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뺑뺑이’로 아이 잃었는데 ‘법대로 하라’는 병원…“사과 없었다”

‘응급실 뺑뺑이’로 아이 잃었는데 ‘법대로 하라’는 병원…“사과 없었다”

기사승인 2024-09-10 17:54:13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포레스트구구에서 열린 환자샤우팅카페 행사에서 의료사고로 사망한 고 김동희군의 어머니인 김소희씨가 아이 사진을 옆에 두고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초중증 응급환자가 치료 받을 병원을 찾지 못해 119구급차 안에서 거리를 떠도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더 이상 응급환자 수용 거부로 골든타임을 놓쳐 억울한 죽음이 생기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가 강화돼야 한다는 바람이 이어진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환단연)가 10일 서울 종로구 포레스트구구에서 개최한 ‘환자샤우팅카페’에 지난 2020년 3월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로 소중한 아들을 잃은 어머니가 나와 목소리를 냈다. 환자샤우팅카페는 의료사고를 겪은 환자와 환자 가족들이 자신의 억울함과 울분을 전하고 전문가와 함께 해결책을 토의하는 자리로 12년째 진행되고 있다.

2019년 10월4일 김동희(당시 만 6세)군은 양산부산대병원에서 편도제거수술을 받았다. 수술한 지 4일 만에 퇴원한 김군은 목 통증이 심해 어떤 것도 섭취할 수 없었다. 상태는 갈수록 악화돼 집 근처 2차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았다. 치료받던 김군은 수술 받은 편도 부위가 터져 피를 쏟고 정신을 잃었다. 10월9일 새벽 1시46분 의료진은 수술받은 양산부산대병원으로 전원을 결정했다. 119구급대는 김군을 이송하는 도중 병원으로부터 의료진이 응급 환자 CPR(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어 수용이 불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119구급대는 CPR을 하며 김군을 19㎞ 떨어진 부산동아대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로 이송했다. 하지만 도착했을 땐 이미 뇌사 상태에 빠진 뒤였다. 김군은 이로부터 5개월이 지난 2020년 3월11일 세상을 떠났다.

김군의 어머니인 김소희씨는 아들을 보내고 난 뒤에야 편도제거수술 후 회복 과정에서 출혈이 있었다는 얘기를 접했다. 집도의는 당시 출혈 부위를 특정하지 못해 환부를 광범위하게 소작(지짐술)했다고 했다. 사과는 없었다. 잘못을 따지고 사과를 촉구했지만 ‘법대로 하라’는 말이 돌아왔다. 사건 공론화를 위해 국민청원을 올렸고 20만명의 동의를 얻어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됐다. 경찰 수사 결과 의료진은 의무기록지에 해당 사실을 남기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진료기록을 허위 작성한 사실도 밝혀졌다. 또 응급 환자 CPR을 이유로 수용을 거부했을 당시 CPR 중인 다른 환자는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결국 지난해 6월28일 집도의 등 의사 5명이 검찰에 불구속 기소됐다.

김씨는 아들의 일과 같은 제2, 제3의 억울한 사건이 더는 발생하지 않도록 해달라며 국회와 정부에 응급의료기관의 응급환자 수용 의무 법제화를 호소해 왔다. 이제 그는 아들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수술한 병원과 의료진을 상대로 긴 법정 싸움을 앞두고 있다. 오는 11일 기소된 5명의 의사에 대한 형사재판 1심이 열린다.

김씨는 “아들의 마지막 모습을 잊을 수 없다. 피를 토하며 눈을 감던 그 모습을 평생 잊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며 “병원 측의 진정한 사과와 위로의 말 한마디라도 있었다면 여기까지 오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들의 죽음이 단순히 안타까운 사고에 그칠 게 아니라 이 같은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방지 대책이 마련되는 계기가 돼야 한다”며 “초중증 응급환자가 치료 받을 병원을 찾지 못해 119구급차에서 죽는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 안으로 환자가 옮겨지고 있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환단연은 의료사고가 발생할 경우 의료진이 환자에게 충분한 설명과 위로를 의무적으로 하도록 관련 입법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기종 환단연 대표는 “의사가 환자에게 의료사고에 대해 설명하고 사과하는 것을 의무화한 나라에선 피해자들이 의료진을 상대로 형사 고소를 잘 하지 않는다”며 “최근 정부가 의료사고 형사처벌 특례를 논의하고 있는데, 적어도 이를 논하기 전에 피해자들의 울분을 해소하는 방안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짚었다. 이어 “의료사고 피해자와 유족은 의료 관련 분쟁 시 절대적 약자”라며 “환자 안전을 위협하고 위헌적인 내용이 포함된 ‘의료사고처리 특례법’ 대신 ‘의료사고 설명의무법’ 입법 추진부터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보건복지부의 의료사고처리 특례법 제정안을 보면, 의료인이 ‘책임보험·공제’와 ‘종합보험·공제’에 모두 가입하면 환자가 의료 과실로 상해를 입었다고 해도 공소를 제기할 수 없게 된다. 응급환자에 대한 의료 행위나 중증 질환, 분만 같은 필수의료 행위의 경우 환자가 중상해를 입어도 공소 제기가 가로막힌다. 다만 환자가 사망한 경우엔 공소는 가능하지만 형이 감면될 수 있다. 아울러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산하 의료사고안전망 전문위원회의 ‘환자 의료사고 구제 방안’에 ‘의료사고 발생 시 의료진의 위로와 도의적 차원의 사과, 의료사고 경위에 대한 충분한 설명 등을 제도화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응급의료기관의 응급환자 수용 의무와 불가능 시 통보 기준을 규정한 ‘응급의료법 개정안’의 후속 입법을 신속히 추진해 응급실 수용 불가능 통보 기준을 정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응급의료법 개정안이 지난 2021년 국회를 통과했으나, 시행령 미비로 수용 불가능 통보 기준이 불명확하단 지적이다.

이인재 법무법인 우성 변호사는 “현행 의료법에서 수술 전후 유의사항이나 합병증, 부작용에 대한 설명 의무를 규정하고 있지만 의료사고 발생 시 사고 원인에 대한 해명은 법제화 돼 있지 않다”며 “의료사고 원인을 의료진이 직접 설명하는 법적 의무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