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 적자에 치료 포기하는 ‘어린이재활병원’…갈 곳 없는 장애아동

만성 적자에 치료 포기하는 ‘어린이재활병원’…갈 곳 없는 장애아동

기사승인 2024-11-13 11:30:05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은 12일 ‘지역 완결형 소아재활 체계로 더 나아가기’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사진=신대현 기자

결혼·출산 연령이 높아지며 난임 환자가 증가하고, 미숙아 출생 빈도가 늘면서 영유아 뇌성마비, 발달지연, 지적·시각·청각 장애 등의 위험도 덩달아 커졌지만 체계적인 소아 재활의료 시스템은 부족하다. 치료가 시급한 장애 아동들이 갈 곳을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치료 인프라를 강화하고 관련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은 12일 ‘지역 완결형 소아재활 체계로 더 나아가기’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일산병원은 지난 2021년 경기권 공공어린이재활병원으로 선정된 이래 경기지역 내 재활치료가 필요한 아동에게 지속적인 공공재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김성우 경기권역 공공어린이재활병원장(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재활의학과 교수)은 “‘재활 난민’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소아재활 분야가 굉장히 열악한 게 사실”이라며 “장애 아동이 지역사회에서 치료받아야 하지만 환경이 뒷받침되지 못해 지방에 사는 가족은 수도권에 와서 오피스텔을 얻어 병원을 전전하는 등 정상적인 가정을 꾸릴 수 없는 상태에 처해있다”고 말했다.

2023년 기준 국내 여성의 평균 초혼 연령은 31.45세로, 평균 출산 연령이 33.64세다. 만혼이 사회적 트렌드로 자리 잡으며 고위험 산모와 임신 32주 미만의 미숙아(이른둥이) 출산도 함께 증가하는 추세다. 미숙아 출산율은 전체 출생 아동 중 10% 수준에 달한다. 미숙아는 만성폐질환, 폐동맥고혈압 등 합병증을 비롯해 성장 후에도 운동·인지발달 지연, 뇌성마비, 시력·청력 문제 등을 마주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치료·관리 체계는 미흡한 상황이다.

김 원장은 “소아재활의료는 우리나라 의료 영역 중에서도 대표적인 과소 공급 영역으로 최악의 저수가, 소아재활 기피 현상으로 인해 전문의나 치료사 구하기가 어렵다”면서 “장애 아동은 영유아기부터 노년기에 이르기까지 전주기적 케어가 필요하지만 현재 공공어린이재활병원 치료 연령이 18세로 제한돼 있어 연속적인 치료·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앞으로 장애 아동들에 특화된 생애주기별 접근이 강화되고, 소아재활 전문의 인력 양성 문제가 해소되길 기대한다”며 “어린이재활병원을 비롯해 지역 내 여러 병원과 보건소, 학교 등이 연계되는 지역 완결형 공공어린이재활 네트워크가 형성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양신승 대전세종충남·넥슨 후원 공공어린이재활병원장(충남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은 소아재활의료 영역 적자 보존을 위한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전 충남권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은 2018년 지정된 제1호 공공어린이재활병원으로, 2023년 5월 충남대병원에 개원했다. 양 원장은 “현재 타 지역에서 온 환자까지 입원하고 있는 실정으로 대략 연간 60억원 정도의 인건비가 소요되지만 지방자치단체 시비로 적자를 보존하기에는 부담이 큰 상태다”라며 “소아재활 난민을 예방하고, 지역 완결형 장애 아동 재활치료 기반 설립이라는 국가적 사업 완성을 위해 지역 내 공공재활의료기관의 안정적 운영을 국가가 담보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현재 보건복지부가 시행 중인 어린이 재활의료기관 지정·운영 시범사업의 한계에 대한 지적도 이어진다. 유준기 연세로이재활병원장은 “시범사업 수가가 6세 미만과 6세 이상으로 나눠져 적용되고, 6세 이상의 경우엔 특정 조건에 따라 수가 지원 기간이 정해져 있어 연속적 치료가 어려운 경우가 발생한다”고 짚었다.

어린이 재활의료기관 지정·운영 시범사업은 장애 아동이 주거지와 가까운 곳에서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지난 2020년 10월 처음 도입됐다. 높은 만족도에 힘입어 지난 3월 2차 시범사업 대상이 전국 18개 권역 39개 병·의원으로 확대됐다. 사업 대상은 전문적 재활치료를 필요로 하는 18세 이하 환자로, 재활치료가 필요한 모든 아동이 대상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정부는 ‘6세 미만 소아에게 재활치료를 시행한 경우 별도 수가 산정 항목의 소정점수 30%를 가산한다’는 지침을 추가하며 6세 이상 아동과 거리를 뒀다. 이 때문에 어린이 재활병원들은 6세 미만 소아 중심으로 치료를 늘렸고, 가산수가가 없는 6세 이상 장애 아동들은 자연스럽게 치료 후순위로 밀려났다.

유 원장은 “시범사업의 본사업 전환을 통해 장애 아동이 거주지 인근 지역에서 적기에 집중적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치료 지원 기간을 확대하고, 나이에 따른 제약을 완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동아 국립재활원 중앙장애인보건의료센터장도 “성인 재활병원과 소아 재활병원에 똑같은 인적·물적 자원을 투입했을 때 성인 환자는 100만원을 벌 수 있는 구조라면 소아 환자는 60만원 밖에 못 버는 구조다. 그만큼 소아재활은 병원 수익에서 도움 되는 분야가 아니다”라며 “시범사업 수가가 마련됐지만 아사 직전이었던 소아재활의료에 숨만 붙여놓은 수준으로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꼬집었다.

장애 아동 가족들은 공공어린이재활 인프라가 확대되길 바란다. 배경민 한국중증중복뇌병변 장애인부모회 공동대표는 “6개월 정도의 낮병동 치료를 마치고 나면 외래 대기가 너무 길어 언제 다시 치료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르고, 사설 치료실을 매일 이용하기엔 금전적으로 부담이 된다”라며 “재활병원들이 치료 대상 연령을 한정해 청소년기 이후엔 치료받을 수 있는 곳도 거의 없다”고 토로했다. 중증중복뇌병변장애인이란 뇌전증, 지적·지체·시각·청각·언어·섭식장애, 희귀난치질환 등 적게는 2~4개, 많게는 그 이상의 장애를 중복으로 가진 장애인을 일컫는다. 배 대표는 “영·유아기가 지나면 장애가 없어지는 게 아닌데 우리나라의 재활의료 시스템은 청소년기 이후를 고민하지 않는 것 같다”면서 “건강한 생활을 위해 치료 유지만이라도 할 수 있도록 청소년기 이후의 재활치료 환경 조성에 대한 고민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피력했다.

정부는 어린이 재활의료기관 가산수가 확대나 연령 차등 적용 재검토 필요성에 대해 공감했다. 석상준 복지부 장애인건강과 서기관은 “어린이 재활의료기관 지정·운영 시범사업의 본사업 전환이 2026년으로 계획돼 있다”며 “수가 부분에 있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6세 이상 가산수가 지원 여부도 재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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