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액 삭감 불가피”…尹 개혁안 ‘자동안정장치’ 뭐길래

“연금액 삭감 불가피”…尹 개혁안 ‘자동안정장치’ 뭐길래

기사승인 2024-08-21 11:00:04
쿠키뉴스 자료사진

정부가 내달 초 ‘자동 재정안정화 장치(자동조정장치) 도입’이 포함된 국민연금 개혁안을 내놓을 전망이다. 기금 소진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취지지만, 연금 보험료 인상과 수령액 삭감이 불가피해 노후 소득 보장 기능이 약화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2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8월 말 또는 9월 초 (연금개혁의) 정부안을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작업하고 있다”면서 “현재 가장 큰 문제는 연금이 고갈된다는 국민들의 걱정이기 때문에, 지속가능성 제고를 위해 다른 나라에서도 채택하고 있는 자동안정화 장치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자동조정장치는 기금투자 수익률, 기대여명 등 거시 변수에 따라 보험료율(연금 보험료 납부액)이나 소득대체율(연금 수령액)을 자동으로 조정하는 제도를 말한다. 기금 고갈이 예상될 경우 자동으로 납부액을 올리고 수급액을 줄일 수 있다.

현재는 보험료율-소득대체율을 조정하기 위해선 법 개정이 필요한데, 사회적 타협이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단점이 있다.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하면 국회가 국민연금법을 개정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기금 소진 우려에 유연하고 빠르게 대응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장치를 도입하면 기금 소진이 30년 이상 늦춰지는 효과가 있다. 국민연금연구원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국민연금 자동 조정 장치 도입 필요성 및 적용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보험료율을 15%로 올리고 일본식 자동조정장치를 적용할 경우 2093년도까지 연간 연금 지출액의 80%에 해당하는 금액이 기금 적립금에 남아 있는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기금 예상 고갈 시점(2055년)보다 38년을 늦출 수 있다.  

연금연구원이 재정 추계에 활용한 일본 방식은 보험료 납부자 감소와 기대여명 증가에 맞춰 연금 급여를 삭감하는 형태다. 예컨대 현재 연금 수령액이 100만원일 경우, 물가가 3% 오르면 내년엔 103만원을 수령하게 된다. 그런데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하면 수령액이 달라진다. 3년간 보험료 납부자가 평균 0.7% 감소하고, 기대수명은 0.3% 늘어났다고 가정했을 때 물가인상률 3%에서 변동된 1%를 뺀 2%만 연금액을 인상해 총 102만원을 받게 된다.

문제는 도입 시 연금 수령액의 삭감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연금 가입자 중 소득이 평균 수준인 사람이 2050년부터 연금을 받을 경우 자동 조정 장치를 도입하면 급여가 167만4000원에서 164만7000원으로 2만7000원 감소한다. 현재도 받는 액수가 너무 적다 보니 ‘용돈연금’이라는 비판이 나오는데,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하면 수령액이 큰 폭으로 삭감될 수 있어 가입자들로부터 반발을 살 수 있다. 

전문가들도 자동조정장치 도입 논의는 ‘시기상조’라고 입을 모은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이 40.4%(2020년 기준)에 달하는 상황에서 연금액까지 깎는다면 국민연금의 ‘노후 안전판’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장치를 도입한 나라들도 연금 재정이 안정된 뒤 논의를 시작했다.

21대 국회 연금특위 민간자문 공동위원장을 맡았던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인의 최저 생계를 보장할 수 있는 수준까지 연금 수령액을 올려야 한다는 것이 21대 국회에서 진행된 공론화 결과에서 확인할 수 있는 국민 여론”이라며 “장치 도입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자동조정장치가 효과적으로 역할을 하기 위해선 현행 제도가 재정 안정을 구축해 놓은 상태여야 한다”면서 “국민연금의 미래 재정 불균형이 존속된 상황에서 이 장치를 탑재하면 급격한 보험료율 인상이나 수령액 인하가 도출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한국은 장치 도입을 논의할 단계가 아니다”라며 “도입한 나라를 보면 보험료율이 높고 노인 빈곤율이 상당히 낮은 상태였다. 이미 한국 노인 빈곤율이 30%를 넘은 상황에서 연금액까지 삭감한다면 우리 사회가 노인 빈곤을 감당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역시 “지금은 장치 도입을 고려할 때가 아니다”라며 “노인 빈곤율이 감소한 다음 도입을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어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자동조정장치는 개혁 순서에 있어 보험료율 조정을 한 뒤 고려할 수 있는 수단”이라며 “지금 당장 도입한다면 큰 폭의 연금액 삭감이 일어날 수 있다. 현행 보험료(9%)를 균형 보험료 수준(19.8%)에 맞춰 지속가능성을 확보한 뒤 미세조정을 위해 장치 도입을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다만 보험료율을 15%까지 올릴 수 없다면, 자동조정장치 도입을 통해 비슷한 효과를 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장치를 도입하면 보험료를 2%p 올리는 효과가 난다”며 “당장 도입을 한다고 해도 이를 적용하는 시점은 연금 수급 연령이 65세에 도달하는 2033년 이후가 될 것이다. 남은 10년간 노동시장 개혁을 통해 퇴직과 연금 개시 시기를 일치시키면, 평균 연금 수령액이 높아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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