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 중심병원 필수인력 ‘전담간호사’…“법적 보호체계 마련해야”

전문의 중심병원 필수인력 ‘전담간호사’…“법적 보호체계 마련해야”

전공의 이탈 의료공백 메우는 전담간호사들
‘간호사 업무 시범사업’ 한계…교육체계 미비
“전담간호사, 흉부외과팀 주요 인력”
복지부 “간호사법 제정 최대한 지원할 것”

기사승인 2024-08-02 15:18:01
2일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실과 대한간호협회가 주관한 ‘간호사 등에 관한 법률안’ 제정을 위한 토론회가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개최됐다. 사진=신대현 기자

우리나라 현행 의료법에선 의사의 지시가 없다면 간호사가 간단한 환부 드레싱 처치를 하거나 약국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소염진통제를 처방하는 일이 불법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의료현장에선 의사의 위임·감독 하에 많은 업무가 간호사들에게 떠넘겨지고 있다. 간호사들이 제도권 안에서 전문성과 권리를 인정받으며 일할 수 있도록 업무 범위를 정하고 보호하는 법이 마련돼야 한다는 호소가 나온다.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실과 대한간호협회(간협)가 주관한 ‘간호사 등에 관한 법률안’(간호사법) 제정을 위한 토론회가 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됐다. 이 자리에 전공의 이탈 이후 이들의 업무를 대신하며 의료공백을 채우고 있는 일선 전담간호사들이 나와 의료 현장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전담간호사란 수술실에서 협진 수술을 상담하는 등 특정 분야의 난도 높은 전담 의료 업무를 수행하는 숙련된 간호사를 일컫는다. 정부는 지난 2월부터 전공의 사직으로 인한 의료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전담간호사가 의사 업무를 대신할 수 있도록 하는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상급종합병원에서 14년째 전담간호사로 근무하고 있는 A간호사는 의료 행위를 할 때마다 고민을 거듭한다. 의료공백을 전담간호사들이 메우고 있지만 의료진은 환자 상태가 악화되는 등 문제가 생겼을 때 전담간호사 탓을 한다. ‘내가 이 일을 맡을 자격이 있는지’,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딜레마를 안고 불안이 이어진다. 간호사로서 일한 경력이 많다는 이유로 전담간호사로 선정돼 선임자에게 10일간 인수인계를 받은 게 전부였다. 대부분의 업무는 체계적인 교육 과정 없이 스스로 터득해야 했다. 일을 거듭하는 사이 신체적·정신적 부담은 늘어갔다.

A간호사는 “간호사법이 생긴다면 정식 교육 과정을 밟아 법적 보호체계 안에서 당당한 전담간호사로 일하고 싶다”며 “PA간호사라는 잘못된 명칭을 변경해야 하는 것은 물론 의사 보조 인력, 불법 보조 인력이라는 인식을 개선하는 일도 시급한 과제다”라고 말했다. 현재 여야는 전담간호사의 업무와 지위를 규정하는 법안을 각각 발의한 상태다.

또 다른 전담간호사 역시 하루빨리 간호사법이 제정돼 간호사의 진료 지원 업무가 법제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종합병원에서 수간호사로 일하며 전담간호사팀을 운영하고 있는 B간호사는 “전담간호사들은 수십 년 전부터 제대로 된 이름 없이 의사들의 지시 하에 진료 업무를 수행해왔다”며 “진료 지원 업무가 법제화되지 않으면 의료인과 환자 모두 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하루빨리 간호사법이 제정돼 모든 국민이 안심하고 양질의 의료 서비스와 간호를 제공받는 날이 오길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5월22일 대한간호협회 회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간호법안 제정 촉구’ 집회에 참여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박효상 기자

진료와 간호 업무를 모두 보는 전담간호사는 별도의 교육 과정이나 보상체계가 없다. 정부의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참여는 저조한 편이다. 간협이 지난 6월19일부터 7월8일까지 시범사업 대상인 387개 의료기관 중 설문에 참여한 303개 기관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진행한 결과, 시범사업에 참여한 기관은 151개소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시범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의료기관에서 진료 지원 업무를 하는 간호사는 1만3502명이었고, 이들 중 96.1%인 1만2979명은 전담간호사 또는 일반 간호사들이었다. 전담간호사들은 의사의 진료 업무와 간호사의 업무를 모두 수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담간호사에 대한 교육은 전무했다. ‘교육이 전혀 없다’고 응답한 비율은 27.7%, ‘교육이 거의 없다’ 비율은 36.7%였다. ‘대부분 있음’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6.9%에 불과했다.

이날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한 황선영 한양대 간호대학 교수는 지난 2월 시작된 의료공백 사태 이후 병원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전공의를 대신해 일반 간호사를 전담간호사로 전환해 활용하고 있지만, 신규 간호사 채용이 이뤄지지 않고 있어 기존 인력이 소진되고 있다고 짚었다. 

황 교수는 “병원들은 경영난을 이유로 신규 간호사 채용에 나서지 않고 있다”며 “업무 난이도와 환자 중증도에 따른 간호사 배치 기준과 정원을 정하고, 3년 이상 임상 경력을 갖춘 간호사들을 전담간호사로 선발하는 한편, 이들의 업무 범위를 규정해 표준화된 과정으로 교육하고 적정한 보상을 지급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대표적인 기피과로 꼽히는 흉부외과는 전공의 인력을 구하기 어려워 전담간호사를 필요로 한다. 정의석 강북삼성병원 흉부외과 교수는 “전담간호사는 단순히 의료진을 보조하는 역할이 아니라 의료진과 함께 주요한 업무를 공유하고 있다”며 “전담간호사는 교육과 인증 제도로 양성해야 하는 전문 인력으로 흉부외과팀의 주요 구성 인원이다. 법제화를 통해 이들이 안정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이 끝난 후에도 법제화를 추진해 진료 지원 간호사 보호체계를 마련할 계획이다. 박혜린 보건복지부 간호정책과장은 “전담간호사 법제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은 많은 토론자와 현장의 의견을 통해 확인됐다”며 “간호사법이 조속히 제정될 수 있도록 정부가 최대한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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