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보호 조치가 종료된 자립준비청년의 상당수는 정신건강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조사됐다. 자살 생각을 한 주된 이유도 정신과적 문제가 경제적 문제보다 높게 나타나 ‘마음 건강 지원’을 강화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보건복지부는 26일 자립준비청년의 건강·교육·고용 등 자립실태와 지원 욕구에 관해 조사한 ‘2023 자립지원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2022년 아동복지법 개정에 따른 최초의 법정 조사다. 2008년부터 2020년까지 4년 주기로 실시된 앞선 조사는 별도의 법적 근거 없이 실시됐다.
지난해 9월부터 11월까지 8개 영역별 문항에 대한 온라인 설문조사로 실시된 이번 조사는 전체 자립준비청년 9670명 중 절반 이상인 5032명이 참여했다. 조사에 참여한 자립준비청년의 평균 연령은 22.8세였다. 보호 유형은 가정위탁이 58.7%, 아동양육시설 31%, 공동생활가정 10.3% 순이었다. 보호종료 유형은 18세가 된 직후 종료한 ‘연령도래 종료자’가 50.4%, 18세 이후 일정기간 보호기간을 연장하다가 종료한 ‘연장보호 종료자’가 49.6%였다.
정서지표 ‘빨간불’…정신과적 문제 심각
자립준비청년의 심리정서 영역을 나타내는 지표는 전체 청년에 비해 전반적으로 낮게 나타났다. 자립준비청년의 주관적인 삶의 만족도 평균은 10점 만점에 5.6점이었다. 이는 직전 조사(5.3점)보단 높아졌지만, 전체 청년의 만족도 평균인 6.72점에 비하면 낮은 수준이다.
특히 자살 생각 유경험률이 전체 청년에 비해 높았다. 자립준비청년 중 평생 한 번이라도 자살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46.5%로, 2020년(50%)보다 3.5%p 줄었다. 다만 전체 청년(10.5%)에 비해선 크게 차이가 났다. 1년간 심각하게 자살 생각을 해본 적 있다고 응답한 자립준비청년도 18.3%로 조사됐다.
자살 생각을 한 주된 이유도 ‘우울증 등 정신과적 문제(30.7%)’가 가장 높았다. 그 다음으로 경제적 문제(28.7%), 가정생활 문제(12.3%), 학업·취업 문제(7.3%) 순이었다. 2020년에는 경제적 문제가 1순위였던 반면, 2023년엔 정신과적 문제가 가장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에 비해 정신질환에 대한 예방·조기 치료가 더욱 중요해진 것이다.
자살 생각이 들 때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도움으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나 멘토(30.3%) △운동·취미 등 지원(24.7%) △심리상담 지원(11.0%) △정신과 치료 지원(9.6%) 등을 꼽았다.
질병을 경험한 자립준비청년 중 정신과 질병 경험률은 12.7%였다. 일상생활에 제한을 가져온 주된 질병을 보면 정신과(51%) 질환이 가장 많았고 정형외과(20.1%), 내과(4.5%) 등 순이었다.
10명 중 1명은 고립·은둔 상황에 처해있었다. 사회로부터 고립·은둔 정도를 외출 빈도로 조사한 결과, 보통 집에 있거나 집(방) 밖으로 안 나간다는 비율은 10.6%이었다. 이는 전체 청년 2.8%보다 높은 수치다. 자립준비청년이 집에 있는 주된 이유는 △취업 문제(30.7%) △인간관계 문제(15.2%) △건강 문제(8.1%) 등이었다. ‘기타’라고 응답한 청년도 28.7%로 높아 개인마다 다양한 이유가 작용한 것으로 파악된다.
복지부 관계자는 25일 출입기자단 사전설명회를 통해 “자살 생각 유경험률이 높게 나타난 점은 눈여겨봐야 할 지표”라며 “부모와 즉각 분리되거나 학대 혹은 버림받았다는 여러 정서적 충격을 받은 이후 아동보호체계로 들어왔기 때문에 부모와 떨어져서 지내는 동안 누적된 부분들이 원인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주요 지표 전반적 개선…고용률 10.2%p 상승
정부는 그간 자립준비청년에 대한 정책 지원을 지속적으로 확대해왔다. 자립수당 지급기간을 3년에서 5년으로 늘리고, 수당도 24만5000원으로 높였다. 또 의료비 지원 사업, 자립 지원 전담인력 확충, 바람개비서포터즈 자조모임 활동비 신설, 공공임대주택 우선공급 및 전세임대 22세까지 무상 지원,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 무이자 지원 등을 뒷받침했다.
