 전공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공의 16.2%는 24시간 초과 연속근무를 ‘일주일에 3일 이상’ 한다고 응답했다. 월평균 임금은 397만9000원으로 이를 주당 평균 77.7시간을 일하고 받는 대가로 환산하면 최저임금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은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36시간 잠을 안 자고 버틸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나”라며 “그동안 많은 전공의가 졸면서 일해 왔을 텐데 이는 의료진에게도, 환자에게도 좋지 않다”고 말했다. 대한내과학회 수련이사인 김대중 아주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도 “연속근무 축소는 다들 동의하는 편이다”라며 “다만 연속근무 종료 뒤 다음 근무자에게 업무를 인수인계하는 조치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전했다.

정부는 전공의 수련 비용을 국가가 대주고 지원체계를 내실화하는 ‘전공의 수련 국가책임제’도 도입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전공의들이 대거 빠져나가도 병원이 정상적으로 운영되도록 할 방침이다. 또 노동과 희생을 강요하며 쥐어짜는 식이 아닌 피교육자로 대우받는 의료 환경을 조성해 전문의를 양성한다는 복안이다. 이는 그동안 전공의들이 요구해온 사항이기도 하다. 

해외 선진국은 이미 전공의 수련을 국가가 맡고 있다. 미국의 경우 연간 10조원의 전공의 수련교육 비용을 국가와 보험회사가 지원하고 있다. 캐나다는 전공의 1인당 교육비로 연간 1억원가량을 지급하며, 영국은 전공의 급여의 50%를 지불하고 있다.

5월1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 안으로 의료진이 들어가고 있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하지만 주당 근로 시간을 80시간에서 60시간으로 축소하는 방안에 대해선 우려가 이어진다. 전문가들은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수련교육의 질을 떨어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전공의들의 근무 시간을 점진적으로 줄이면서 양질의 수련을 강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 회장은 “전공의 과정을 끝내고 전문의가 돼도 혼자 내시경을 보지 못할 정도로 병원 교육 환경은 오래전부터 망가져 있었다”며 “‘전문의 중심 진료’라는 말이 그럴 듯하게 들리지만, 미래의 훌륭한 의사를 키워낸다는 관점에서 보면 근무 시간 축소는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그렇다고 현행대로 근로 시간을 유지하자는 건 아니다. 이 회장은 “교수들이 중간 착취자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현행 80시간은 막노동일 뿐이다”라며 “선배 의사들이 가르쳐 주는 것도 없으면서 붙잡아 두고 잡일만 시켜서 전공의들의 불만이 크다”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전공의들이 제대로 일할 수 있는 환경부터 갖추는 게 순서라고 했다. 이 회장은 “제대로 배우고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면 근무 시간에 대한 전공의들의 불만은 자연스럽게 사라질 테고 중도 이탈도 줄어들 것”이라며 “정부는 전공의 수련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도 정부와 전문 학회들이 나서 체계적 수련 프로그램을 구축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미국이나 캐나다처럼 체계적이고 구조화된 수련 프로그램을 갖고 있지 않다. 그저 교수 따라다니면서 3~4년 보내고 전문의 시험 치러서 통과하면 전문의가 되는 식이었다”면서 “미국 내과 전공의의 경우 전공의로서 꼭 알아야 할 것들을 체크리스트로 만드는데 이것들을 모두 충족해야 전문의 시험 자격이 주어진다. 정교한 수련 평가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전공의 교육을 전담하는 교수 인력도 필요하다. 김 교수는 “전공의 옆에 딱 붙어서 끊임없이 교육하는 전담하는 교수가 있다면 근로 시간이 60시간으로 줄어도 수련 역량을 채울 수 있을 것”이라며 “교육 전담 교수 인건비 지급 등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수련 시간이 조정되더라도 수련의 질이 저하되지 않도록 교육 프로그램을 보완하겠다고 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4일 브리핑에서 “전공의 수련이 체계적으로 진행되도록 수련 환경을 전면 개편하고, 재정 지원도 획기적으로 강화하겠다”며 “전공의 단체가 제시한 제도 개선사항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