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첫 정기국회 시작과 동시에 ‘민생’을 앞세운 여야의 주도권 경쟁이 본격화하는 모양새다. 여야가 각종 협의체를 띄워 민생 입법 논의에 시동을 걸고 있지만, 서로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어 실제 협치 성과를 낼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6일 정치권에 따르면 여야는 22대 국회 첫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각각 민생을 강조하며 민생 입법을 위한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민생 법안 논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를 제안했다. 그는 5일 국회 본회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이번 정기국회만큼은 정쟁은 내려놓고, 산적한 민생경제 현안을 챙기고 미래를 준비하는 데 온 힘과 정성을 쏟아 붓자”며 “‘여야정 협의체’를 하루빨리 구성하자”고 강조했다. 이어 “이와 함께 ‘민생입법 패스트트랙’을 추진하자”며 “여야 간에 이견이 크지 않은 비쟁점 민생법안을 따로 분류해서 신속하게 처리하는 장치를 도입하자”고 말했다.
추 원내대표는 국회 ‘연금개혁특위’도 제안했다. 그는 “정부가 구체적인 연금개혁안을 발표했다. 이제부터는 국회의 시간”이라며 “당장 국회 ‘연금개혁특위’부터 구성하고 논의를 시작해서 올해 안에 실질적 성과를 만들어내자”고 강조했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여·야·의·정 비상협의체’ 신설을 제안했다. 그는 지난 4일 국회 본회의에서 “시급한 의료대란 사태 해결 방안부터 중장기적 의료개혁 방안까지 열어놓고 대화하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라는 점에 모두가 공감할 것”이라며 “체면을 따지거나 여야를 가릴 때가 아니다.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의료계와 정부도 참여해 사회적 대타협을 끌어내야 한다”며 촉구했다.
여야가 정기국회 이후 민생을 강조하고 나선 것은 국회가 정쟁으로 민생을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을 의식하면서다. 여야는 뒤늦게 민생 입법 논의를 시작했지만, 각종 민생 현안에서 주도권을 뺏기지 않기 위해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이로 인해 협의체 실현 가능성은 물론 민생 협치 가능성도 불투명하다는 지적이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제안한 연금개혁특위와 관련해 사실상 반대 입장을 내놨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인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5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특위 구성과 관련해 “당장 국회의 어느 단위(상임위)에서 논의할지 결정하기가 어렵다”며 “정부의 안이 구체적으로 확인되면 해당 내용에 따라 적절히 논의할 수 있는 자리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수개혁을 하는데 특위가 아닌 복지위에서 하면 훨씬 속도가 빠를 것”이라고 했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 역시 “공론화 결과와 반대되는 방안을 내놓고 새삼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자는 여당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여당의 ‘여야정 협의체’ 제안에도 회의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대표연설 직후 기자들과 만나 “(추 원내대표가 제안한 여야정 협의체에 대해) 기대는 하지만 얼마나 성과가 있을지 모르겠다. 여·야·정이 함께 힘을 모아서 가야 되는 것 아니냐”며 “더 중요한 것은 대통령의 국정 기조를 바꾸고 야당을 협치의 대상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민주당이 의료대란 해결을 위한 ‘여·야·의·정 비상협의체’를 제안한 것과 관련해 “민생을 위해서 많은 대화를 하고 또 많은 협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같은 제안에 “여야는 의료 지원 등의 문제에 대해서도 서로 의견을 일치하지 못한 것으로 안다”며 “여야 간에 먼저 협의하는 과정을 지켜봐야 한다”며 사실상 거절 의사를 밝혔다.
심지어 국회 상임위 곳곳에서 여야 충돌로 파행하며 다시 대치 정국으로 돌아가고 있는 듯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로 인해 여야 ‘협치’ 전망은 더욱 어두워지고 있다는 평가다.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여야는 ‘빌런’ 공방을 벌였다. 국민의힘은 지난 5일 민주당의 채상병특검법 단독 상정을 비판하며 민주당 소속 정청래 법사위원장에게 ‘빌런’이라고 비난했다. 정 위원장이 사과를 요구했으나 국민의힘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파행이 빚어졌다. 이로 인해 심우정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은 이틀째 불발됐다.
국토교통위원회에서도 여야가 충돌했다. 민주당은 지난 5일 국토부 결산안 부대 의견에 ‘대통령 관저 증·개축 과정에서의 불법성 여부’를 확인하는 내용을 포함할지를 두고 부대 의견 명시를 주장했다. 국민의힘은 이미 자료를 제시했음에도 불법성을 확인하자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며 모두 퇴장했다. 이후 결산안은 야당 단독으로 처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