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의료기관을 연계해 전공의들이 여러 임상경험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다기관 협력 수련모형 시범사업’이 시행되는 가운데 실효성을 두고 의문이 제기된다. 사업의 취지는 좋지만 수련병원을 이탈한 전공의들이 언제 복귀할지 예측되지 않는 데다 이들을 가르칠 교수진을 확보하는 것도 쉽지 않아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의료계에 따르면 정부는 내년부터 국립대병원과 지역거점공공병원뿐 아니라 상급종합병원과 협력의료기관의 전공의 수련교육을 연계하는 ‘다기관 협력 수련 프로그램’을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보건복지부는 전공의들이 다양한 진료 환경과 환자군을 접할 수 있도록 국립대병원과 지역거점공공병원의 수련을 연계하는 ‘전공의 공동 수련모델 시범사업’을 지난해부터 시행 중이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지난 7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열고 “전공의들이 체계적이고 내실 있는 수련을 받을 수 있도록 담당지도 전문의를 지정하고, 다기관 협력 수련모형 시범사업을 통해 중증부터 경증까지 다양한 임상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다기관 협력 수련체계는 정부가 지난 8월 발표한 의료개혁 방안 중 하나다. 그동안 전공의 수련이 상급종합병원의 입원환자나 중증환자 진료 중심으로 치우쳐 있어 이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시돼 왔다. 특히 외과 의사들 사이에선 대부분의 전공의가 상급종합병원에서 암 수술 등 고난도 의료를 중점적으로 익히다 보니 ‘외과 전문의 자격증을 따고도 맹장 수술을 못한다’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오기도 했다. 전공의들도 더욱 다양한 임상경험을 원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전공의 수련과정이 전문의로서 활동하기에 충분한가’라는 질문에 전공의 5명 중 1명이 ‘불충분하다’고 답했다.
수련 제도가 지난 1958년에 시작해 60년 이상 큰 변화 없이 이어져온 만큼 전공의들이 다양한 의료기관에서 여러 임상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대한내과학회 수련이사를 맡고 있는 김대중 아주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는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내과 전공의의 경우 상급종합병원에만 있으면 중증 환자 진료를 주로 경험하다 보니 그 외의 환자를 보는 게 부족하다”며 “지역에 있는 중소병원들과 협력해 다양한 환자를 경험하도록 만들어주면 부족한 면을 채워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문과목별 학회들이 자발적으로 전공의 교육을 목적으로 파견 수련제도를 운영해왔는데 정부가 이를 활성화하고 교육수련 비용을 일부 부담하며 체계적으로 장려한다는 차원에선 나쁘지 않다”면서 “나중에 현 사태가 정상화되면 다기관 협력 수련프로그램의 필요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부연했다.
문제는 참여 인력이 저조하다는 점이다. 최근 국회예산정책처가 발간한 ‘2025년도 예산안 위원회별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공동 수련모델 시범사업에 참여한 기관은 강원대병원 등 국립대병원 5개소, 속초의료원 등 지역거점공공병원 7개소였다. 전공의는 인턴 71명, 레지던트 18명 등 총 89명이 참여했다. 공공임상교수(국립대병원 소속 지도전문의)의 경우 지난해 150명 정원 중 채용 인원이 28명에 불과했다. 지난 8월 말 기준 사업 예산현액 4억3900만원 가운데 실집행 된 금액은 7900만원에 그쳤다. 올해는 전공의 집단사직으로 인해 시범사업 참여가 전무한 실정이다. 내년 전공의 복귀마저 불투명한 상황인데 복지부는 2025년도 시범사업에 전년 3억원 대비 8억원 증액한 11억원을 편성했다.
정책처는 공공임상교수 확보 문제, 전공의 복귀 및 수련 참여 여부, 대상 의료기관 확대 여부 등 사업 추진에 필요한 주요 사항이 확정되지 않았다며 사업 추진 가능성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책처는 “의정 갈등이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사업에 참여할 공공임상교수와 지도전문의, 수련 전공의를 확보하는 데 제약이 따를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전공의에게 양질의 수련 기회를 제공하고, 지역 간 의사인력 수급 불균형을 완화시키겠다는 시범사업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공공임상교수 확보 전략과 전공의 수급 계획 등 구체적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