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갈등 장기화에 혼란스런 의료계…내홍으로 번져

의정갈등 장기화에 혼란스런 의료계…내홍으로 번져

기사승인 2024-11-08 10:13:44
6월18일 서울 여의도공원 옆 차도에서 개최된 의료농단 저지 전국의사 총궐기대회에서 임현택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피켓을 들고 앉아있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은 탄핵 기로에,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재신임 투표에 들어갔다. 직역별 다양한 의료계 의견을 하나로 모을 구심점이 없는 상황에서 사태 해결은 난망하고, 의정 갈등은 더욱 길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8일 쿠키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전공의 집단 이탈에 따른 의료공백이 9개월째 접어든 가운데 임현택 의협 회장이 탄핵 기로에 서는 등 의료계가 혼란 속에 휩싸였다. 의협 대의원회는 오는 10일 임 회장 불신임 안건과 비상대책위원회 설치 안건을 임시대의원총회에 상정하기로 했다.

탄핵 위기에 내몰린 임 회장은 전국 지역을 돌며 대의원들을 만나 “과오를 만회할 기회를 달라”고 호소하고 있지만, 의료계는 냉랭한 분위기다. 앞서 임 회장은 지난달 31일 “불신임안이 대의원회에 발의돼 회원 여러분께 큰 심려를 끼쳐 드린 것에 대해 매우 송구하게 생각한다”는 사과 문자를 의협 회원들에게 보내면서 SNS 계정을 삭제했다. 임 회장은 “제 잘못을 회피할 생각은 없다”면서 “의협 회장 임기 동안 과오를 만회할 수 있게 허락해 주길 감히 부탁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임 회장은 잇따른 막말로 자주 구설수에 올랐다. 최근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정신장애인을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일었다. 임 회장은 막말 논란에 대해 “때때로 우리 회원들과 전공의들, 그리고 의대생들이 당하는 피해와 불이익에 대한 분노를 참지 못하고 거친 언행을 했다”며 “변명의 여지가 없는 저의 불찰이다”라고 했다.

만약 임 회장의 불신임안이 통과될 경우 의협 선거관리 규정에 따라 60일 이내에 재선거를 실시해야 한다. 규정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은 제적대의원 3분의 1 이상 동의하면 발의할 수 있고, 3분의 2 이상 출석과 출석대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결정한다. 임 회장이 탄핵된다면 차기 회장 후보로는 지난 의협 회장 선거에서 결선 투표를 치렀던 주수호 전 의협 회장과 지난 의협 비대위를 이끌었던 김택우 전국시도의사협의회장 등이 꼽힌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이 8월21일 서울 마포구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으로 출석하며 취재진에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임 회장이 자리에서 물러난다면 이를 계기로 새 의협 집행부와 전공의·의대생들 간의 적극적인 소통이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임 회장과 줄곧 각을 세웠던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대위원장을 비롯한 89개 수련병원 전공의 대표 등 총 90명은 임 회장 사퇴·탄핵을 공식 요구하고 나섰다. 대전협은 7일 입장문을 통해 “임현택 회장의 자진 사퇴를 요구하며, 의협 대의원들에게 임 회장 탄핵을 요청한다”라며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회장이 바뀔 경우 대립각을 세워 온 의협과의 소통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임 회장의 탄핵 여부와 관계없이 의료계 내홍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임 회장이 탄핵돼 비대위 체제로 전환될 경우 여야의정 협의체 참여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진다. 이미 협의체 참여를 선언한 대한의학회와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안에서도 의료계 내분으로 인해 추진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만약 탄핵이 무산된다 하더라도 지도부와 전공의들의 신뢰를 잃은 임 회장이 제대로 된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의협 임원을 지낸 경기도 소재 대학병원 A교수는 “안 그래도 (의료계에 대한) 여론이 안 좋고 시선이 싸늘한데 문제가 될 만한 발언들이 걸러지지 않은 채 나가고, 이를 갖고 내부에서 서로 욕하고 갈등구조를 만들어 다투는 것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어 안타깝다”고 평가했다. 이어 “여야의정 협의체에 대한 걱정과 우려는 모두가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뚜렷한 답이 있는 것도 아닌 애매한 상태다”라며 “더 이상 의료가 망가지지 않게 하기 위해선 무언가 대책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라고 덧붙였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7월15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양윤선홀에서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께 드리는 의견’을 주제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신대현 기자

의협과 함께 의정 대화의 한 축으로 꼽히는 서울의대 비대위의 존속 여부도 주목된다. 비대위는 지난 6일부터 소속 교수들에게 3기 비대위 재신임 여부를 묻는 투표를 시행했다. 의정 갈등이 장기화되며 기존 의대 교수협의회와의 역할 조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3기 비대위는 지난 5월 강희경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가 위원장으로 선출된 뒤 6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3기 비대위는 의사 수 추계 공모, 대통령실·보건복지부와 의료개혁 토론회 등을 진행하는 등 정부와 적극적인 소통 행보를 보여 왔는데, 이 때문에 일부 전공의와 마찰을 빚은 것으로 전해졌다. 의사·의대생 온라인 커뮤니티 ‘메디스태프’에 올라온 글을 보면 전공의 B씨는 강희경 위원장에게 “교수들이 파업으로 실력 행사는 안 하고 (정부와) 대화나 해서 (사태가) 장기화됐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지난달 10일 서울의대에서 열린 ‘의료 개혁, 어디로 가는가’ 토론회에 장상윤 사회수석과 정경실 복지부 의료개혁추진단장이 참석해 의과대학 입학 정원 증원 근거 등을 주제로 강 위원장과 의견을 나눴는데 이를 비판한 것이다. B씨는 “대화로 바뀌는 게 없는데 왜 토론회를 해서 대화했다는 명분만 주는지 모르겠다”면서 “말뿐인 교수들은 정부에도, 의료계에도 아무 영향력이 없다. 의사들의 대표인 양 굴지 말라”고 했다.

이에 강 위원장은 “파업했을 때 피해는 누가 보나. 집 안에 환자가 있는 동료에게 가서 교수들에게 파업하라고 요구하는지 물어보라”며 “당신들(전공의들)이 직접 해야 할 얘기를 했으면 이런 수고는 없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A교수는 의료공백 사태 장기화에 따라 사제지간인 교수와 전공의·의대생 간 신뢰관계가 틀어지고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A교수는 “직역 간 입장들이 너무 달라서 서로 대화를 하는 데 있어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다”면서 “(현재 의료계는) 서로 비하하고 흔들어대는 작은 정치판 같다. 서로 말과 행동을 조심하고 존중할 필요가 있는데 전망이 그리 긍정적이지 못하다”고 전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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