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년 동업 영풍·고려아연 왜 싸우나…창업 3세의 사업확장이 ‘불씨’

75년 동업 영풍·고려아연 왜 싸우나…창업 3세의 사업확장이 ‘불씨’

- 1949년 장병희, 최기호 공동 창업으로 시작
- 1970년 영풍 석포제련소, 74년 온산 고려아연 설립
- 오너 2세 체제 지나 신사업, 지분구조 놓고 갈등

기사승인 2024-10-11 17:01:55
(왼쪽부터) 장형진 영풍그룹 고문,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각 사 제공 

영풍그룹이 MBK파트너스와 손잡고 고려아연 지분 공개매수를 선언하며 시작된 영풍-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점차 ‘치킨게임’으로 확산하는 모양새다. 7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동업을 이어오며 6.25전쟁도 함께 겪었던 양사가 각자의 길을 걸으려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풍그룹은 고(故) 장병희, 최기호 창업자가 해방 직후인 1949년, 그룹의 모태 격이자 무역회사인 영풍기업사를 공동 창업하면서 시작됐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장병희 창업주(1913년생)와 최기호 창업주(1909년생)는 같은 황해도 사리원 출신으로, 월남해 서울 남대문에서 각각 전기기구와 농기계, 발전기 등을 판매하다 가까워져 함께 회사를 차리게 됐다.

이듬해 6.25전쟁으로 사업을 중단하게 됐다가 피란지였던 부산에서 다시 힘을 합쳤고, 1952년 각각 절반의 지분으로 광업을 주로 영위하는 영풍해운을 설립했다. 그러다 1970년 경북 봉화군 석포리에 당시 국내 최초의 아연 생산시설인 석포제련소를 세우며 본격적인 비철금속 제련업을 시작했고, 박정희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에 따라 4년 뒤 울산 온산에 연산 5만톤 규모의 고려아연을 설립하기에 이른다. 영풍은 장씨 일가가, 고려아연은 최씨 일가가 맡게 된 것은 이 때부터다.

1990년대 들어 오너 2세인 장형진 영풍 고문과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 체제가 이어졌지만 양사는 영풍 지분을 각각 20%대로 유지하며 영풍이 고려아연을 계열사로 두는 방식을 잘 이어갔다. 외적으로도 아연·황산 등 원료를 공동 구입해 제련한 뒤 다시 공동 판매하는 방식으로 협업을 이어갔고, 회사 간 인력 교류도 잦았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 최씨 일가가 신사업 및 재무적 투자 과정에서 영풍 지분을 장씨 일가에 매각하면서 5대 5 지분 구조가 서서히 흔들렸다. 2017년에는 영풍이 지배구조를 개편하는 과정에서 장 고문이 서린상사 보유의 영풍 지분 10%를 직접 취득, ‘고려아연→서린상사→영풍→고려아연’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가 끊어져 고려아연 계열 분리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래도 이때까지는 사업의 일환으로 여기며 양사는 동업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러다 2022년 최씨 일가 오너 3세인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취임하게 된다. 최 회장은 고려아연이 비철금속뿐만 아니라 신재생에너지·이차전지소재·자원순환 등 미래 신성장 동력을 확보해 영위할 수 있는 ‘트로이카 드라이브’를 꿈꿨다. 이를 위해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갔고,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경영을 이어왔던 장 고문은 최대주주로서 최 회장의 무리한 확장 가능성을 우려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장 고문에 따르면, 최 회장이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현대자동차, 한화, LG화학 등 대기업들과 제3자 배정 유상증자와 자사주 맞교환 등을 추진하면서 갈등이 심화됐다. 결과적으로 고려아연 우호지분이 확대됨과 동시에 영풍 측의 고려아연 지분율은 감소했는데, 이 과정에서 서로 소통이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갈등은 올해 초 정기주주총회에서 배당 안건, 정관 변경 안건에서도 이어졌다. 영풍이 요구한 배당 확대 안건은 불발됐지만, 고려아연이 목표로 한 정관 변경 안건을 저지하게 됐고, 이후 공동구매·공동영업 계약 중단 및 고려아연이 영풍그룹 본사를 떠나면서 갈라서기가 시작돼 오늘날 경영권 분쟁으로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김재민 기자
jaemi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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