이로 인해 직전 조사인 2020년과 비교하면 주요 지표가 전반적으로 개선됐다. 그간의 정부 정책 확대가 자립준비청년의 삶에 긍정적 영향을 준 것으로 복지부는 해석했다.
우선 건강보험 가입자 비율이 높아졌다. 2020년 42.9%에서 2023년 56.7%로 13.8%p 증가했다. 최근 2년간 건강검진을 받아본 비율은 53.4%로, 직전 조사 47.1% 대비 6.3%p 늘었다. 전반적 고용·경제적 수준 개선이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또한 자립준비청년 중 최근 1년간 병·의원 진료가 필요했지만 받지 못한 비율은 20.7%로, 2020년(36.4%)보다 15.7%p 감소해 진료비 부담 등 의료서비스 이용 여건이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필요한 진료를 받지 못한 주된 이유는 △진료비가 부담 돼서(58.5%)가 가장 많았고, 그 외 △시간이 없어서(28.7%) △증세가 가벼워서(6.1%) △진료받기 무서워서(2.4%) 순이었다.
주거 영역을 살펴보면 자립준비청년 중 1인 가구 비율은 69.5%로, 나머지는 부모·형제자매, 조부모·친인척, 배우자, 친구 등과 함께 살고 있다고 응답했다. 현재 거주 중인 주거 유형은 △공공임대주택이 45.3%로 가장 많으며, △월세(21.2%) △친척 집(6.9%) △전세(5.5%) △ 기숙사·학사(4.4%) 등 순으로 나타났다. 평균 주거비는 보증금 3825만원, 월세 28만8000원이었다.
이들이 보증금을 마련한 방법(3순위까지 응답)은 △자립정착금(40.9%) △공공임대 등 정부·지자체 주거 지원(38.8%) △근로소득·저축(33.4%) 등 순이었다. 월세를 마련한 방법(3순위까지 응답)은 △근로소득·저축(65.5%) △자립수당(52.6%) △국민기초생활 주거급여(29.6%) 등 순이었다.
자립준비청년의 대학 진학률은 69.7%로, 2020년(62.7%)보다 7%p 상승했다. 다만 우리나라 고등학교 졸업자의 평균 대학 진학률(72.8%)에 비하면 낮은 수준이었다. 구체적인 교육 수준은 △4년제·대학원이 35.4% △2·3년제 34.3% △고졸 이하 30.3%로 조사됐다. 고졸 이하 응답자가 대학에 가지 않은 주된 이유로는 △‘빨리 취업하고 싶어서’(51.2%) △‘대학에 가야 할 이유가 없어서’(14.6%) △‘경제적으로 어려워서’(11.3%) 등이 있었다.
대학 진학 응답자를 대상으로 등록금 마련 방법을 조사한 결과(복수 응답), 대학 진학자 중 83.6%는 국가장학금 지원을 받았다. 한국장학재단의 학자금 대출이나 학교 자체 장학금도 각각 대학 진학자의 16.1%, 16%가 지원받았다고 응답했다.
자립준비청년 중 취업자 비율(고용률)은 52.4%로, 2020년(42.2%)에 비해 10.2%p 올랐다. 다만 20~29세 전체 청년 고용률(61.3%)보다는 낮은 수준이었다. 고용 형태는 △기업 등 사업체에 고용돼 보수를 받는 임금근로자가 95.6%로 대부분이었고 △ 4.4%는 자영업자 등 비임금근로자였다. 임금근로자 중 고용계약이 정규직 또는 1년 이상인 상용직은 77.6%, 임시직은 18%, 일용직은 4.4%로 나타났다.
이기일 복지부 제1차관은 “이번 실태조사를 통해 자립준비청년에 대한 지속적인 국가 지원 확대가 이들의 삶 곳곳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있음이 확인됐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럼에도 자립준비청년들은 전체 청년과 비교하면 어려운 환경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정부는 자립준비청년과 함께 동행하며 세심하고 폭넓게 지원해나가겠다”고 밝혔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