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우려했던 응급의료 대란은 피했지만, 낙상과 심혈관계 질환 환자가 급증하는 겨울철이 의료 공급 시스템의 고비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의료진 피로도가 누적된 상황이라 대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4일 의료계에 따르면 대형병원 응급실 의사 10명 중 7명이 추석 연휴 동안 12시간 이상 연속 근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의대교수협의회(전의교협)가 최근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수련병원 34곳에 근무하는 응급의학 전문의 89명 중 62명(69.7%)이 “추석 연휴 기간 전후(13~20일)로 최대 12시간 이상 연속 근무를 했다”고 응답했다. 15명(16.9%)은 “16시간 이상 근무했다”고 답했다.
응급의학 전문의 2명 중 1명은 사직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응급실에 남아있는 전문의 과반(51.7%·46명)은 실제 사직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또 ‘전공의 복귀가 무산되면 사직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55명(61.8%)가 ‘그렇다’고 했다.
전의교협 관계자는 “깨어난 후 16시간 정도 연속근무가 이어지면 업무 수행능력이 급격히 감소한다. 20시간이 넘어가면 음주운전과 비슷한 상태가 된다”면서 “의료진 피로도가 누적되며 응급의료 위기는 더 심각해질 것이고, 환자 안전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낙상뿐만 아니라 기온 저하로 호흡기계·심뇌혈관계 질환 위험이 높아지는 겨울철이 되면 응급의료 대처가 더 어렵게 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특히 고령층에서 중증·사망 가능성이 높은 뇌출혈이나 심근경색 발병 위험이 커져 주의가 요구된다. 신현영 서울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겨울이 되면 호흡기 환자나 심근경색처럼 위중한 환자가 병원을 많이 찾는다”라며 “진료지원(PA) 간호사 등으로 전공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병원들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지만, 지금처럼 피해사례들이 생겨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의과대학 입학 정원 증원 취소를 촉구하며 단식농성을 벌여온 의대 교수들은 지난 13일 “의정 갈등이 장기화한다면 응급실 뺑뺑이뿐만 아니라 암 환자 뺑뺑이도 나타날 것”이라며 “올 겨울이 최대 고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건강검진이 연말에 집중되는 경향을 고려하면 새로 암을 진단받은 환자에 더해 심혈관계 환자가 겹치며 진료 로딩이 길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송명제 국제성모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겨울철 응급의료 대란을 막으려면 지금부터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 교수는 “추석 연휴에 응급실 대란이 없었던 이유는 국민들이 아프더라도 응급실에 오지 않았던 부분이 컸다”면서 “하지만 심뇌혈관 질환의 계절이라고 할 수 있는 겨울철이 되면 응급·중증 환자가 확 증가할 수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사태가 장기화되며 의료진 피로도가 늘고 있는 상황”이라며 “지금부터 대비해 적정 수의 배후진료진을 갖추지 못하면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피력했다.
정부는 응급실 전문의 진찰료 가산, 중증·응급수술 가산 등 추석 연휴 기간 도입했던 응급의료 지원책을 필요 시 연장할 계획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1일부터 오는 25일까지를 ‘추석명절 비상응급 대응 주간’으로 지정해 △응급실 1:1 전담관 운영 △인력 채용 재정 지원 △건강보험 수가 지원 등을 해왔다.
정윤순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의료진의 노고와 헌신 덕분에 지금의 비상진료체계가 유지되고 있다”며 “이후에도 응급의료체계 유지를 위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선 지원을 연장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