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후핵연료로 불리는 고준위방사성폐기물에 대한 저장시설의 부재로 향후 원전이 멈출 위기에 놓인 가운데, 과학적·기술적 접근뿐만 아니라 사회적 수용성을 높일 수 있는 전략이 마련돼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사용후핵연료관리핵심기술개발사업단(사업단)은 지난 7일 서울 영등포 YP센터에서 ‘제3회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안전관리기술 포럼’을 개최했다. 사업단은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기술에 대한 국민 소통을 확대하기 위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원자력안전위원회가 공동으로 설립했다.
이날 포럼에서는 김기영 한국수력원자력 중앙연구원 부장이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저장기술의 안전성을, 백민훈 한국원자력연구원 소장이 처분기술의 안전성을 소개했다.
원전 우라늄 핵분열 과정에선 자체처분이 가능한 규제해제폐기물부터 극저준위, 저준위, 중준위, 고준위로 분류되는 폐기물이 발생한다. 특히 방사능 농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은 지하 500m 이상 깊은 땅 속에 건식저장방식으로 처분될 필요가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사용후핵연료 대부분을 습식저장방식으로 원전 내 임시저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2021년 한국방사성폐기물학회에 따르면, 경수로형 원전 기준 고리원전과 한빛원전의 임시저장시설이 2031년, 한울원전은 2032년, 신월성원전은 2044년이면 포화 상태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리시설을 마련해야 하나, 관련 특별법 등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표류돼 있어 부지 선정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김기영 부장은 “방사성폐기물의 건식저장기술은 1971년부터 이어져 왔으며 우리나라도 월성 중수로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을 1992년부터 30여 년간 안전하게 운영해오고 있다”면서 “항공기충돌 등 의도적인 테러에 대비한 규제지침부터 고도의 표면처리기술을 이용한 건식저장용기 염해부식 예방 등 연구개발을 이어가고 있으며, 국내 고유의 수직모듈형 경수로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모델(COSMOS)을 개발해 비용은 절감하고 부지면적도 감소할 수 있는 방안 등을 도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백민훈 소장은 “우리나라는 2004년부터 사용후핵연료에 대한 관리 정책을 시행해왔고, 현재 추진 중인 고준위방사성폐기물 특별법 또한 20대 국회 때부터 추진해온 것”이라며 “특별법이 있어야만 처리시설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국민적 신뢰를 얻음과 동시에 행정적 절차, 정부 지원 등 전반적인 추진력을 얻기 위해선 꼭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내외 방사성폐기물 처분부지 선정 사례를 소개한 박종수 숙명여대 교수는 “부지 선정에 있어 안전성뿐만 아니라 생태계·환경 영향, 사회적 수용성, 비용 등 경제적 요인, 법제도와 규제적 문제 등 종합적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면서 “특히 과학적 타당성과 함께 사회적 수용성을 확보해야 하는데, 주요국에선 과학 전문가와 사회·인문학적 전문가가 함께 대동해 부지 선정 등 사업을 추진하며 수용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어 “프랑스, 캐나다, 스웨덴 등 이른바 원전 선진국에선 주관기관·정부 외에 중립성·독립성을 가진 제3의 기관(독립행정청, 독립위원회 등)이 갈등관리를 하고 있고, 선제적 입법 추진과 함께 지역사회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넘어 교육·복지 등 지원범위를 확대하고 있다”면서 “다만 국가별 문화적·구조적 차이가 있는 만큼 이를 한국형에 맞도록 여러 의견 수렴 방식을 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뒤이어 전세혁 아주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에너지전환정책연구센터 연구원은 국민 신뢰와 원자력수용성에 대해 발표했다. 전세혁 연구원은 원전지역민 인식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거주지 주변 원전 건설을 찬성하는 이들은 ‘지역주민에 대한 보상’, ‘인구 유입 및 일자리 창출’, ‘지역경제 및 산업 활성화’ 등을 이유로 밝혔으며, 반대하는 이들은 ‘원전 건설에 따른 환경훼손 우려’, ‘방사능 노출 우려’ 등을 이유로 꼽았다”면서 “이로 미루어볼 때 에너지 정책이 사회적 가치와 일치하도록 법과 제도가 국민의 우려를 반영해 개선될 필요가 있고, 기술적 안전성을 강조하면서도 투명하고 신뢰성 있는 소통을 통해 국민과의 신뢰를 구축하고 유지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날 김경수 사업단장은 개회사를 통해 “원자력의 지속가능성은 사용후 핵연료의 안전한 관리에 달려 있으며, 궁극적인 해결책은 처분장 부지의 안정적 확보에 있다”면서 “사회적 수용성을 확보하려면 국민이 관리 기술의 안전성을 이해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