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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공기관에서 근무 중인 A씨는 휴가 중 독감에 걸렸다. 심한 감기, 몸살 때문에 저녁 8시경 응급실을 찾았다. 병원에선 독감 검사 외 에이즈, 매독, 류마티스, 갑상선, 간염 검사도 진행했다. 응급실을 처음 방문했을 땐 혈압, 맥박, 체온을 쟀는데 퇴원할 땐 체온만 확인했다. 퇴원 시간은 오후 9시36분이었으나 검사 결과지가 나온 시간은 10시45분이었다. 일부 검사 결과는 다음날 오전 11시가 돼서야 볼 수 있었다. 의사는 외래기록지에 ‘증상이 재발하거나 악화될 경우 응급실로 내원해야 한다는 점을 교육했다’는 소견만 남겼다. 비급여 주사제를 포함해 청구서엔 건강보험 진료비 48만원, 본인부담금 35만원이 찍혀있었다. 독감 증상 때문에 응급실을 찾았을 뿐인데 지나치게 많은 비용이 청구돼 억울해진 A씨는 국민건강보험공단에 해당 내용에 대한 민원을 넣었다.
병원에서 받지 않아도 되는 검사·진료가 과도하게 이뤄져 건강보험 재정에 악영향을 미치고 환자 부담을 높이는 것과 관련해 건강보험 당국이 관리 강화에 나선다.
정기석 건보공단 이사장은 20일 서울 여의도 건보공단 영등포북부지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필요한 검사는 당연히 해야 하지만 누가 봐도 터무니없는 것들이 있다”면서 “쉽게 말해 환자들이 바가지 쓰고 있는 것들을 들여다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 이사장은 A씨 사례를 들어 유사한 상태의 다른 환자들에게 일반적으로 10%도 시행하지 않는 검사를 18종이나 시행했다고 했다. 40~59세 환자가 독감으로 응급실을 외래 방문하면 평균 4.94개의 검사를 받는데 A씨가 과도한 검사를 받았단 것이다.
정 이사장은 “감기, 독감 등 단순 호흡기질환은 매년 발생하기 때문에 적정 진료의 범위나 틀을 잡아주는 것이 필요하다”며 “급여 심사를 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긴밀하게 협조해 과잉 진료·검사에 대한 관리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건보공단은 급여 분석 체계를 고도화하기 위해 이상 경향을 모니터링하고 분석하는 적정진료추진단(NHIS-CAMP, 나이스 캠프)을 운영할 계획이다. 정 이사장은 “건보공단은 환자들의 진료, 검사, 급여 내역을 분석할 수 있는 시스템을 완성했다”면서 “국민들이 낸 건강보험료를 합리적으로 써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국민들이 자신의 진료비가 얼마인지 알 수 있도록 정리한 ‘진료비 정보시스템’도 구축한다. 더불어 비급여 진료에 대한 관리를 강화한다. 비급여 보고제도 운영을 내실화하고 정확한 실태 파악과 모니터링을 통해 체계적인 비급여 관리 기반을 마련할 방침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4년 11조2000억원이었던 비급여 진료비 규모는 2023년 20조2000억원까지 급증했다. 비급여 규모가 커지면 건강보험 보장률은 줄어들고 비급여가 줄면 보장률이 올라가기 마련인데 보장률이 제자리다. 2014년 63.2%였던 보장률은 2023년 64.9%로 1.7% 성장에 그쳤다.
건보공단은 특히 ‘비급여 정보 포털’을 이용해 종합적인 비급여 진료 정보를 공개해 환자의 의료 선택권을 확장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정 이사장은 “비급여 중엔 환자 치료 목적이 아니거나 이해가 안 되는 비급여가 많다”면서 “비급여 정보 공개를 통해 예컨대 환자가 갑상선암으로 병원에 갔을 때 비용이 대략 얼마나 드는지, 가장 비싼 병원은 어디고, 싼 병원은 어디인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나아가 저렴한데 수술을 잘하는 곳, 비싼데 수술을 못하는 곳 등 의료의 질까지 볼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외에도 △생애 전 주기 건강관리(개인 맞춤형 건강관리 서비스 제공) △건강한 노후를 위한 돌봄(장기요양 서비스 확충) △국민 중심 혁신(건강보험 빅데이터 활용, 연말정산 간소화) 등을 올해 핵심 추진과제로 꼽았다. 건강검진 체계 개선도 추진한다.
정 이사장은 “90세가 넘은 어르신이 위험을 감수하며 위·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을 필요는 없다”면서 “의과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검진 항목을 개선하고, 청·장년층은 고혈압·당뇨, 노년기는 인지기능 등에 대한 검진을 강화하겠다”고 전했다.