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메프’의 정산 지연 사태의 여파가 큐텐그룹의 다른 계열사로 번지고 있다. 일부 PG(간편결제)사들이 결제 대금 지급을 보류하면서 판매자들은 잇따라 판매 중단에 나섰다. 업계에선 이번 사태의 허점인 정산대금 관리를 위한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인터파크도서는 지난 31일 “최근 발생한 티몬, 위메프의 미정산 영향으로 정상화 시점까지 인터파크도서 서비스를 일시 중단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인터파크커머스 대표이사 이하 모든 임직원은 조속히 서비스 정상화를 위한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산 지연 문제가 불거지면서 인터파크커머스 내 주요 업체들과 입점사도 줄줄이 판매 중지에 돌입하는 양상이다. 현재 인터파크쇼핑 내 브랜드관에서는 롯데백화점, GS샵, CJ 온스타일 등 입점사들이 판매를 중단했다.
인터파크도서는 큐텐 계열사인 인터파크커머스가 운영하는 도서 전문 온라인 플랫폼이다. 인터파크쇼핑과 AK몰도 인터파크커머스 산하 온라인 쇼핑 플랫폼에 속한다.
AK몰은 전날 정산 관련 공지에서 “인터파크커머스가 운영하는 인터파크쇼핑, 인터파크도서, AK몰이 티메프 미정산 영향으로 판매대금을 수령하지 못했다”며 “일부 전자지급결제대행(PG) 업체의 결제 대금 지급 보류 영향으로 판매대금 정산 지연이 발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AK몰은 마지막 정산일인 31일을 기점으로 정상운영 여부가 판가름이 날 것으로 보인다.
인터파크커머스는 정산 주기가 최대 70일 안팎인 티메프와 달리 매주 월요일에 정산하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일부 PG사와 간편결제사가 인터파크커머스 판매 대금을 묶어놓으면서 자금이 돌지 않았고, 일부 판매자들의 경우 정산 대금을 지급받지 못했다.
앞서 구영배 큐텐그룹 대표가 전날 국회 정무위원회 긴급 현안질의에 출석해 “큐텐의 계열사인 인터파크커머스와 AK몰에서도 정산 지연 가능성이 있다”고 답한 게 현실화한 셈이다.
이번 티메프 사태는 이커머스 업체들의 허술한 정산 시스템에서 촉발됐다. 전자상거래 발달로 유통산업에서 이커머스 규모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허술한 규제 시스템은 개선되지 못하고 제자리 걸음인 상태다.
정산 주기 및 정산 대금 관리가 고질적인 문제로 꼽힌다. 정산과 대금 보관, 사용 방법 등에 관한 법적 규제가 없어 업체별 정산 주기와 방식도 제각각이다. 업체가 판매자의 정산 대금을 남용하거나 채무를 상환해도 처벌할 방도가 없는 실정이다.
현행법상 ‘대규모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판매 대금의 지급 시한을 40~60일 이내로 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법령은 롯데·신세계 등 대기업 계열 유통업체만 해당된다. 오픈마켓 형태의 중개사업자인 티몬·위메프 같은 중소형 이커머스 업체들은 관련 규제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처럼 입점업체에 대한 플랫폼 업체의 갑질을 막기 위해서라도 판매 대금과 관련한 법제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소비자를 비롯한 입점 판매자들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최소한의 제도적 안전망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종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런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에 법적 제도 개선이 이뤄졌어야 하는데 이미 늦은 감이 있다”면서 “대형 유통사 뿐만 아니라 플랫폼 위탁 판매업자들도 결제 대금 지급 기한을 현행 대규모유통업법에 포함되도록 규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기본적인 사고를 방지할 정도의 법제화가 이뤄져야 한다”면서 “이를 테면 판매자 대금 남용 등을 막기 위해 일정 부분은 사내 유보금으로 충당하거나, 지급보증보험 비용을 변제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제라도 이커머스 특성에 맞는 규제 시스템이 새롭게 정비돼야 한다”면서 “소비자들의 신뢰도를 높이고 유사 사태의 재발을 방지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이커머스 정산 주기와 대금 보관 방식, 규모 등에 대한 점검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